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박 모(50) 씨는 갱년기가 되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등을 바닥에 대면 금방 잠들곤 했지만, 요즘엔 밤이 두려울 정도로 잠이 안 온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갑자기 열이 나고 땀이 나서 잠도 잘 안 오는 데다, 질 건조 때문에 성생활도 쉽지 않다. 늘어 가는 피부 주름살, 뱃살 때문에 거울 보기도 싫다. 자식들이 다 커서 대학까지 보내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허전함과 상실감이 크고 우울함을 자주 느낀다.
잠 안 오고 살 찌고…갱년기 주범은 ‘여성호르몬’
박 씨의 크고 작은 변화들의 핵심엔 '여성호르몬'이 있다. 여성은 50세 전후엔 여성호르몬이 급감하는 갱년기를 겪는다. 여성의 여성호르몬 양은 배란 주기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보통 40~400pg/mL 정도 된다. 하지만 50세 전후로 폐경을 하면 여성호르몬이 급격하게 떨어져 10pg/mL(젊을 때 4분의 1~40분의 1) 이하까지 떨어진다. 그러면서 몸의 이상징후가 30가지 이상 나타난다. 안면홍조 같은 가벼운 증상부터 심혈관, 치매 같은 심각한 질환까지 다양하다. 국내 여성의 90%가 이러한 증상을 겪는다. 여성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무슨 일을 해 왔던 것일까.

매끈한 피부·잘록한 허리…여성호르몬의 마법
'아기 피부 같다'고 하면 여성이 먼저 떠오르는 이유는 여성에게 월등히 많이 분비되는 여성호르몬 때문이다. 여성호르몬이 많으면 남성이든 여성이든 피부 속 '콜라겐'이 많아져 피부 탄력성이 좋아진다. 여성의 잘록한 허리도 여성호르몬 덕분이다. 여성호르몬은 임신·출산 때문에 엉덩이에 지방이 잘 축적되도록 한다.
반면 여성호르몬은 복부지방 분해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어 잘록한 허리를 갖게 될 수 있다. ‘콜라병 몸매’가 여성호르몬 덕분인 것. 그러나 폐경이 되면 여성호르몬이 줄면서 복부비만이 증가하게 된다. 근육양이 감소하고 이는 기초대사량의 저하로 이어져 비만은 가속화된다.
동맥경화를 예방해 치명적인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낮춘다. 폐경 전 여성은 동일 연령의 남성에 비해 심혈관 질환의 빈도가 3분의 1 정도로 낮다.
여성호르몬이 혈관을 확장시키고 혈관세포의 기능을 좋게 만들어 동맥경화를 예방하기 때문. 또한 총콜레스테롤을 줄이는 동시에 좋은 콜레스테롤인 고밀도 콜레스테롤을 증가시키고 이상지질혈증의 주요 원인이 되는 나쁜 콜레스테롤인 저밀도 콜레스테롤은 감소시킨다.
여성호르몬은 질 점막을 촉촉하고 탄력있게 해준다. 그래서 성관계를 할 때 통증을 줄이고 질 손상을 방지한다.
여성호르몬이 줄면 질 점막이 얇아지고 건조해지며 질 위축이 오게 되는데, 이때 여성호르몬이 함유된 질정제를 쓰는 것도 여성호르몬 보충을 위한 것이다. 여성호르몬이 줄면 방광의 탄력성도 감소되며 방광을 지지하는 조직의 이완으로 방광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이 때문에 소변을 자주 보게 되고 밤에도 여러 번 일어나 화장실을 찾게 된다.
여성호르몬은 뼈와도 관련이 있다. 뼈를 만드는 세포(조골세포) 분화는 촉진하고, 뼈를 없애는 세포(파골세포) 분화는 억제해 뼈의 생성 속도는 높이고 뼈의 흡수 속도는 낮춰 뼈를 단단하게 한다.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 수많은 증상이 나타난다. 대표 증상은 아래와 같다.
△안면홍조·시력감퇴= 갱년기 여성은 갑자기 가슴부터 시작해 목, 얼굴, 팔에서 오한과 발한을 경험한다.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뇌 속에 온도를 조절하는 중추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시력이 점차 흐려지거나 안구가 쉽게 건조해지기 쉽다.
△우울증·건망증·무기력증= 갱년기가 되면 아무런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이 지속된다. 또 기억력이 떨어져 자주 깜빡하는 일이 생긴다. 이는 사람의 인지·기억능력을 담당하는 뇌의 해마 부위에 많은 여성호르몬 수용체가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건조= 갱년기 여성에서 여성호르몬 분비가 감소하게 되면 질과 요로계도 영향을 받는다. 질 점막이 얇아지고 건조해지며 탄력성을 잃고 위축이 오게 된다. 호르몬 부족 상태가 계속되면 질은 더욱 건조해져 성관계 시 통증이 생기고 손상을 받거나 감염되기 쉬운 상태가 돼 자연히 부부관계를 피하게 된다.
△요실금= 여성호르몬이 감소하면 요로 상피가 얇아지고 방광 탄력성이 떨어져 방광 조절 능력이 떨어진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자신도 모르게 소변이 나오는 긴장성 요실금이 나타나고 요도염이나 방광염에 잘 걸리게 된다.
△심혈관 질환= 폐경 후 여성호르몬이 감소하게 되면 몸에 이로운 고밀도 지단백콜레스테롤은 낮아지는 반면, 몸에 해로운 저밀도 지단백콜레스테롤은 높아진다. 이러한 콜레스테롤 수치의 변화로 폐경 후에는 동맥경화성 심혈관 질환, 즉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증 등의 빈도가 남성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증가한다.
△골다공증= 여성호르몬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는 폐경기부터는 약 5~7년에 걸쳐 동일 연령의 남성에 비해 10배 정도의 골 손실이 일어난다. 골 손실이 많이 일어나는 부위는 척추, 대퇴부, 골반부, 장골 등으로 심하면 척추에 압박 골절이 생겨 요통이 생기고 신장이 줄어들거나 등이 굽기도 한다.
△치매= 폐경 후 에스트로겐 부족은 치매(알츠하이머질환) 발생과도 연관이 있다. 대한폐경학회는 폐경 후 10년 내 비교적 젊은 폐경 나이에 호르몬요법을 시작하면 치매 위험도를 낮출 수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여성호르몬 보충요법 받아도 될까
여성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생기는 크고 작은 증상들은 여성호르몬을 보충하면 좋아진다. 정확하게는 여성호르몬 중에서도 ‘에스트로겐’ 보충요법이다. 일례로 갱년기 여성이 가장 불편해하는 열감, 안면홍조가 좋아진다. 열감, 안면홍조는 대표적인 혈관 운동 증상이다. 에스트로겐을 보충하면 변화무쌍한 혈관 운동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 효과는 95%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다. 안면홍조는 주로 밤에 나타나므로 호르몬 요법은 수면장애까지 호전시킨다.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4주 혹은 그 이상 기간이 필요하다.
매사 우울함을 느끼는 경우에도 에스트로겐을 투여하면 심리 증상이 줄어든다는 보고가 있다. 갱년기 가벼운 우울증은 에스트로겐의 투여로 호전되며, 항우울제의 효과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에스트로겐이 중증 우울증에서 항우울제의 효과적인 보조 치료로 사용될 수 있다.
한편, 여성호르몬 보충요법을 하면 유방암 위험이 높아진다는 소문 때문에 치료를 망설이는 여성들이 많다. 폐경 후 여성호르몬 요법과 유방암과의 연관성은 예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현재까지의 결론은 에스트로겐 단독 투여 요법은 유방암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토겐 병합 투여 요법은 유방암의 위험도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유방암의 발병률은 1만 명당 8명에 불과할 정도로 적다. 나머지 9992명의 여성은 평균 5.2년 동안 여성호르몬을 복용했어도 추가로 유방암이 생기지 않았다. 갱년기 증상 심하면 여성호르몬 보충요법을 고려할 만하다.
글 이금숙 헬스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