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ALK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

텀블러가 지구를 못 구할지라도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요리할 때 이거 넣으면 참 맛있는데 말이야.” 네모난 마가린 통을 가리키며 1960년대생인 아빠가 말했다. “요즘은 차마 못 사겠어. 하도 몸에 나쁘다고들 하니.” 아빠와 동갑인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우리 어릴 때는 오히려 건강에 좋은 거라고 배웠잖아. 동물성인 버터는 몸에 나쁘고, 식물성인 마가린을 먹어야 한다고.”

마트에서 오간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당시 십대였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이 말을 들을 무렵 가장 핫한 건강 트렌드는 바로 ‘지방(특히 트랜스지방) 피하기’였기 때문이다. 고지방 식단이 비만, 당뇨, 암을 비롯해 온갖 질병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툭하면 보도되던 시기였다. 뉴스와 신문으로부터 공격받던 다양한 식재료 중에서도, 마가린은 순수한 트랜스지방을 뭉쳐 놓은 최악의 불량식품으로 꼽혔다. 그런데 그런 물질이 ‘식물성 건강식품’으로 대접받던 시기가 있었다고?

웃으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신기함과 동시에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꼈다. 동물성은 무조건 나쁘고 식물성은 무작정 좋다니, 이 얼마나 편협하고 획일적인 건강관인가. 그런 무지가 판치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죄로 자기도 모르게 나쁜 음식을 먹고 자랐을 엄마 아빠가, 내 눈에는 마치 시대의 피해자처럼 보였다. 그날 우리 가족의 장바구니에는 저지방 우유, 무지방 요거트, 기름에 튀기지 않았다는 건강 시리얼 따위가 담겼다.

이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 기억이다. 지금의 내게는 십대 자녀가 없지만, 만약 있다면 그 아이는 내 어릴 적 건강 상식을 듣고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진짜 무식했네. 고지방은 나쁘고 저지방은 좋다고? 진짜 나쁜 건 지방이 아니라 당류잖아!”

내가 성장하는 동안에만도 건강식의 기준은 수차례 전환점을 맞았다. 만병의 주범 취급을 받던 지방은 ‘키토제닉’ 붐과 함께 식이요법의 선봉장이 됐고, 동시에 ‘한국인은 밥심’이라며 치켜세워지던 각종 곡류는 기피대상으로 전락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가장 ‘핫’한 건강 키워드는 바로 정제당류일 것이다. 설탕과 액상과당이 성인병의 주범이라는 연구 결과가 쏟아지면서 이른바 ‘제로슈거’를 표방하는 음료들이 시장을 휩쓸고 있다.

어쩌면 정말로, 제로 음료가 건강에 이로울(혹은 덜 해로울) 수도 있다. 탄수화물을 피하고 건강한 지방을 섭취하는 키토제닉 식단이 건강 수명을 연장해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건강에 대한 인류의 지식이 너무나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지금 정설로 인정받는 이론조차 언제 뒤집힐지 알 수 없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저도 모르게 발암물질을 주식으로 삼던 과거를 떠올리며 괴로움에 몸부림칠 수 있다.

현실이 이렇다는 점을 감안할 때, 우리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2가지다. 첫째, 회의론자가 된다. 건강 관련 학설은 어차피 못 믿을 것이니, 아무런 기준도 없이 그냥 내키는 대로 먹으며 산다. 둘째, 비판적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건강식 트렌드를 눈여겨보되 맹신하지는 않고, 내 몸의 변화를 살펴 가며 다양한 시도를 해본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지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만약 여기서 두 번째 선택지를 고른 사람이라면,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가 던지는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여볼 만할 것 같다. 건강과 마찬가지로, 지난 수십 년 사이 환경보호에 대한 관점은 몇 번이나 전환기를 맞았다. 한때는 물이든 석유든 무조건 절약이 답이라는 인식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텀블러나 전기자동차처럼 ‘친환경’ 딱지가 붙은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세였다. 요즘은 채식 지향, 공정무역, 미니멀리즘 같은 키워드가 힘을 얻는 추세다. 달마다 ‘신상’ 에코백을 구입하는 대신 소비 자체를 자제하고, 꼭 무언가를 사야 한다면 업사이클링 가구나 제철 국산 농산물처럼 탄소발자국을 최소화하는 제품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텀블러로 지구를 구한다는 농담>은 기본적으로 최신 환경보호 트렌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오는 아보카도 대신 국내에서 생산된 채소를 먹고, 거대한 전기차를 구입하는 대신 차량 공유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비행기로 공중에 석유를 뿌리는 대신 밤기차로 느긋하게 근교 여행을 즐기자고 말한다. 책 곳곳에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의 필요성과 실천 방법, 이런 선택을 했을 때 아껴지는 자원과 줄어드는 탄소배출량이 구체적인 수치로 안내돼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저자는 스스로 제시한 방법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한다. 통계나 이론은 언젠가 바뀔 수 있고, 무엇보다 세상 모두가 저자와 똑같이 여유로운 조건(유럽에 거주하는 50대 중산층 백인 남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실제로 자신의 노력을 ‘도덕적 과시’로 치부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그는 책을 통해 말한다. 하지만 최소한 그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 높아지는 기온과 망가지는 환경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상을 변화시키고, 목소리를 내며 참여를 호소한다.

저자가 공유한 정보와 경험담을 바탕으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길에는 크게 2가지가 있다. 첫째, 어차피 불확실한 주장일 뿐이니 가볍게 무시하고 내키는 대로 소비하며 산다. 둘째, 100% 똑같지는 않더라도, 환경의 변화를 살펴 가며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시도를 다양하게 해본다. 지금보다 조금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글·그림 서메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