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철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시니어 컨설턴트

[special] “비만 치료제, 새 시장 열려…향후 성장세 크다”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퀀텀 점프’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에 대한 이호철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시니어 컨설턴트의 평가다. 약사 출신인 이 컨설턴트는 제약 회사와 증권사 제약·바이오 부문 애널리스트를 거쳐 현재는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재무자문본부 생명과학 및 헬스케어 산업 전문팀에 몸담고 있다.

이 컨설턴트에게 최근의 비만 치료제 트렌드가 제약 업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지 물어봤다. 더불어 이 시장에 투자하려는 개인투자자가 참고할 만한 조언도 함께 들어봤다. 다음은 이 컨설턴트와의 일문일답.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는 우리 몸의 글루카곤 유사펩타이드(GLP-1)와 유사한 작용을 통해 체중을 줄인다고 들었다. 어떤 원리인가.
“GLP-1은 우리 인체 내에서 자연적으로도 분비되는 호르몬 이름이다.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올라간다. 이때 ‘밥 그만 먹으세요’라는 신호를 주기 위해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이 GLP-1인 셈이다. GLP-1이 분비되면 음식이 천천히 소화되고 포만감이 오래 간다. 뇌에도 영향을 끼쳐 식욕을 떨어뜨린다. 이것이 비만 치료제의 가장 큰 원리다. 기본적으로 음식의 섭취량을 줄이는 원리라고 이해하면 된다.

혈당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 혈당이라는 게 결국 혈액에 떠다니는 포도당의 농도를 말하는 건데, 음식을 먹으면 포도당이 혈액에 많이 떠다닐 수밖에 없지 않겠나. 우리가 당뇨병을 이야기할 때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에 대해 많이 거론하지 않나. 온몸에 있는 세포들이 포도당을 당겨와 사용하도록 촉진하는 게 인슐린의 역할이다. 그 역할을 GLP-1도 보조한다. 그래서 이미 당뇨 치료제로 GLP-1 유사체가 엄청나게 많이 쓰이고 있었다. 그러다 최근 이 약물이 비만 치료 효과도 뛰어나다는 사실이 부각되며 치료 영역이 확대됐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유명인이 이 비만 치료제를 통해 살을 뺀 것으로 알려지며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 같던데.
“물론 그런 측면도 크지만, 사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인 것 같다. 결국 위고비가 주목받게 된 결정적인 원인은 비만 치료제로서의 효과다. 과거 시중에 나왔던 치료제는 9% 정도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였는데, 위고비는 16%에 달하는 감량 효과를 냈다는 결과가 나오면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됐다. 그 결과를 보고 유명인들도 위고비를 맞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1년 넘는 장기간 동안 주사를 맞아야만 이 정도 감량 효과가 나오는 것이긴 하다.”

장기간 투약해도 부작용 등 큰 문제는 없을까.
“그 부분은 어느 정도 논란이 있다. 일각에선 자살 충동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아무래도 식욕을 억제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 뇌에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우려가 나오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명확한 부작용이 입증된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모든 약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함께 갖고 있다. 비만 치료가 중요한 이유는 지방이 혈관 벽에 쌓이면서 동맥경화, 협심증 등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최근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가 심혈관계 질환에도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했다. 지금은 비만 치료제의 부작용 이슈보다 긍정적 이슈가 더 빨리 드러나는 상황이다. 그래서 해당 기업의 주가도 올라가고 있는 것 아닐까 싶다.”

가장 시장성이 높은 제품은 무엇이라고 보나.
“아무래도 일라이릴리의 ‘마운자로’가 체중 감량 효과(12개월 투약 시 23%)가 가장 높기 때문에 현시점에선 독보적이라고 본다. 다만 노보노디스크가 세마글루타이드(위고비의 성분명) 기반의 먹는 약을 개발했다는 점이 또 다른 변수다. 이미 노보노디스크는 경구형 당뇨 치료제에 대해 미국 식품의약품안전국(FDA) 승인을 받은 상태고, 경구형 비만 치료제 임상은 3상까지 성공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먹는 비만 치료제 또한 승인받을 가능성이 높다. 노보노디스크가 경구형 비만 치료제를 본격적으로 출시하면 시장성이 상당히 클 것 같다. 한편 일라이릴리도 경구형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노보노디스크가 (경구형과 주사형을 포함해) 비만 치료제 시장을 선점하고 있지만, 두 업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형국라고 볼 수 있다.”
[special] “비만 치료제, 새 시장 열려…향후 성장세 크다”
국내 기업들의 비만 치료제 시장 진출 분위기도 궁금하다.
“우리나라에서 자체 비만 치료제 신약을 개발하고 있는 회사는 유한양행, LG화학 등 몇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대부분이 동물실험, 임상 1상 정도의 단계다. 임상 3상까지 다 완료한 뒤 출시까지 하려면 앞으로 최소 5년에서 7~8년 이상은 걸린다고 봐야 한다. 확률적으로 따지면 임상 1상도 성공하지 않은 약의 최종 성공 확률은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

글로벌 빅파머들의 경우, 쉽게 말해 1000억 원짜리 프로젝트를 10개씩 진행한 뒤 그중 1개를 성공시켜 비즈니스를 이어 가는 구조라고 이해하면 된다. 반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그 정도 ‘규모의 경제’가 아직은 안 된다. 신약 개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적으로 진행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은 먼 미래의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아직 주가에 반영할 단계도 당연히 아니라고 본다.”

비만 치료제 시장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국내 주식 투자는 시기상조일까.
“단순히 비만 치료제 개발 가능성만을 보고 국내 기업에 대한 투자를 결정하기에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성격이 더 크지 않나 싶다. 당장 제품 출시로 큰 수익을 거둘 만한 국내 회사는 아직 안 보이는 게 사실이다.

그래도 투자를 고려한다면 국내사 중에서는 한미약품이나 펩트론이 거론되는데, 개인적으로 펩트론은 이미 과도하게 주가가 오른 종목 중 하나라고 본다. 한미약품은 비만 치료제 이슈 외에도 여러 모멘텀으로 인해 등락이 큰 편이라, 주가가 내려갔을 때 살 만한 종목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한미약품은 에페글레나타이드(GLP-1 계열 성분)를 내수용으로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임상을 하게 되면 비용과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들 텐데, 국내 시장은 상당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국내 시장에도 위고비 등이 조만간 출시되지 않을까.
“지난 4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품목허가를 받으며 국내 진출할 수 있는 요건은 충족했지만, 실제로 제품이 국내에 출시돼 본격적인 영업을 하게 될 시점은 기약이 없는 상태다. 미국에서도 물량이 부족해 못 파는 상황이라, 한동안은 삭센다가 우리나라에서 접할 수 있는 비만 치료제 주사의 전부일 것 같다. 삭센다만 이기면 되는 게임이라면, 내수용 제품의 시장성이 꽤 있다고 보는 거다.

수조 원대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하는 것은 솔직히 무모한 도전인 것 같고, 글로벌 빅파머에 기술 수출을 하는 것은 또 다른 리스크가 있다. 한미약품은 이미 2015년에 에페글레나타이드를 글로벌 제약사 사노피에 기술 수출한 경험을 갖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임상 3상을 진행하던 2020년 6월 권리가 반환됐다.

그런 리스크 없이 훨씬 안전하고 확실한 내수 시장을 타깃으로 잡은 것은 좋은 선택이라고 본다. 비만 치료제 시장에서 비교적 짧은 기간 내에 수혜를 받을 수 있는 종목으로 꼽을 만하다. 다만 이런 이유만으로 투자를 하기에는 섣부르다. 앞서 언급했듯 여러 모멘텀과 주가 변동성을 고려한 뒤 투자하는 쪽을 권한다.”

국내 종목은 주가가 과도하게 오른 측면이 있다고 했는데,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 등 해외 주식에 투자할 타이밍도 늦은 걸까.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는 아직 주가가 더 오를 여지가 많다고 본다. 비만 치료제 시장에 투자하고 싶다면 이들 기업을 보는 게 훨씬 유리하다. 쉽게 말해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퀀텀 점프’다. 우리가 그동안 쉽게 해결하지 못했던 비만, 당뇨를 이제는 좀 잡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업계에서 매출이 가장 높았던 바이오 의약품으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휴미라’를 들 수 있는데, 물질특허가 만료돼 향후 매출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반면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 특허는 앞으로 성장세가 크다. 노보노디스크와 일라이릴리로 유동성이 몰릴 수밖에 없다.”

비만 치료제 관련주는 리스크가 낮은 방어주라고 판단해도 될까. 투자 팁을 준다면.
“우선 노보노디스크나 일라이릴리는 확실하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어주에 가깝다고 본다. 지난해 금리가 오르고 유동성이 안 좋을 시기에도 계속해서 주가가 올랐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확실한 곳에 투자하기를 원하는 투자자들의 수요가 그곳에 몰렸고, 그만큼 기업의 현금 흐름이 굉장히 좋아졌다.

반면 우리나라 제약 시장에는 방어주로 여길 만한 기업이 사실상 없다고 본다. 애초에 내수 시장 규모가 지나치게 작다. 유한양행이나 한미약품 등은 장기적으로 우상향할 것으로 보이지만 변동성이 크다. 따라서 노보노디스크, 일라이일리 등 해외 주식은 장기 투자로 가져가고, 한미약품 등 국내 주식은 주가가 빠지는 시점을 잘 지켜보며 단기 투자 전략을 세우는 것을 추천한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ㅣ사진 이승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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