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TALK
애나 렘키 <도파민네이션>

도파민 중독 시대, 소소하게 행복하려면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요즘 인터넷 댓글창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 중 하나는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행복감과 즐거운 기분 등을 느끼게 한다. 시청률 대박을 기록한 인기 프로그램부터 마약 사기가 연루된 불미스러운 보도까지,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도파민의 잣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콘텐츠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형태가 무엇인지, 내용이 유익하고 유해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영상(혹은 글이나 그림)이 내 도파민을 얼마나 ‘터뜨리는지’가 중요하다. 대중의 도파민을 터뜨리는 데 성공한 콘텐츠는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을 차지하며 트렌드를 선도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어와 한국어가 기괴하게 섞인 콩글리시 문장을 쓰도록 만들고, 버스 정류장에 선 사람마다 발을 들썩이며 공중부양 스텝을 흉내 내도록 만든다. 말할 필요도 없이, 돈 냄새에 민감한 산업계는 이러한 붐을 놓치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수십억 원대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체포된 전청조가 ‘I am 신뢰예요~’라는 문구를 유행시키자마자 인터넷 창은 ‘I am OO예요~’라는 카피를 단 온갖 광고들로 뒤덮였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여기까지지만, 기업들이 앞다투어 뛰어든 광고 전쟁의 뒤에는 분명 돈으로 환산된 이익이 쌓이고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코트라이트는 이러한 현상에 ‘대뇌 변연계 자본주의(Limbic Capital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정의한 대뇌 변연계 자본주의는 ‘산업계가 소비자들의 과도한 소비와 중독을 의도적으로 촉진시키는, 기술적으로는 발전했으나 사회적으로는 후퇴한 비즈니스 시스템’이다. 그야말로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는 통찰이지만, 용어가 너무 어려운 탓인지 요즘은 다른 이름으로 더 많이 불리고 있는 것 같다. 대뇌 변연계 자본주의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도파민 경제’다.

<도파민네이션>의 저자, 애나 렘키 교수는 바로 이 도파민 경제를 파고든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학에서 정신의학을 전공한 그는 수많은 중독 환자들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중을 중독으로 이끄는 현대 경제 시스템의 어두운 민낯을 꼬집어낸다.

통계만 봐도 사회의 전반적인 중독 수치는 점점 올라가는 추세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거의 모든 사람이 일생에 한 번 이상 부정적인 의미의 중독을 경험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당장 저자 본인도 한때 우울증 치료 약물과 자극적인 로맨스 소설에 중독돼 고생한 경험을 공유했고, 지금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SNS를 줄여야 한다고 반성하고 있다).

중독을 이끌어내는 매개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유전이나 정신질환 같은 선천적 요소부터 후천적으로 생기는 정신적 충격, 사회 변화, 생활의 궁핍 모두 정상적인 사람을 무언가의 중독자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제치고 저자가 지목한, 중독에 가장 치명적인 기제는 바로 ‘접근성’이다.

우리 주변에는 강박적으로 매달리기 쉬운,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넘쳐나고 있다. <도파민네이션>에서 예로 드는 담배만 봐도 그렇다. 1880년에 개발된 담배말이 기계는 한 사람이 1분에 말 수 있는 담배의 개수를 4개비에서 무려 2만 개비로 늘렸다. 현재 전 세계에서 하루에 소비되는 담배는 약 180억 개비이며, 이 숫자는 600만 명에 이르는 니코틴 중독 사망자와 무관하지 않다. 마약과 향정신성 의약품을 포함한 중독성 약물 역시 과거에 비해 훨씬 강력해졌고, 구하기도 쉬워졌다.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들리는 헤로인과 펜타닐은 현대에 들어 개발된 합성 약물이고, 하다못해 대마초 하나라도 오늘날 유통되는 물건의 강도가 1960년대에 비해 최대 10배까지 강하다고 한다.

이외에도 알코올, 합성 조미료, 온라인 도박과 포르노물은 우리가 손만 내밀면 닿을 곳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여기에 더해, 우리가 산소와 같이 접하는 기술 자체에도 심각한 중독성이 있다. 기술은 불빛을 번쩍이게 만들고, 귀가 쉴 틈 없도록 요란한 음악을 틀며, 세상이 끝없는 기회와 더 큰 보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

자의에 의해서든, 사회의 암묵적 강요에 의해서든, 과도한 도파민에 중독되면 점점 강한 자극을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렘키 교수의 설명이다. 뇌의 신경 전달 체계에 내성이 생기면 더 이상 전과 같은 양의 자극으로는 쾌락을 느낄 수 없다. 게다가 인간의 뇌는 항상성을 유지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쾌감 쪽으로 기운 감정 상태를 수평으로 되돌리기 위해 고통 물질을 분비한다. 자극을 느낀 뒤 찾아오는 불안과 공허감, 우울감은 모두 이러한 뇌의 메커니즘이 작용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며, 심한 경우에는 복합 통증 증후군이나 섬유 근육통 같은 육체적 고통에 시달릴 수도 있다. 아쉽게도 한국은 통계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도파민네이션>에 따르면 미국인의 34%는 이미 일상에서 고통을 ‘자주’ 혹은 ‘매우 자주’ 느끼는 상태라고 한다.

이쯤 되면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미 너무나 거대해져 버린 도파민 경제의 사이클을 무슨 수로 끊어낸단 말인가. 그나마 희망적인 정보는, 한번 도파민에 중독된 뇌라도 일정 시간(최소 한 달 이상) 자극을 줄이면 다시 원래의 정상적인 메커니즘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 의존하는 대상을 대체할 건강한 습관을 찾고, 필요한 경우 병원에 방문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러한 노력의 목표는 분명하다. 상대적으로 덜 강한 자극에서 쾌락을 얻는 능력을 회복하는 것. 이를 통해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삶을 손에 넣는 것이다.

글·그림 서메리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