베이비부머의 은퇴, 연금 시장의 변화는
[한경 머니 기고=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베이비부머가 은퇴를 시작하면서 연금 시장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직장에서 퇴직하고 은퇴 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손에 쥔 노후생활비 재원 중에서 규모가 큰 것 셋을 꼽으라고 하면 국민연금, 퇴직급여, 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대다수 은퇴자들은 이들 3가지 자산을 기반으로 다달이 생활비를 마련해야 한다. 최근 연금 시장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까.

1955년부터 1963년 사이 대한민국에는 700만 명이 넘는 신생아가 태어났는데, 이들을 베이비부머라고 한다. 한국전쟁 직후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찢어지게 가난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에 진출해 경제생활을 하던 시절 대한민국은 단군 이래 최대 경제 성장을 이뤄냈다. 이 시절 가수 정수라는 ‘아! 대한민국’이라는 노래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라고 외쳤다.

우리는 베이비붐 세대를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 성장과 산업화를 일궈낸 주역으로 일컫는다. 그리고 또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 베이비부머가 한창 경제활동을 하던 시절에 우리나라 연금제도도 기본적인 골격을 갖췄다는 것이다.

먼저 1988년에 국민연금 제도가 도입됐다. 그리고 1994년 6월에 저축금액을 소득공제 해주는 개인연금 상품이 처음으로 출시됐다. 이 상품은 2000년 12월까지 판매됐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연금저축으로 대체됐다.

2005년 12월에는 퇴직연금이 도입됐다. 사용자가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퇴직급여 재원을 회사 바깥 금융 회사에 맡기도록 하고, 근로자가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2007년 7월에는 고령자가 거주주택을 담보로 연금을 받는 주택연금이 도입됐다. 그리고 2014년 7월에는 기초연금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됐다. 이로써 기초연금, 국민연금, 퇴직연금, 개인연금, 주택연금의 5층 연금 보장체계가 완비된 셈이다.

2023년은 베이비부머의 막내인 1963년생이 60세가 되는데, 60세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촉진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법적 정년에 해당한다. 700만 명이 넘는 베이비부머들이 주된 직장을 떠나 은퇴 생활을 시작한 셈이다. 이제 그들은 월급을 대신할 소득원을 마련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베이비부머들은 자의가 됐든 타의가 됐든 5층 보장 연금제도하에서 연금 자산을 축적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전 세대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노후 소득을 확보하기 용이해 보인다. 베이비부머들은 완성된 5층 연금의 수혜를 받으며 은퇴하는 첫 세대가 되는 셈이다.

베이비부머들이 본격적으로 은퇴 생활을 시작하면서 연금 시장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국민연금, 퇴직연금, 주택연금을 중심으로 최근 연금 시장에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보기로 하자.
베이비부머의 은퇴, 연금 시장의 변화는
고액 노령연금 수령자가 늘어나고 있다
먼저 국민연금부터 살펴보자. 올해 1월 노령연금을 월 200만 원 이상 받는 사람이 지난해보다 3배나 늘어났다는 소식이 전해져 화제가 됐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노후에 받는 연금을 노령연금이라고 한다. 2022년 12월에는 노령연금을 200만 원 넘게 받은 사람이 5410명이었는데, 올해 1월에는 그 수가 1만5290명으로 2.8배나 늘어났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월 200만 원 이상 수급자가 이렇게 늘어난 것일까.

당장 눈에 띄는 원인으로 전국 소비자물가 변동률을 들 수 있다. ‘국민연금법’에서는 매년 1월 전년도 전국 소비자물가 변동률을 반영해 노령연금 수령액을 조정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해 전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1999년 7.5% 이후 24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따라서 올 1월에 200만 원 이상 수급자가 늘어난 데는 물가 상승률이 미친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모든 원인을 소비자물가 상승률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올해 1월에 노령연금을 200만 원을 넘게 받으려면, 지난해 12월에 적어도 190만 원을 받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물가 상승률 5.1%를 반영해 연금액을 인상했을 때 200만 원이 넘는다. 사실 월 190만 원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그렇다면 고액의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는 저변이 많이 확대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장기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부한 베이비부머들이 본격적으로 노령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베이비부머들 중 상당수는 국민연금이 국내 도입된 1988년에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꾸준히 국민연금 보험료를 납입한 덕에 가입 기간이 상당히 길다. 그런 그들이 본격적으로 노령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한 것이다. 노령연금 수령액을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소득대체율, 전체 가입자 평균소득(A값), 가입자 본인 평균소득(B값), 가입기간 4가지가 있는데, 이 중 가입기간이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일 때 받는 노령연금을 100이라고 해보자. 다른 요인에 변화가 없다고 가정하면, 가입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연금액이 5%씩 늘어난다. 따라서 가입기간이 긴 베이비부머들이 노령연금을 개시하기 시작하면서, 앞으로도 고액 연금 수령자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20년 넘는 사람이 받는 노령연금을 ‘완전노령연금’이라고 한다. 2023년 3월 노령연금 수급자들이 받는 연금액은 월평균 62만 원으로 아직 용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완전노령연금 수급자들은 월평균 103만 원을 수령하고 있다. 월 100만 원 이상 노령연금 수급자 수도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16년 12만8304명이었던 월 100만 원 연금 수급자는 2022년에 56만7149명으로 늘어났다. 6년 사이에 4.4배가 늘어난 셈이다. 지금도 증가세는 계속되고 있어, 2023년 1분기에만 9만 명 이상 늘어나서 그 수가 66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체 노령연금 수급자에서 월 100만 원 이상 수급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6년만 해도 3.8%에 불과했던 월 100만 원 이상 수급자 비중이 2022년에 10%를 넘어섰고, 올해 3월에는 12.2%에 이르렀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연금 시장의 변화는
퇴직연금 적립금 중 3분의 1은 연금으로 수령
2005년 12월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되고 18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퇴직연금 적립금은 335조 원 넘게 늘어났다. 그리고 베이비부머들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퇴직연금을 수령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퇴직급여를 연금 형태로 수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02년 중에 퇴직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한 계좌가 45만7468개다. 이 중 7.1%에 해당하는 3만2566계좌가 연금 수령을 선택했고, 나머지 92.9%는 일시금을 선택했다. 연금 수령을 선택한 계좌가 왜 이렇게 적은 걸까.

장기간 연금으로 수령하려면 적립금 규모가 커야 한다. 하지만 잦은 이직이 문제다. 구르는 돌에 이끼가 끼지 않는다고 이직이 잦으면 퇴직급여가 쌓일 겨를이 없다. 이직할 때 받은 퇴직급여를 개인형퇴직연금(IRP)에 차곡차곡 쌓아 둔 다음 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지만,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재직 중에 퇴직금을 중간정산 한 근로자가 많은 것도 문제다.

통상 사용자는 근로자가 1년 일할 때마다 1달치 급여에 해당하는 금액을 퇴직급여 지급 재원으로 쌓는다. 따라서 근속연수가 길어야 퇴직급여도 많이 받을 수 있다. 잦은 이직으로 인해 재직기간이 얼마 되지 않거나 최근 퇴직금을 중간정산 한 근로자는 근속연수가 짧아 퇴직급여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을 쪼개서 연금으로 받으면 그 금액이 너무 적어 생활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 지난해 퇴직연금 수급을 시작한 계좌 중 일시금을 선택한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2459만 원이다. 만약 이 돈을 10년 동안 연금으로 수령한다면, 매달 받는 연금이 25만 원 정도 될 것이다.

퇴직급여 적립금 규모가 적으면 연금으로 수령할 때 절세 효과도 크지 않다.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면 퇴직소득세를 30%가량 감면받는다. 퇴직급여 규모가 크고 퇴직소득세 부담이 큰 사람일수록 연금 수령에 따른 절세 효과도 큰 셈이다. 반대로 퇴직급여 규모가 작아서 퇴직소득세가 얼마 되지 않는 사람은 연금 수령을 선택해봐야 아낄 수 있는 세금이 많지 않다. 그래서 소액 계좌들은 대부분 일시금을 선택한다.

하지만 퇴직급여 적립금이 크면 얘기가 달라진다. 퇴직금 규모가 크면 일시금을 선택했을 때 퇴직소득세 부담도 크다. 달리 말하면 연금으로 수령하면 세금을 그만큼 많이 아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연금액도 커서 실제 생활비에 보탬이 된다. 2022년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계좌 중 연금을 선택한 계좌의 평균 수령액은 1억5550만 원이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연금으로 수령하는 계좌 비율이 매년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년 연금을 선택하는 비율이 꾸준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말이다. 2020년에는 퇴직연금 수령을 시작한 계좌 중에서는 3.3%만 연금을 선택했었다. 하지만 2021년에는 연금 선택 비율이 4.3%로 상승했고, 2022년에는 다시 7.1%로 치솟았다. 2년 사이에 연금 수령 계좌 비율이 2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그래봐야 연금 선택 비율이 겨우 7.1%밖에 안 되는데,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계좌 수 대신 금액 기준으로 살펴보자. 2022년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계좌의 적립금은 15조5113억 원이고, 이 중 연금을 선택한 계좌 적립금은 5조639억 원이다. 계좌 수 기준으로는 연금 선택 비율이 7.1%에 불과하지만, 금액을 기준으로는 32.6%가 연금으로 수령하고 있다. 연금 수급을 시작한 계좌 적립금 중 3분의 1은 연금으로 수령하고 있는 셈이다.
베이비부머의 은퇴, 연금 시장의 변화는
퇴직연금 시장 성장 엔진, IRP로 바뀌어
퇴직자가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수령하려면 먼저 IRP에 이체해야 한다. 따라서 베이비부머의 퇴직이 본격화되면서 IRP 적립금 규모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2017년 말 15조2822억 원이었던 IRP 적립금이 2022년 말에는 57조6238억 원으로 늘어났다. 5년 동안 연평균 30%씩 적립금이 증가한 셈이다. 같은 기간 퇴직연금 전체 적립금은 168조4348억 원에서 3335조8935억 원으로 연평균 14.8%씩 성장했다. 전체 퇴직연금 시장보다 IRP가 2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에서 IRP 적립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7년 9.1%에서 2022년 17.2%로 2배나 늘어났다.

이 정도 상황이면 퇴직연금 시장의 성장을 주도하는 것이 IRP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IRP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베이비부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 1차 베이비부머들은 대부분 퇴직자지만, 1968년부터 1974년 사이에 태어난 2차 베이비부머가 정년을 앞두고 있다. 따라서 IRP 시장의 성장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IRP 시장의 성장과 함께 퇴직연금 자산관리 방법도 축적에서 인출로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택연금 신규 가입자가 빠르게 늘어나
베이비부머의 퇴직은 주택연금 시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해 주택연금 가입자가 수가 사상 최대로 많았다. 2016년 이후 주택연금 가입자 수는 해마다 1만 명 남짓 증가하고 있었는데, 지난해에는 가입자가 1만4580명이나 늘어났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급증한 이유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들은 주택 가격 하락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주택연금 가입자가 받는 연금액은 가입 당시 집값에 따라 결정되는데, 일단 연금액이 한번 정해지고 나면 이후 집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동일한 연금액을 계속 수령하게 된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기왕이면 연금을 더 많이 받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주택 가격이 하락세로 접어들면 주택연금 가입자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최근 주택연금 가입자가 증가한 원인을 전적으로 집값 하락으로만 볼 수는 없다. 집값 하락만 원인이라고 한다면 집값이 상승할 때는 가입자가 줄어야 할 텐데, 그렇지 않았다. 2016년부터 2021년 사이 집값이 크게 오르던 시기에도 주택연금 가입자가 한 해 1만 명씩 늘어났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주택연금 수요자의 증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베이비부머들은 주된 직장에서 퇴직하면서 월급을 대신할 소득원을 찾아야 한다. 이때 베이비부머가 보유한 자산 중 가장 큰 규모를 차지하는 것이 거주주택이다. 따라서 국민연금과 주택연금만으로 노후생활비가 부족하다면 주택연금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베이비부머의 퇴직으로 주택연금 수요자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집값 하락이 가입을 서두르게 하는 트리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연금 시장, 축적에서 인출로 변화
지금까지 베이비부머의 대량 퇴직으로 최근 국내 연금 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를 살펴봤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긴 베이비부머가 노령연금을 개시하면서 고액 연금 수령자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퇴직자들이 늘어나면서 퇴직연금의 성장 엔진이 IRP로 이동하고 있으며, 적립금 규모가 큰 퇴직자가 늘어나면서 연금 선택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주택연금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 사회와 금융 시장의 연금화가 진행되는 방향이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연금화는 크게 2단계로 나눠 진행된다. 연금 형태로 자산을 축적하는 것이 1단계라면, 축적한 연금 자산을 활용해 노후 소득을 창출하는 것을 2단계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와 금융 시장은 1단계서 2단계로 넘어가는 분수령에 서 있다 할 수 있다.

글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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