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혜원 LG전자(HE 브랜드커뮤니케이션담당) 상무
지난 9월,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 서울 2023’이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공식 헤드라인 파트너로 참가한 LG전자는 고(故) 김환기 작가의 원화를 국내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디지털 아트로 구현한 작품을 LG 올레드(OLED) TV에 담아 공개해 기술과 예술의 결합을 보여주었다. 전시를 기획한 오혜원 상무에게 LG전자의 비전과 미술계에서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 과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국제광고제에서 수상한 경험이 있고, 칸 국제광고제는 심사위원도 역임했다. 오랜 시간 크리에이티브 분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의성 높은 아이디어를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궁금하다.“많이 보고, 많이 들어야 한다. 나는 후배들에게 ‘훔쳐라’라고 말한다. 작품의 방향성을 보고 그것을 내 것으로 소화하는 과정을 거치라는 것이다. 누구는 ‘크리에이티브(creative)’라고 하지만, 그런 소리는 부담스럽다. 대부분의 작업은 이미 다른 사람이 만든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댑테이션(adaptation)’이라 부른다. 우리가 하는 일은 ‘창조’보다는 ‘발견’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찾아서 보여주는 것이 우리의 일이다. 보는 이의 관점을 가지려는 훈련은 계속해 왔고, 그것이 공감을 얻어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광고를 제작한 경험이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됐다.”
- ‘프리즈 서울 2023’에서 LG 올레드는 최고 권위 레벨인 ‘헤드라인 파트너’였다. 프리즈와 함께하게 된 계기는.
“우리는 이전부터 프리즈와 함께 일했다. 우리가 프리즈에서 부스를 운영하고 있을 때, 프리즈 최고경영자(CEO)가 ‘서울에서 아트페어를 개최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열정적으로 환영했고, 서울에 대형 아트페어가 없다는 점과 서울 사람들이 아트를 좋아할 것이라는 확신을 표현했다. 우리는 서울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서 서울에서 큰 행사를 갖기를 원했고, 그러한 의도로 프리즈 측과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LG 올레드는 이전에도 글로벌 아트페어에 참여한 바 있다. ‘프리즈 서울 2023’에서는 이전에 참가한 아트페어와는 다른 점을 보여주기 위해 어떠한 시도를 했나.
“과거 갤러리 전시에서는 만날 수 있는 고객의 수가 제한됐는데, 페어에 참여하면서 다양한 고객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프리즈에서의 경험이 인상적이었다. 아트의 표현 방식이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리즈와의 협업이 시작될 때 우리는 파트너로서 아트 활동을 진행하게 됐다. 방식이나 도구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한 형태로 표현할 수 있었다. 우리가 프리즈를 선택한 이유는 프리즈 측의 유연한 접근법과 신뢰감이 결정적이었다.”
- LG 올레드 부스에선 수화(樹話)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왜 김환기 작가를 선택했나.
“프리즈 서울이 결정됐을 때 든 생각은 ‘기회가 된다면 꼭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으로 시작하고 싶다’였다. 영향력 있는 미술계 사람들이 우리 작품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환기재단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고, 이후에 서울 부암동에 위치한 환기미술관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전시를 준비하게 됐다. 김환기 선생님은 우리나라 추상화와 단색화의 대표 작가다. 계속 활동하셨다면 미디어아트도 선도하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 전시에 참여한 국내 작가들은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을 디지털로 재해석하는 과정에서 그와 ‘상상의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다. 그들은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을 깊이 존경했다. 많은 외국인들도 김환기 선생님에 대해 물어본다. 전시는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을 디지털 아트로 재해석하는 것이 목표였다.”
- 전시한 작품 중에선 생동감 있는 디지털 아트에 눈길이 오래 머물더라.
“디지털 아트는 길게는 3분, 짧게는 1~2분 정도 상영돼 젊은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전시는 디지털 아트로 시작되지만 맞은편에는 원화가 위치해 옛날 그림이 지금의 방식과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동선을 구성했다. 전시장 입구에는 대형 사이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원화가 있다.
이 작품은 1970년 제1회 ‘한국미술대전’ 대상을 받은 작품으로 환기미술관 밖으로 처음 나왔다. 김환기 선생님 작품 중 제목을 가진 몇 안 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 디지털 아트와 원화를 한 전시에 배치하면서 기대한 점은.
“세대 간의 화합이다. 젊은 분들은 디지털 작품을 오래 보고, 나이 드신 분들은 원화에 깊이 빠져 감상한다. ‘볼수록 예쁘다’는 말처럼 관람객들이 작품을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전시장 입구에 배치한 원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에는 유리를 씌우지 않았다. 디지털 아트는 ‘와우’한 반응을 유발하고, 원화는 관람객을 빨려들게 하는 매력이 있다. 2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가장 균형 잡힌 전시라고 생각한다.”
- 전시 제목 ‘서울, 여기서 다시 만나다’에 담긴 바람이 있다면.
“김환기 선생님의 작품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처럼, 서울에서 만나고, 다음에는 뉴욕에서도 만나고, 런던에서도 만나는 기회가 있기를 바랐다. 김환기 선생님이 끊임없이 실험하고 노력하신 그 모습을 파리나 뉴욕에서도 전시하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도 들어 있다.”
- 이번 전시는 LG전자에 2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축제의 장인 아트페어로 끌어냈다는 것과 가정에서 LG 올레드로 미술을 감상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실제 경험을 선사했다는 것이다.
“김환기 선생님 작품을 축제의 장으로 끌어오는 과정이 정말 어려웠다. 누군가는
아트페어를 장터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그렇게 보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설득했다. 더 많은 사람이 보는 것이 아트지, 숨겨진 것이 아트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집 TV에도 작품이 나오면 좋겠다’고 느끼게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시작하는 사업의 일부다. TV 홈에 아트 애플리케이션을 추가하고,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 구매로 이어지게
서비스할 계획이다.”
- 아트 시장에서 LG전자가 어떤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나.
“예술작품을 사서 집에 거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트에 접근하게 해주고 싶다. 앤디 워홀이 작품의 대중화를 얘기했던 것처럼 LG 올레드 TV가 예술의 표현을 확장하는 최고의 ‘디지털 캔버스’로써, 더 많은 고객에게 일상에서 즐기는 예술 경험을 전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화질, 디테일, 컬러 등에서 원작에 가장 가깝게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 ‘프리즈 서울 2023’에는 올해도 많은 방문자들이 찾아왔고, 2030세대 젊은 층도 상당히 많았다. 아트페어에서 목격한 젊은 세대로부터 얻은 특별한 인사이트가 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트’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 근본적으로 예술을 좋아하는 민족성이 현재 문화에 잘 반영돼 있다고 생각한다. 아트는 어렵고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문턱을 낮추는 페어가 생겨나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사람들은 갤러리에 들어갈 때 망설임을 느끼지만, 페어에서는 당당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페어는 자존감 높은 요즘 세대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이런 문화 현상이 지속되리라고 본다.”
- 요즘은 TV를 덜 시청하는 추세다. TV를 다시 일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
“우리는 ‘TV’라고 부르지 않는다. 올해 초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에서 ‘라이프스타일 스크린’이라는 비전을 발표했다. 여기서 ‘스크린’이라는 것은 전파 신호를 보여주는 TV가 아닌, 나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보는 ‘창’을 뜻한다. 우리는 TV 튜너가 없는 제품들도 생산하고 있다. 요즘은 생방송을 별로 보지 않고, 뉴스도 유튜브로 접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정보에 큰 관심이 없다. 우리는 이를 ‘스크린 시대’라 부르며 TV의 의미가 변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화질이나 소리 같은 특성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콘텐츠가 중심이다. 나의 취향에 따라 아트, 스포츠, 게임 등 원하는 스크린으로 변화하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 얼마 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설치미술가 댄 아셔(Dan Archer)와 함께 대형 미디어아트를 선보이기도 했다.
“미술 작품을 주위 공간과 융합하게 설치하는, 이른바 ‘인스톨레이션 아트(insta- llation art)’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장소다. 아셔는 DDP 잔디마당이나 한강공원 등을 원했는데, 대부분 사람들이 모이기 수월해 장소 선택이 어렵지는 않았다. 그는 단순히 아티스트가 아니라 액티비스트(activist: 사회적·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캠페인이나 활동에 적극적으로 힘쓰는 사람)이기도 한데, 이번 전시는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 자연과의 조화 등의 가치관을 담은 완벽한 야외 전시였다고 생각한다. 서울이 너무 밝아서 오로라가 잘 안 보일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잔디마당에서 음악과 함께 사람들이 오로라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좋은 선택이었다.”
- 향후 공공미술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계획도 있나.
“공공미술에 대한 관심이 크다. 과거 런던에서 근무했을 때 이런 경험이 있다. 늘 건너는 횡단보도 신호등이 갑자기 공사를 해서 불편했는데, 공사가 끝나고 보니 신호등이 아름답게 변해 있더라. 그 길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타지에서의 외로움을 위로해주었달까. 그 작품은 잉카 일로리의 작품이었는데, 한국에도 방문하고 수상도 많이 한 작가다. 그가 뉴욕 할렘가의 신호등, 농구장, 학교 벽을 아름답게 꾸미자 그 지역 범죄율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아트의 ‘힘’이 공공미술의 가치다. 공공미술에 큰 관심을 갖고, 공공미술에 대한 활동을 확장하고자 한다.”
- LG 올레드가 10주년을 맞았다. 앞으로 10년 후, 당신이 그리는 미래가 궁금하다.
“내가 LG 올레드를 만든 사람은 아니지만, 가장 애정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일 것이다. 내 역할은 ‘부모’라고 생각하며 이를 잘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OLED(유기발광다이오드)는 ‘자발광’을 의미하는데, LG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브랜드로 탄생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LG 올레드가 사람들에게 상징적인 가치를 지닌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이다. 또 OLED의 자연스러운 색 표현은 보다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세상을 보여준다. 본연의 색상이 사람들의 안목을 높이리라 믿는다. TV는 세상을 바라보는 창이자, 문화의 중심이 돼야 한다. LG 올레드가 앞으로 10년 동안 기술 발전을 통해 다양한 형태와 콘텐츠를 개발하며, 문화를 주도하는 브랜드가 되길 바란다.” LG전자는 ‘프리즈 서울 2023’에서 세계 최초 97형 무선 올레드 TV를 통해 한국 추상미술의 거장 김환기 작가의 작품을 새롭게 선보였다. 그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를 비롯한 원화 12점과 함께, 그의 작품을 새롭게 표현한 미디어아트 5점을 올레드 TV로 소개한 것. 전시에는 박제성 서울대 교수, 안마노 작가, 김대환 작가, 미디어아트 그룹 버스데이 등 국내 대표 디지털 아티스트들이 참여했다.
글 조진혁 프리랜서 | 사진 박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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