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처분신탁이란 신탁 계약에 기해 원래의 소유자인 위탁자를 대신해 수탁자인 은행이 부동산을 처분해주는 신탁을 말한다. 얼핏 알쏭달쏭한 이 신탁을 어떤 경우에 활용하면 빛을 발할까.
쉽지 않은 유산기부, 부동산처분신탁 만나면
60대 여성 A씨는 최근 부친이 사망한 후 빌라 여러 채를 상속받았다. 빌라를 통해 임대수익은 어느 정도 얻겠지만, 평소 왕래가 없고 사이도 좋지 않던 형제들과 공동상속을 받다 보니 이들과 잘 조율하면서 관리해 나갈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중 문득 생전에 부친이 입버릇처럼 자신의 재산을 뜻 깊은 곳에 기부하고 싶다고 하셨던 게 생각이 났다. 이에 A씨는 부친의 유지를 받들자는 생각에 상속받은 재산을 기부하기로 결심하고, 10곳 넘는 유명 기부단체에 문을 두드렸다.

결과는 어땠을까. 기부를 하겠다고 찾아가면 모두가 환영하고 받아줄 줄 알았으나 그렇지 않았다. 부동산 전체가 아닌 A씨의 지분만을 기부하는 데다가 다른 상속인들과 협의하면서 부동산을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많은 기부단체들이 부동산을 기부 받는 것에 어려움을 느낀다. 고유재산으로 편입 문제나, 부동산 감정 등 번거로운 제약들이 따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부동산 지분만을 기부하는 것이라니. 결국 A씨는 고민 끝에 하나은행리빙트러스트센터를 찾아와 상담을 요청했고, 부동산처분신탁 계약이라는 것을 통해 유산기부의 첫발을 디딜 수 있었다.

부동산처분신탁으로 유산 정리한다면
유산정리란 1차로 고인이 남긴 재산을 상속인들에게 적정하게 배분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더 나아가 공익법인 등에 기부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특히 1인 가구가 증가하고 고령화사회로 접어들면서 기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점차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고인이 남겨준 유산을 기부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재 대부분의 기부단체는 금전 기부에 초점을 맞추기 마련이다. A씨처럼 부동산 지분만을 기부하겠다면 기부단체에서는 주저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럴 때는 부동산처분신탁을 활용하면 좋다. 부동산처분신탁이란 신탁 계약에 기해 원래의 소유자인 위탁자를 대신해 수탁자인 은행이 부동산을 처분해주는 신탁을 말한다.

매수자 물색, 매매 계약 체결, 잔금 수령 등 처분의 시작과 완료에 이르기까지 은행이 개입해 위탁자가 수고를 덜하고, 매수자에게도 매매 거래의 안정성을 부여하는 장점이 있다. 앞의 사례에서 보면 공유지분자들인 형제들 의사를 합치시켜 처분을 진행해야 하는데, 부동산처분신탁을 통해 은행이 그 중재적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A씨는 사이가 껄끄러운 형제들과 직접적인 대면을 피할 수 있으며, 매수자는 매도자인 은행을 신뢰해 계약 성사율이 높아질 수 있다. 즉, A씨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도 은행을 통해 부동산을 보다 수월하게 처분하고, 기부를 실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부동산처분신탁, 이럴 때 활용해야
자산이 축적되고 자녀의 교육 문제 등이 엮이면서 해외로 나가서 거주하는 재외동포들의 숫자도 늘어나고 있다. 2021년 기준 외교부의 재외동포 현황 자료를 살펴보면 전 세계 재외동포 숫자가 약 732만 명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들 재외동포도 고령화 추세에 들어가면서 자녀들에 대한 상속과 증여 문제로 고민이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국내에 부동산을 소유 중이지만 시장 현황에 밝지 못하고, 특히 가족 전체가 해외에 있어 관리까지 어려울 때는 누군가가 아예 처분해주어 미리 현금화하기를 희망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해외에 있으면서 국내 부동산을 처분한다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겠는가. 설사 위임장을 작성해 누군가에게 대리했다고 해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특히나 고가의 부동산이라면.
예를 들어 오랜 기간 보유하고 있던 상가를 개발업자에게 매각하려고 하면 미리 임차인들의 명도에 관해 교통정리가 돼 있어야 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국내 법률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계약서에 본인에게 불리한 독소조항이 있음에도 지나칠 수 있다.

재외동포뿐만 아니라 국내 고령자들도 부동산 처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 편이다. 수도권에 좋은 땅을 갖고 있다 보니 수시로 이곳저곳에서 연락은 오는데 건축허가니 토지사용승낙이니 언뜻 이해되기 어려운 계약 조건으로 얘기가 오가게 되면 매각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특히, 토지 같은 경우는 매입하려는 시행사들이 본인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하려는 경향이 있어 다방면에서 꼼꼼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부동산을 처분할 때는 돌다리도 꼭 두들겨보고 건너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접근해야 한다. 이처럼 현금화 과정은 복잡하고 어려울 수밖에 없다. 고가의 자산을 안전하게 팔고 싶다면 부동산처분신탁을 활용해보는 것이 좋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60%를 넘는다고 한다. 선진국 대비 높은 수준이다 보니 우려의 시각도 존재한다. 그만큼 부동산과 연계된 많은 분야들이 전문가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가 많아지고 있다. 과거 부동산처분신탁은 위탁자를 대신해 잘 처분한다는 계약이 주였다. 하지만 현재의 부동산처분신탁이 활용되는 순간에서 보면 처분이라는 단순 의미를 넘어서 유산기부를 위한 매개체 역할로도 진화하고 있으며, 이에 발맞춰 다양한 형태의 처분 수탁을 의뢰하는 부동산 건수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미래에 부동산처분신탁이 더 주목받고 기대되는 이유다.

글 손지호 하나은행리빙트러스트센터 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