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5년 차 강병남 씨

행복한 뉴실버의 삶을 누리는 이들에겐 명징한 공통점이 있다. 바로, ‘돈’, ‘건강’, ‘관계’. 이 3가지 사이에서 자신만의 적절한 균형을 이루며 산다는 것. 은퇴 5년 차 강병남(62) 씨는 이 점을 누구보다 제대로 이해하고, 능동적으로 실천하고 있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
[big story]"인생 주기별로 자산 흐름 관리”
우리는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이는 거부할 수 없는 삶의 과정이자, 자연의 섭리다. 그래서일까.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니듯, 노인의 주름 역시 그들의 과오에 의해 얻어진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소설 <은교> 속 천재 시인 이적요의 말은 곱씹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단, 과거에는 이 노화의 과정을 그저 쇠락의 의미로 인식한 것과 달리, 뉴실버 세대는 자신을 위한 소비 및 투자를 아끼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지향한다. 그들에게 은퇴 후 노년의 삶은 막연한 잉여의 시간이 아니다.

100세 시대를 향한 또 다른 시작이다. 서울 은평뉴타운에 거주하는 ‘뉴실버족’ 강병남 씨도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진정한 행복에 접근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 행복의 여정을 탐닉하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

국내외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던 강 씨의 첫 일터는 국내 굴지의 대기업 재정팀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신의 직장이었던 그곳에서 그는 그야말로 일에 파묻혀 살았다. 퇴근 시간은 툭하면 새벽 2시를 넘기기 일쑤였고, 빨간 날도 그에겐 근무의 연장이었다. 밥벌이의 고단함이야 모든 가장의 숙명이지만, 강 씨는 지쳐 갔다.

그러다 문득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니, 나온 답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었다고.

그때부터 그는 2018년 명예퇴직 전까지 꼬박 23년을 인문고등학교 수학교사로 일했다. 교직은 그에게 천직이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도전이기도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됐지만, 월급은 현저히 줄었고, 커 가는 아이들의 양육비는 물론이고, 사학연금과는 별도로 안정적인 노후를 대비하기 위해선 금융 투자 및 자산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그는 임용 직후 보험 회사와 은행의 개인연금을 시작했고, 자신의 금융자산 관련 단기(3개월), 중기(1~2년), 장기(인생 전반) 흐름도를 작성했다. 지금도 매년 투자 방법, 투자처, 지출 등에 대한 수정과 보완을 거듭하고, 재정 상태를 업데이트하면서 은퇴 후에도 자식들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경제생활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그가 현재 자신의 삶에 만족할 수 있는 배경에 돈은 그저 수단이다. 자신과 가족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사유하고, 공부하고, 실천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자산관리 외에도 건강, 인간관계, 자기계발 등 그만의 야무진 뉴실버 라이프 노하우를 엿들어봤다.
[big story]"인생 주기별로 자산 흐름 관리”
은퇴 준비는 언제부터 하셨나요.
“교직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현실적인 고민들을 해봤어요. 우선, 결혼도 했고, 아이도 둘이었고, 무엇보다 교직이 행복했지만, 이 일을 영원히 할 수 없다는 걸 알았죠. 그나마 일할 때는 고정 수입이 있지만, 교직을 마무리 지었을 때 어떻게 살지에 대해서 다각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한 것이 사학연금과는 별도로 보험 회사, 은행 등에 개인연금을 넣었습니다. 또한 100세 시대를 살아가면서 병이나 예기치 못한 사고를 대비해 가족들의 실손보험도 들어 두었죠. 그 외에도 사모펀드(주로 벤처투자), 국내외 주식, 채권 등 금융 투자와 저만의 인생 주기별 자산 흐름도를 만들어 실천했죠.”

인생 주기별 자산 흐름도는 무엇인가요.
“금융자산에 대한 단기(3개월), 중기(1~2년), 장기(일생)에 걸친 흐름도를 의미해요. 이걸 작성하기 위해서 국내는 물론이고,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해 늘 공부했어요. 물론, 제가 수학을 전공한 것도 이런 계획을 계산하는 데 적잖은 도움이 됐죠. 아시다시피 투자 종목과 유형에 따라 단기와 장기로 나뉘기도 하고, 예기치 못한 경제위기가 발생하기도 하죠. 트렌드도 계속해서 바뀌고요. 가령, 제가 처음 금융 투자를 시작했을 때는 주로 국내 펀드에 주목했어요. 이후 일부분을 떼어 랩어카운트에 옮겼고, 이후엔 벤처투자 관련 사모펀드, 국내외 주식에 투자하기도 했죠.

이런 투자들을 기반으로 3월간 금융자산 흐름도를 정리하고, 그 후 1년, 5년, 10년 이런 식으로 저만의 표를 만들어 놓고, 매년 업데이트를 하니 은퇴 후에도 경제적으로 어떻게 운영하면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어요.”

물가 등 경제적인 변수는 어떻게 대비하셨나요.
“일단, 은퇴 후 기본적인 월 생활비 및 1년간 고정지출을 산출해, 생활비의 130%가 주기적으로 지급될 수 있도록 대비를 해 뒀습니다. 이것 역시 5~10년 주기로 계산했고요. 동시에 생애 전체에서 시기별 예견되는 지출과 예견되지 못하는 지출을 대비한 예비비도 마련해 뒀습니다. 비교적 변동성이 낮은 투자처로부터 연간 생활비를 수령하고, 반대로 변동성이 높은 투자처로부터는 중기(2~5년)적으로 수익의 실현과 밸런스 조정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변동성이 높은 곳에 투자를 할 경우, 시간이 나의 편이 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죠. 제 경험상 대개 경제위기는 (국가, 기업 부도에 준하는 위기를 제외하고) 그 기간이 아무리 길어도 3~5년을 넘지 않았어요. 그 정도의 기폭이면 폭락했던 것들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오거나, 오히려 수익을 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즉, 그만큼의 인내도 필요하다는 거죠. 무엇보다 이렇게 제가 적극적으로 투자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독일 유학시절부터 절약정신이 몸에 밴 아내의 든든한 생활력과 가족들의 절대적인 믿음, 소통이 있었기에 가능했죠.”

요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대개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40분 정도 아내와 함께 스트레칭이나 간단한 체조로 몸을 풀죠. 그리고 1시간 정도는 지난 밤에 일어난 주요 기사들을 읽습니다. 이후 2시간 정도 아내와 집 뒷산이나 근처 북한산 주변 둘레길을 걸으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산책 후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이후 오후 내내는 대개 그날 할 일을 처리하거나 독서 등 서재에서 공부를 하는 편이에요. 저녁은 특별한 날을 제외하곤 오후 4시에 마치고 1시간 정도 산책을 하고, 10시 전에 취침합니다.

이렇게 보면 꽤 단순한 일과지만, 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살아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뭐랄까요. 예나 지금이나 산책하는 습관은 다를 바가 없는데, 공기의 맛이 다르달까요. 그만큼 이제는 숨을 쉴 때도 오롯이 집중해서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몰랐던 또 다른 일상의 행복이죠. 사실 이 부분이 제가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상이에요. 스트레스는 극소화하고, 매 순간 살아 있음을 자각하고, 다양한 아름다움을 아내와 함께 즐기고 싶었어요. 심심할 틈도 없고요. 이런 저희의 행복한 모습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고, 아이들 역시 자기만의 진정한 행복을 찾도록 좋은 표본이 되고 싶었어요.”
[big story]"인생 주기별로 자산 흐름 관리”
[아내 유현경씨와의 티타임 모습]

산책과 간헐적 단식 외의 건강 루틴이 있나요.
“그 외 별다른 건 없어요. 물론, 건강보조제는 꼼꼼히 챙겨 먹는데, 별다른 건강 루틴은 없어요. 그저 자주 걷고, 소식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무엇보다 건강이란 삶의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챙겨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내게 맞는 루틴을 찾아봐야 하죠. 더욱이 나이가 들면 장기 기능이 떨어지기도 하고, 예전에 없던 알레르기도 튀어나오곤 하더라고요.

저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해요. 불안감과 조급함을 갖기보다는 한 단계 한 단계 나아지기 위해 노력하죠. 병원 가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고, 건강에 대한 많은 정보들을 찾아봐요. 무엇보다 은퇴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도록 노력하는 편이에요. 그게 진짜 건강한 삶이니까요.”

행복한 뉴실버를 보내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앞서 경제적인 요건들은 간단히 말씀드렸지만, 사실 행복한 뉴실버를 보내기 위해 안정적인 재정 상태가 중요하긴 해요. 단, 어디까지나 돈은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죠. 간혹, 은퇴 후에도 삶의 중심추를 경제력이나 사회적 지위에 뒀다면 저 스스로 굉장히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주가 되면 항상 부족함과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요. 저희 아이들에게도 그 점을 항상 강조해요.

가령, 제가 여행을 참 좋아하는데, 돈은 ‘비행기 티켓’ 같은 거죠. 여행을 가려면 비행기 티켓을 반드시 사야 해요. 단, 티켓은 목적지에 도달하면 그 의미가 사라지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경제력이 필요하다면, 진짜 행복을 위해서 꼭 필요한 건 결국 건강, 가족과의 화목 그리고 삶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각이라고 봐요.”

이를 테면요.
“예나 지금이나 가족의 화목이 참 중요한 거 같아요. 아내는 제 인생 최고의 우군이자 유일하게 모든 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서로에게 비밀이 없죠. 매사 어떤 결정을 할 때도 아내와 충분히 대화하고 결정해요. 그러니 저는 그 결정에 힘이 실리고, 아내 역시 결과의 성패를 떠나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죠. 아이들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최대한 아이들이 먼저 부모와 대화를 시도할 수 있을 만큼 부모 자식 사이에 대화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아이들이 살면서 어려움을 겪을 때 부모에게 조언을 구하거나 해결책을 찾아갈 수 있거든요. 부모가 간섭하지 않더라도 말이죠. 은퇴 후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사위와도 이런 대화의 기회가 더 많아진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가끔은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으시나요.
“아주 가끔은 나란 사람이 이렇게 살고 있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좀 뜬구름 잡는 소리같지만 전 앞으로 좀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달까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더 다양하고, 깊어졌으면 해요. 그 끝에 행복의 본질에 접근할 것 같거든요. 그것이 결코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주위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도 그 행복이 닿았으면 좋겠어요. 이런 제 생각들을 글로 써보고 싶답니다.”

마지막으로 막연히 은퇴 후 삶을 걱정하는 분들에게 조언하시자면요.
“걱정과 막연한 생각보다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준비하세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동료이자 우군인 배우자, 가족, 혹은 그런 대상에게 모든 것에 관해 대화하세요. 그러면 답을 찾으실 거라 믿습니다.”

글 김수정 기자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