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노 크레티앙 프랑스 사회보호연구소 소장

프랑스 정부가 강행한 연금개혁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 9월, 프랑스 현지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브루노 크레티앙 프랑스 사회보호연구소 소장은 연금개혁안에 대해 “난파 위험에 처한 배가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해, 일부 적재량을 바다에 버리는 것”이라고 비유했다. 또한 이번 개혁 이후에도 연금 제도로 인한 재정 적자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2030년경에는 또 다른 개혁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브루노 크레티앙 소장과의 일문일답.
[연금개혁]브루노 크레티앙 소장 “프랑스, 7~8년 후 또 다른 연금개혁 필요할 것”
-프랑스 정부가 올해 추진한 연금개혁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이번 연금개혁안은 당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추진하려던 강력한 연금 개혁에 비해서도 완화된 정책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5년 전 매우 강력한 연금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보편적 연금 제도(42개에 달하는 연금 제도를 하나로 통합하는 개혁)’를 시행하고자 했다. 연금 재정은 건드리지 않고, 모든 연금 제도를 바꿔보자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재선 이후 이전 개혁과는 다르게 기존 제도나 구성은 건드리지 않고, 은퇴 연령을 상향시키려는 개혁을 추진하게 됐다. 다소 완화된 개혁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개혁으로 은퇴 시점이 2년 연장된 것도 의미가 있지만, 사실 3년 정도는 연장됐어야 실질적으로 연금 재정 수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연금 재정 개선 효과가 제한적인 정책인 탓에 7~8년 후, 즉 2020년대 말 또는 2030년대 초에는 새로운 개혁이 필요할 것이라고 판단한다.”

-프랑스 정부는 ‘연금 제도를 개혁하지 않으면 곧 재정 적자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다. 연금 제도로 인한 프랑스의 재정 적자 위험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인구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연금 제도는 프랑스 재정의 구조적 적자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연금 제도는 사회적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더욱이 현재 연금 수혜자들은 자신들이 낸 규모에 비해 더 큰 이득을 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나치게 많은 인구가 한꺼번에 은퇴해 연금 혜택을 누리게 되면서, 연금 재정 수지의 불균형을 초래한 셈이다. 은퇴 연령이 65세에서 60세로 5년 낮아진 1980년대 초반부터 부채로 인해 프랑스의 재정 상황이 극도로 심각해졌다. 현재 프랑스 부채는 3조 유로를 초과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의 방식으로 보험료 인상이 아닌 정년 연장을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프랑스가 지난 20년 동안 진행한 연금 개혁에서 보험료 인상이 주된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실제로 지난 20년간 이뤄진 연금 개혁 노력의 70%가 보험료 인상에 치우쳤다. 이는 결국 근로자 임금을 올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연금 재정의 균형을 이뤄야 하기에, 더 이상 납입금 인상의 길이 아닌 은퇴 연령을 연장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마치 난파 위험에 처한 배가 다시 균형을 잡기 위해, 일부 적재량을 바다에 버리는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연금 개혁에 대한 프랑스 국민들의 반대가 격렬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프랑스인에게 연금 개혁은 어떤 의미인가.
“프랑스인들은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약 4~5년 정도 이른 나이에 은퇴를 한다. 평균적으로 프랑스 남자 은퇴자는 22년 6개월, 여자 은퇴자는 26년 6개월의 은퇴 생활을 보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62세인 내 주변만 살펴봐도, 내 연령대의 3분의 1만이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프랑스인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는 삶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이 더 크다. 프랑스인들은 이제껏 어느 국가도 갖지 못했던 사회보장제도를 만들어서 정착시켰는데, 이런 사회보장제도의 2가지 축이 의료 체계와 은퇴 제도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프랑스인들은 자국의 의료 체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이번 연금 제도 개혁을 마주하며 프랑스도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해야 한다는 점에 당혹감을 느꼈다고 본다. ”

-향후 프랑스 연금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앞으로 기존의 연금 지급 외에 ‘부양의 문제’가 추가로 발생하게 될 것이다. 물론 건강한 노년층 은퇴자도 늘고 있지만, 90세가 넘어가는 경우 예전만큼의 활동이 어려워진다. 노령화 과정에서 붕괴된 가족 관계(배우자 사망·이혼·자녀와의 불화 등)로 인한 은퇴자 빈곤 문제도 좌시할 수 없다. 이는 향후 연금 개혁의 주요 축이 될 것이다. 여성 은퇴자의 유족연금 혜택도 고려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여성은 남성보다 더 오래 살기에, 남편 사후 54~60%의 유족연금을 수령하는 여성 은퇴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겪게 된다. 미혼모 역시 동일한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다.”

-연금 개혁을 논의 중인 한국에 건넬 조언이 있다면.
“노년층 증가와 청년층 감소는 모든 국가가 겪는 문제다. 또한 가임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증가함에 따라, 출산·육아에 대한 부담감도 증가하고 있다. 국가는 출산·육아를 위한 제반 시스템을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출산율 저하로 청년 세대가 줄어든다면 이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방법이 있고, 보험비 납입 외에 다른 방식을 통해 연금 수익율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 해외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여 연금 재정을 보강하는 방식이 이에 속할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은 이민자를 받아들여 경제활동인구를 높이는 것이다. 연금 제도는 경제 활동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된 노년층이 무한 빈곤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보장 시스템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100년도 되지 않은 이 시스템이 생기기 이전에는, 소수 재력가를 제외한 대다수의 노년층이 가족 부양에만 의지하는 빈곤한 삶을 영위해야 했다. 이런 측면에서, 건전한 연금 재정을 유지하기 위한 개혁은 필수적이라고 생각한다.”


프랑스=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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