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투자 1호 발행’ 신종증권 시범 개설…관련 법안은 계류 중
고가 미술품이나 저작권, 음원, 한우 등 기초자산으로 만든 조각투자 신종증권을 한국거래소를 통해 사고팔 수 있게 되면서 시장이 이목이 쏠리고 있다. 조각투자 신종증권은 거래소의 증권 시장 시스템을 활용함으로써 매매 거래와 상장, 공시, 청산 결제를 한다.
2023년 12월 13일 금융위원회가 한국거래소의 신종증권 장내시장 시범 개설을 승인(혁신금융 서비스)하면서 내년 상반기 중에는 투자계약증권 등에 대한 장내 거래도 가능해질 전망이다. 열매컴퍼니가 발행한 1호 미술조각투자 작품은 쿠사마 야요이의 2001년작 <호박>으로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의 주당 공모 가격은 10만 원으로 증권 수량은 1만2320주, 모집 총액은 12억3200만 원이다. 1인당 최대 청약금액 및 투자금액은 300주, 3000만 원까지 가능하다. 주식에 투자하듯이 다양한 기초자산에 공모해 일반 투자자들이 참여할 수 있다.
다만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한 토큰증권 시장 법제화는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시장 활성화에 제동이 걸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토큰증권 사업이 벤처 스타트업의 새로운 자금조달 시장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법안 계류로 지연되면서 자금조달에 어려움이 생길 수 있어서다.
업계에서는 장외거래 시장인 토큰증권 사업이 전면적으로 본격화되려면 ‘주식·사채 등의 전자등록에 관한 법률’(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입법 진행이 진전을 보이지 않으면서 금융 회사들과 조각투자 회사, 플랫폼 인프라 구축을 하는 기관들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2024년 4월 총선 전에는 법안이 통과되리라는 기대가 있지만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토큰증권 발행 제도 도입을 담은 법안이 다른 민감한 법안들에 밀려 있을 뿐 큰 쟁점이 없어서 무난한 통과가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증권사, STO 사업 채비 박차…컨소시엄 통해 플랫폼 구축 활발
장외거래 토큰증권 사업이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단기성 자금조달이 가능함에 따라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새로운 자금조달 창구로서 활용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내 증권사들은 사업 다각화와 새로운 수익원으로 STO 사업에 적극 뛰어들고 있다. 신규 수익 모델이 될 수 있는 만큼 자체적인 STO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조각투자사와의 업무협약(MOU) 체결 등 STO 사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따르면 국내 토큰증권 시장은 2024년 34조 원에서 2030년 367조 원까지 급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올해 상반기에 STO 관련 법제화에 성공하면 본격적인 사업 확장이 이뤄질 전망이다. 증권사들은 사업 확장에 앞서 플랫폼 구축에 나서는 한편 컨소시엄이나 제휴를 통해 사업 채비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초 증권사 가운데 선두적으로 플랫폼을 구축한 하나증권은 아이티센 계열사 INF컨설팅을 STO 플랫폼 구축 주사업자로 선정해 100억 원대 금액을 투자했다.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플랫폼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미래에셋증권도 입찰공고를 통해 토큰증권 발행과 유통 플랫폼 구축 업체를 선정했고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LG CNS와 계약을 조율 중이다. 이에 앞서 미래에셋증권은 하나금융그룹, SK텔레콤과 토큰증권 관련 망 구축을 위해 STO 협의체 ‘넥스트 파이낸스 이니셔티브(NFI)’를 구축했다.
또한 신한투자증권은 KB증권, NH투자증권과 ‘토큰증권 컨소시엄’을 결성해 토큰증권 사업 공동 인프라 구축을 진행했다. 지난해 12월엔 증권업 최초로 블록체인 기반의 금전채권 신탁수익증권 거래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STO 혁신금융 서비스를 지정받기도 했다. 이후 지난해 7월 이사회에서 토큰증권 사업 진출을 정식 승인한 이후 국내 대형 부동산 담보 대출채권을 유동화해 신탁수익증권을 토큰증권으로 발행, 유통하는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KB증권은 지난해 초부터 STO 플랫폼 서비스를 위한 핵심 기능 개발 작업과 테스트를 마쳤고 관련 플랫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키움증권은 한국정보인증, 블록체인 전문 기업 페어스퀘어랩과 업무협약을 체결해 STO 유통 플랫폼 구축을 위한 사업 추진에 나서고 있다. 한국투자증권은 한우를 쪼개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 뱅카우의 운영사 스탁키퍼와 토큰증권 상품 공급을 위해 협약했다. 하이투자증권도 미술품 조각투자 업체인 투게더아트와 손을 잡았다. 대신증권은 지난해 2월 국내 1호 부동산 토큰증권 플랫폼인 카사코리아를 인수했고 교보증권은 미술품 조각투자 플랫폼 기업 테사와 토큰증권 사업 상호협력을 위한 포괄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가치평가 기준 모호·투자자 보호 이슈 등은 난제
전문가들은 법 통과 이후에도 토큰증권 시장이 성장하려면 반드시 법적 보완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업계 전문가는 “결론적으로 상품의 적정 가격에 대한 가치평가 기준이 불분명하고 투자자 보호 이슈 문제 때문에 사업성이 좋다고 말하기엔 시기상조”라며 “금융당국은 신탁 수준의 엄격한 규제를 고려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규제 수준을 맞추기가 쉽지 않고 시장 활성화도 제한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금융위원회 정책안에서는 장외거래중개업자가 자신이 발행하고 인수, 주선한 증권을 자사가 개설한 매매 시장에서 유통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발행과 유통을 겸업으로 했을 때 이해 상충 이슈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발행과 유통을 엄격하게 분리할 경우 투자자의 불편이 초래되고 사업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한다.
일반 투자자의 투자 한도를 정한 것도 시장 활성화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하지만 당국에서는 투자자 보호 문제 등 불공정거래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시장 성장에 발목을 잡을 수 있다며 투자 한도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해외 사례처럼 위험 감수 능력이나 전문성을 보유한 전문 투자자들을 적절하게 투입하는 등 전문 투자자들의 시장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초기 시장 활성화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그럼에도 STO 시장이 커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여전히 높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STO의 취지는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새로운 그릇을 만들어서 신종 자산과 같은 다양한 음식을 담아 다양한 투자자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라며 “분산원장의 장점은 그릇의 유형에 따라 담을 수 있는 음식이 달라지는 만큼 다양한 기초자산을 활용한 상품들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경 기자 esit91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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