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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한국경제DB·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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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시장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비트코인이 세계 최대 금융 시장인 미국에서 제도권에 입성했다. 미국 금융당국이 비트코인 현물에 투자하는 ETF를 승인해 1월 11일(현지 시간)부터 뉴욕 증시에서 거래되기 시작한 것이다. 비트코인이 처음 발행된 2009년 1월 3일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가상화폐 거래소를 통해서만 투자할 수 있었던 비트코인을 앞으로는 미국 증시에서 주식처럼 살 수 있게 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을 비롯해 피델리티인베스트먼트, 아크인베스트먼트,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 등 글로벌 자산운용사들이 내놓은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는 미 SEC의 승인 이후 뉴욕 증시에 동시 상장됐다. 자산운용사 코인셰어즈에 따르면 상장 이후 첫 3거래일 동안 비트코인 ETF 자금 순입액은 8억7100만 달러 규모로 추산됐다.

시장에서는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이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허용했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다. 한때 각종 금융 범죄와 연루된 고위험 투자처로 인식됐던 가상자산이 ‘음지’에서 ‘양지’로 올라오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상자산 시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으로 알려진 개발자가 중앙집권적 금융 체계에 대한 불신을 이유로 내놓은 가상자산이다. 암호화폐의 원조이자 대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트코인을 두고 한쪽에서는 ‘디지털 금’이라고 표현했지만, 또 다른 쪽에서는 ’실체 없는 신기루’로 봤다. 급변하는 시세로 인해 안정성이 떨어지고, 자금세탁,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이 높은 초위험자산이라는 인식도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간 SEC가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 신청을 거듭 반려해 왔던 것도 시세 조작 등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였다.

SEC의 기조가 전환된 것은 지난해 미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다. 글로벌 자산운용사인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가 2021년 승인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ETF를 2022년 6월 반려한 것과 관련해 미 연방 항소법원이 재검토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이다. 기존의 유사한 상품(비트코인 선물 ETF)과 비트코인 현물 ETF의 다른 점을 SEC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고, 자의적인 판단으로 상장 신청을 거부했다는 게 미 법원의 결론이었다.

결국 SEC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승인을 결정했다. 투자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ETF라는 포장지에 담겨 제도권에 편입된 셈이다. 앞으로는 금 ETF처럼 익숙한 증권 거래 방식으로 비트코인에 투자할 수 있게 됐다는 이야기다.
비트코인 ETF 월가 데뷔…韓 시장도 흔들까
일단 비트코인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진입장벽이 낮아지는 것만으로도 시장의 판을 키우는 효과가 있다. 빈센트 업라이즈 MFO(Multi-Family Office) 총괄은 “특정 자산이 수면 위로 올라와 트렌드가 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대중의 인기다. 대중의 인기는 곧 거래의 접근성과 연결돼 있다”면서 “현물 ETF가 탄생하는 순간, 해당 자산을 취급할 때 넘어야 했던 모든 투자 허들이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기관투자가와 법인의 시장 진입도 무시할 수 없는 변화다. 헤지펀드, 연기금 등 기관들이 ETF를 통해 비트코인 투자에 적극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 가상자산 시장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다.

이장우 한양대 글로벌기업가센터 겸임교수는 “단순히 제도권에 특정 상품에 들어왔다는 개념을 넘어, 비트코인 ETF가 게임체인저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면서 “과거에는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접근하는 시장이었다면 이제는 챕터가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기관투자가와 슈퍼리치들이 이 자산에 본격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구조가 됐다. 올해와 내년에 다양한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시장의 규모가 커지는 것뿐만 아니라 가상자산 전반의 신뢰도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제도권 안에 들어왔다는 것은 각국 자본시장법에 따른 규제 기준을 적용받는다는 것”이라면서 “가상자산이 시세 조작이나 허위 정보 등의 이슈와 관련해 규제를 받는다는 것은 곧 건전한 투자 자산으로 발전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고 했다.

물론 비트코인이 가진 가상자산으로서의 위험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비트코인 현물 ETF 거래를 승인하며 “SEC의 결정은 ETF에 국한된 것이지 비트코인을 승인하거나 보증하는 건 아니다”라면서 “투자자들은 가상자산 연계 상품들이 지닌 수많은 위험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한국 시장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 허용될까
그렇다면 국내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현물 ETF에 접근할 수 있을까. 현행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이하 자본시장법)상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ETF가 담을 수 있는 기초자산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이에 금융당국도 국내 증권사가 해외에 상장 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입장을 재차 확인해주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 현물 ETF의 발행이나 해외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은 기존 정부 입장과 자본시장법에 위배될 소지가 있음을 밝힌 바 있다”며 “미국은 우리나라와 법체계 등이 달라 미국 사례를 바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또 “이 문제는 금융 시장의 안정성, 금융 회사의 건전성 및 투자자 보호와 직결된 만큼 이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했다.
과거 금융 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왔던 ‘코인 광풍’ 사태를 의식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 중심지인 미국이 이미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 만큼, 국내 거래도 ‘타이밍의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 교수는 “2022년과 2023년에 가상자산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아직은 투자자 보호에 좀 더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것 같다”면서 “여러 제도상의 정비를 하기 위해서 시간을 벌 수는 있겠지만, 결국 거래를 허용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본다”고 했다.

한편 금융당국의 ‘선긋기’에도 불구하고 최근 대통령실은 비트코인 ETF 중개·출시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주무 부처인 금융위원회에 ‘한다, 안 한다’는 특정한 방향성을 갖지 말도록 얘기한 상태”라고 말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사진 한국경제DB·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