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주 시장에 활력을 더하는, 젊은 양조인이 빚은 우리 술.
청춘의 술
나루 약주
서울 유일의 지역 특산주를 생산하는 한강주조는 트렌디한 우리 술 시장을 열어가는 대표적 양조장 중 한 곳이다. 3년 전 포털 사이트 네이버 광고에서 ‘성수동 막걸리 바보 성용씨’로 얼굴을 알린 고성용 대표가 운영한다. 고 대표가 서른여섯 살이던 지난 2018년, 서울의 지역 쌀인 경복궁 쌀로 빚은 ‘나루 생막걸리’가 MZ세대 사이에 크게 히트하며 유명해졌다. ‘나루 약주’는 지난해부터 한강주조가 선보이는 순곡약주다. 감미료 없이 100% 햅쌀로만 만든다. 고 대표는 나루 약주가 ‘독특하면서 무난한 술’이기를 바랐다. 누구나 즐길 수 있고 어떤 음식에나 잘 어울리는 술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 그래서인지 전통 약주 특유의 끈적한 맛이 아닌, 가볍고 경쾌한 풍미가 가득하다. 일민미술관과의 협업도 눈에 띄는 부분. 손동현과 김민희, 노상호 등 유명 작가의 그림을 레이블에 적용한 ‘아티스트 에디션’을 시즌별로 선보인다. 고 대표에 따르면, 냉장 보관 후 상온에서 30분 정도 뚜껑을 열어 ‘에어링’하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고. 그냥 마실 때가 가장 맛있지만, 진저에일과 4:1 비율로 섞어 청량한 칵테일로 즐기기에도 좋다.
청춘의 술
화심 소주 군고구마
한국과 일본·호주·영국 등지에서 바텐더로 일하다 위스키의 매력에 푹 빠져 스코틀랜드 아일라 지역의 아드벡 증류소에서 주조를 익힌 오수민 대표가 만드는 ‘화심 소주’. 아일라 위스키 고유의 스모키한 풍미를 한국적 스타일로 변주하기 위해 생쌀과 햇고구마를 오븐에 굽고 그대로 분쇄하는 방식을 고집해 만든다. ‘화심 소주 군고구마’와 ‘화심 소주 군쌀’ 등 2종을 선보이는데, 특히 군고구마 소주에서는 정말 고구마 맛이 느껴진다. 이제껏 마셔본 소주에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맛이다. 고구마에서 비롯한 경쾌한 단맛 뒤로는 허브류가 느껴지는 싱그러움과 약간의 매콤한 맛이 복합적으로 전해진다. 바텐더 출신답게 다양한 음용법을 제안하는데, 군고구마 소주와 캄파리, 그리고 매실주를 1:1:1 비율로 섞어 얼음과 함께 저어 마시면 동양의 아로마가 화사하게 퍼지는 네그로니 칵테일을 만들 수 있다. 전통주 애호가뿐 아니라 위스키, 코냑 마니아의 입맛까지 사로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오 대표는 현재 오크통 숙성 소주(라이스 위스키)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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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크레 & 배여유
‘외국 친구에게 소개하고 싶은 우리 막걸리!’ 2년 전 ‘쑥크레’를 처음 맛본 기자의 한 줄 평이다. 그도 그럴 것이 쑥크레는 해외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호텔 셰프로 일하던 김하진 대표가 우연히 한인 마트에서 누룩을 발견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후 다양한 양조 실험을 거쳐 외국 셰프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며 탁주 양조의 초석을 다졌다. 쑥크레라는 이름은 프랑스어로 설탕을 뜻하는 쉬크르(sucre)에서 따온 말이다. 용기는 와인병 모양으로, 라벨엔 쑥을 형상화한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다. 눈치챘겠지만 쑥크레는 쑥, 그중에서도 봄에만 나는 애엽을 부재료로 하는데 입안에 퍼지는 은은한 쑥 향이 매력적이다. 김 대표는 병 밑에 가라앉은 탁주의 침전물을 섞기 전 맑게 뜬 윗부분을 꼭 먼저 맛보라고 권한다. 이렇게 마시면 맑고 청아한 쑥 향을, 이후 침전물을 섞으면 달콤 쌉싸름하면서 진한 쑥 향을 느낄 수 있다. 반면, 신제품 ‘배여유’는 대전 유성구에서 생산한 배를 넣은 가벼운 스타일의 막걸리로 차갑게 칠링해 ‘꿀떡꿀떡’ 마시면 온몸에 엔도르핀이 도는 느낌이 들 정도로 청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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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22
사이더는 사과즙을 발효해 만든 일종의 과실주다. 프랑스에선 시드로(Cidre), 영국에서는 사이더(Cider)라고 부른다. 이대로 대표가 이끄는 댄싱사이더 컴퍼니는 한국에서 애플사이더라는 주종을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곳. MZ세대를 중심으로 국내 주류 시장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가 하면, 미국·영국 등 5개국의 국제 사이더 품평회에서 수상할 정도로 맛과 품질을 인정받았다. ‘댄싱 22’는 이런 댄싱사이더 컴퍼니가 선보인 사과 증류주다. 애플사이더를 만들며 길러온 발효 기술 노하우를 집약해 감압증류 방식으로 만드는데, 저온에서 진공 상태로 증류해 소주의 쓴맛은 없애고 사과의 은은한 단맛과 향을 남겼다. 22도라는 알코올 함유량이 무색할 만큼 부드러운 맛과 목 넘김이 압권. 특히 한 병을 만드는 데 사과 7개를 사용할 만큼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진한 사과 풍미가 입안을 즐겁게 한다. 그냥 마셔도 좋지만, 탄산수 혹은 애플사이더와 1:2 비율로 섞어 마시면 색다른 하이볼로 즐길 수 있다고. 이 대표에 따르면 세상을 놀라게 할 두 번째 사과 증류주 ‘애플 스피리츠’도 곧 출시한다.
청춘의 술
호피허니버니 & 멜로우 드림
인류 최초의 술은 미드(꿀술)로 알려져 있다.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부즈앤버즈 미더리는 미드를 한국식으로 재해석해 만드는 양조장이다. 이곳을 이끄는 유관석 대표는 외교관인 아버지와 요리사 출신 어머니 덕분에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생활하며 자연스럽게 미드를 접했다. 그의 미드를 향한 열정은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술을 빚었을 정도. 이후 유럽과 미국의 가장 큰 국제 미드 대회에서 연이어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술 양조에 뛰어들었다. 부즈앤버즈 미더리의 대표 술은 미드에 맥주의 홉과 맥아를 부재료로 사용한 ‘호피허니버니’와 포도를 넣은 미드 ‘멜로우 드림’이다. 호피허니버니는 맥주의 쌉싸래한 맛과 꿀의 감미로움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데, 외국산 맥아 대신 국산 엿기름으로 맛을 낸다. 맥주처럼 쓴맛이 없어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듯. 반면 국산 켐벨얼리 포도와 아카시 벌꿀로 만든 ‘멜로우 드림’은 15%라는 알코올 도수가 무색할 만큼 달짝지근한 맛이 압권으로, 특히 지난해 유럽 미드 대회에 ‘상업양조 파이먼트(포도로 만든 미드) 부문’에서 금메달을 따며 국산 미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이승률 기자 ujh8817@hankyung.com | 사진 박원태, 이준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