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 제무르 파리1대학 경제학 교수

프랑스 정부가 강행한 연금개혁안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9월, 프랑스 현지 전문가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미카엘 제무르 파리1대학 경제학 교수는 이번 연금개혁안에 대해 “실제로 재정 위기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현 정부가 강조한 재정 위기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면서 “좀 더 시간을 갖고 개혁을 추진해야 했으며, 개혁의 방향성 면에서도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다음은 미카엘 제무르 교수와의 일문일답.
[연금개혁]미카엘 제무르 교수 “재정 위기, 과장된 측면 있어...더 큰 문제 고려해야”
-프랑스 정부가 연금 개혁을 추진한 가장 큰 목적은 무엇인가.
“정부가 이번 연금개혁안을 추진한 첫번째 목적은 노동 시장의 개혁이다. 은퇴 연령을 늦춰 더 오래 일할 수 있는 노동 인구를 확보하고, 노년층의 경제 활동 참여율을 높여 세수를 더 많이 확보하려는 의도다. 프랑스에는 이미 사회학적 관점에서 연구가 이뤄진 ‘재정 고갈 부각 정책(politique de caisse vide)’이라는 고전적인 패턴이 있다. 프랑스의 연금 제도는 인기가 너무 많아 정부가 연금 수령액을 삭감하는 정책을 펴기 어렵다. 따라서 정부는 연금 재정이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재정 적자 상황을 부각하곤 한다.”

-연금개혁안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실제로 재정 위기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현 정부가 강조한 재정 위기는 과장된 측면이 있다. 프랑스의 재정 지출 상황을 보면, 코로나19 사태 기간에 지출이 일시적으로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재정 위기를 강조하며 지출을 더 낮춰야 한다고 과장하고 있다. 좀 더 시간을 갖고 개혁을 추진해야 했다고 본다. 개혁의 방향성 면에서도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었다. 보험비를 인상하거나 수령액 인상률을 낮게 책정하는 등의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퇴 연령을 늦추는 급진적인 방법을 택했다. 바로 이 선택이 격렬한 반대를 낳은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본다.”

-이번 연금개혁안이 갖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모든 프랑스 국민이 64세까지 일할 수는 없다. 이미 현시점에도 62세까지 일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앞서 진행된 연금 개혁에 대한 연구 결과를 보면, 정년을 연장했을 때 경제 활동이 가능한 이들은 건강한 상태의 임원진급이었다. 반면 육체 노동자는 연장된 은퇴 연령까지 실업자가 되거나 빈곤한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실제 이번 개혁안으로 인해 64세 정년의 대상이 되는 이들 중 약 30만 명은 건강한 상태의 임원진급이지만, 15만 명은 연대소득대상자(RSA·기초수급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국가 기관에서 발표한 것이다. 불평등의 문제도 있다. 연금 지급 규정은 매우 복잡하다. 기대 수명도 모든 이들에게 공통적이지 않다. 64세 정년 연장 개혁안이 적용되면,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건강한 임원진은 64세까지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일하게 되는 반면 부양할 자녀를 지닌 여성이나 육체적으로 어려운 일을 하는 직업군은 정년이 연장된 기간 동안 실업을 겪거나 질환 등으로 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 이번 연금 개혁을 통해 일을 더 많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단기적인 효과를 낳을 수는 있겠으나, 장기적으로 그 효과는 미비할 것이라고 본다. 또 다른 연구 결과를 보면, 이번 정부의 연금 개혁은 당장의 재정 수지를 개선하는 효과가 있겠지만 그 효과는 2050년이 되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됐다. 즉, 또 다른 개혁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연금 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반대가 격렬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단하나.
“1968년 학생 혁명 이후 가장 큰 정치적·사회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노조가 한 목소리로 정책에 반대하는 것은 지난 30~4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 사회적 합의의 불통은 타협의 장을 거부한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대를 외친 극좌 성향의 노조도 있었지만, 타협점을 찾으려고 했던 노조가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정부는 어느 순간부터 타협의 문을 닫아버렸다. 정부는 연금 개혁을 관철시키려는 과정에서 종종 잘못된 수치를 제시하거나, 은퇴 생활자는 최소 1200유로를 받을 것처럼 믿게 하는 등 연금 개혁의 내용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이러한 불투명성은 연금 개혁에 동의한 지지층에게조차 분노를 야기시켰으며, 다수의 경제학자들은 정부가 보인 민주적 논쟁의 불투명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

-향후 프랑스 연금 정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은퇴 나이를 건드리기보다는 지금까지 건드리지 못했던 더 큰 문제들을 다뤄야 한다. 20년 후 충분한 연금 재정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연금 생활자에게 지급되는 금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20~30년 후 은퇴자들이 원하는 은퇴의 형태가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시점 프랑스인들의 은퇴 생활 수준은 양호하지만, 20년 후 은퇴자의 생활 수준이 어떨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2023년 은퇴자가 임금의 60%를 연금으로 수령한다면, 20년 후인 2043년에는 인플레이션을 적용했을 때 40% 수준의 연금을 수령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합리적인 방안은 재정 수입을 늘리거나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해결책이 적용되지 못한다면, 부유한 이들은 공적연금 외에 사적연금에 가입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공적연금의 재정이 부족해지면, 여전히 공적연금에만 의존해야 하는 빈곤층은 충분한 연금을 수령하지 못하게 된다.”

-연금 개혁을 논의 중인 한국에 건넬 조언이 있다면.
“연금 제도에는 기적의 비법도 이상적인 해결책도 없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연금 제도를 통해 한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은퇴 나이를 어느 시점으로 결정할 것인지와 은퇴자들이 누리고자 하는 생활 수준을 생각해보자. 대부분의 국가는 세대별 인구 불균형 현상을 맞닥뜨리고 있다. 어떤 연금 제도이건 불균형 문제는 존재한다. 은퇴자가 많아지면 근로자는 더 많은 보험금을 은퇴자를 위해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로자의 수가 적어져 보험금이 줄어든다면 은퇴자들은 빈곤에 처하게 된다. 이민자를 늘리는 것도 해결책이 될 수는 있지만, 정치적인 합의가 선결돼야 한다는 점이 문제로 남는다.”

프랑스=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