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돈나무 언니라 알려진 캐시 우드는 비트코인이 앞으로 6년 안에 230만 달러(약 30억 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비트코인 거래의 상징인 미세스 와타나베도 또다시 등장했다. 와타나베 부인은 엔화를 차입해 금리가 높은 국가에 투자하는 일본 여성을 통칭해서 부르는 용어다. 미세스 와타나베는 엔화를 차입해 크립토커렌시, 즉 암호화폐를 한국과 같은 비트코인 거래가 활발한 국가에서 매입해 차익을 겨냥하는 일본 남성을 말한다.
비트코인에 전 세계인이 또다시 열광하는 것은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거품이 우려될 정도로 너무 올라 대체 자산을 찾는 과정에서 나왔다. 언택트와 디지털 콘택트의 급진전으로 비트코인의 매력이 재차 부상하고 있는 것. 더구나 올해 6월 이후에는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하도 기대되고 있다.
초기 호기심을 끌다가 이내 사라질 것으로 봤던 각국에는 비상이 걸렸다. 이제 방치하기에는 비트코인 위상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미 비트코인의 거래액은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투자은행(IB)을 넘어선 지 오래됐다. 차기 미국 대통령으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는 종전의 ‘사기’라는 입장을 바꿔 ‘달러화의 보조 화폐’로 보고 있다.
위기 조짐도 발생하고 있다. 4차 반감기를 앞두고 비트코인 가격 상승세가 워낙 가팔라 2017년 영국의 비트코인 펀드가 95% 폭락하면서 나타났던 ‘마진 콜(margin call: 증거금 부족)’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한 우려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마진콜이 발생하면 이에 응하는 ‘디레버리지(deleverage: 자산 회수), 과정에서 다른 자산 시장으로 전염돼 금융위기가 발생한다.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각국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이다. 중국, 러시아, 베트남 등과 같은 신흥국은 규제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특히 한국 정부는 비트코인 대책에서 거래 금지(청소년), 시세차익에 대한 과세,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등과 같은 강력한 대책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선진국은 신흥국과 달리 제도권으로 편입하려는 움직임이 진전돼 왔다. 2017년 12월 12일에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는 처음으로 비트코인을 상장한 이후 지난 1월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을, 3월에는 영국 금융감독청(FCA)이 비트코인을 기반한 상장지수증권(ETN)까지 승인했다.
선진국은 비트코인과 같은 종전에 볼 수 없었던 현안에 대한 대책을 세울 때 시장 움직임을 중시한다. 일본과 영국은 법정화 계획을 선언했다. 미국은 달러화와 충돌하는 문제로 법정화하려는 움직임은 아직 주저하고 있지만 크게 규제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 놓는 불간섭 원칙을 지키고 있다.
신흥국과 선진국의 대책에 있어서 서로 다른 방향을 채택하는 것은 비트코인이 갖고 있는 양면성 때문이다. 투기 광풍, 금융 불안 등과 같은 부정적 측면을 우려하는 신흥국은 규제하는 대신 6차 산업혁명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블록체인’이라는 핵심 기술과 자산 등의 유틸리티 기능을 중시하는 선진국은 제도권으로 편입하고 있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블록(block)을 잇달아 연결(chain)한 모임을 뜻한다. 블록에는 일정 기간 비트코인 거래 내역이 담겨 있다. 이를 체인으로 묶은 것처럼 연결해 인터넷에 접속된 수많은 컴퓨터에 동시에 저장한다. 모든 정보를 슈퍼컴퓨터(서버) 한 곳에 저장해 언제든지 해커의 공격을 받거나 오류가 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이 때문에 JP모건과 같은 글로벌 투자은행으로부터 월마트와 같은 유통사, 세계 최대 해운 회사인 머스크에 이르기까지 블록체인을 상용화해 왔다. 신흥국이 단기적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선진국의 움직임을 따라갈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앞날과 관련해 주목해야 할 또 하나의 논쟁이 있다. ‘과연 화폐가 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회장은 “비트코인이 달러보다 낫다”고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반면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은 “비트코인에 가치가 있다는 것은 수표를 만드는 종이에 가치가 있다는 것과 같다”는 애매모호한 입장을 말했다.
비트코인은 디지털 단위인 비트(bit)와 동전(coin)을 합친 용어다. 2009년 비트코인을 처음 개발한 ‘나카모토 사카시’라는 가명의 프로그래머는 빠르게 진전되는 온라인 추세에 맞춰 갈수록 기능이 떨어지는 달러화, 엔화, 원화 등과 같은 기존의 법화(法貨·legal tender)를 대신할 새로운 화폐를 만들겠다는 발상에서 비트코인을 개발했다.
비트코인이 법정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거래적 기능, 가치 저장 기능, 회계 단위 등 본래 기능을 다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3대 화폐 기능을 갖췄다 하더라도 국민의 보편적인 화폐로 정착되기에는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 공식적으로 기존의 화폐를 비트코인으로 대체하는 화폐 개혁도 단행해야 한다. 비트코인의 법정화폐 가능성은
비트코인이 그대로 법정화폐가 될 수 있을까. 이 문제는 가장 먼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실시한 옐살바도르의 사례에서 보면 알 수 있다. 2021년 9월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살인적인 물가 등으로 세계 최대 빈곤국으로 추락한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했다.
엘살바도르 국민 650만 명 중 절반에 가까운 300만 명에게 법정화폐 비트코인 거래 통장인 ‘치보’에 30달러씩 무상 지원했다. 법정화폐가 된 비트코인을 달러화와 연계해 종전의 법정화폐가 갖고 환차손 등을 줄이려는 노력도 뒤따랐다. 하지만 엘살바도르 국민은 비트코인 가격이 오를 때는 웃음을 짓다가 하락할 때는 슬픔에 빠져 오죽했으면 비트코인과 관련한 화폐 생활의 애환을 담은 대중가요까지 나왔다.
난제였던 살인적인 물가를 잡기 위해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지정한 첫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부켈레 대통령이 들고나온 것이 ‘마노 두라(mano dura·철권통치)’였다. 이 비상대책은 범죄 혐의만 있으면 중남미 최대 교도소로 보내져 한때 수감자 수가 국민의 2%에 달했다. 마약, 부패, 불법행위 등이 얼마나 심했는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초기 인권 탄압 우려와 달리 사회 기반과 민생이 안정돼 만성적인 침체에 시달렸던 엘살바도로 경제가 살아나자 국민이 열광하기 시작했다. 같은 문제로 시달리는 온두라스, 콰테말라, 콜롬비아 등에서는 ‘부켈레 신드롬’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지난해 11월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에서 제2의 부켈레를 표방한 하비에르 말레이 후보가 당선됐다.
분명한 것은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큰 변화는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는 점이다. 오히려 국가의 공식적인 화폐인 법화를 갖고 있으면 부패와 탈세 등의 혐의로 의심받는, 즉 케네스 로코프 하버드대 교수가 주장한 ‘현금의 저주(curse of cash)’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통화정책 여건도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종전의 이론과 관행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함에 따라 통화정책의 유효성이 떨어지고 있는 점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이런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해 ‘가상화폐 확산’이라는 새로운 환경 속에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하는 방안을 놓고 고심 중이다.
결국 비트코인을 그대로 법정화폐로 지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 때문에 디지털 위안화가 비트코인이 갖고 있던 한계를 극복했다는 차원에서 성공 확률이 높게 평가돼 왔다. 실물 화폐와 달리 그 자체적으로 가치(value)가 없는 화폐가 교환 수단, 가치 저장, 회계 단위 등과 같은 3대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법정화 여부와 발행 기관이 중요하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했다.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entral Bank Digital Currency·CBDC)’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소비자(고객)의 전자수첩에 넣어줘 사용토록 하는 국가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은행이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통용되는 위안화와 디지털 위안화를 1대1로 교환해 구권을 신권으로 교체할 때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 거래 단위 축소)’에 대한 우려도 불식시켰다. 인민은행이 발행한 디지털 위안화를 시중은행을 통해 현재 위안화를 예치한 만큼 금융소비자의 전자수첩에 넣어줘 사용토록 하는 결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위안화가 발행된 이후 서방 측의 우려와 달리 의외로 빨리 정착되고 있다. 통제력이 강한 중국으로서는 내부적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정착시키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다. 나라 밖으로도 세계 1위의 수출대국으로 부상한 점을 감안하면 경상거래부터 디지털 위안화 결제 비중이 빨리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 디지털 통화 도입 가속도 낼까
바짝 긴장한 각국 중앙은행도 디지털 통화를 도입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선진국 중에서는 유럽과 일본뿐만 아니라 중국과 거래 비중이 높은 신흥국은 디지털 통화를 도입했거나 도입 계획을 발표했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세계 모든 중앙은행의 90%가 도입을 전제로 디지털 통화를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 위안화가 조기에 정착됨에 따라 디지털 통화 시대에 기축통화 지위를 영원히 잃어버릴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선도자에게 집중되는 디지털 기축통화 발행에 따른 ‘글로벌 시뇨리지(global seigniorage)’도 상실된다. 현재 미국은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할 수 있는 단계까지 와 있다.
디지털 통화 시대가 전개될 경우 각국 중앙은행은 ‘통화정책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라는 또 다른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네트워킹 효과와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디지털 통화 시대에서는 각국 중앙은행은 전통적인 목표인 ‘물가 안정’에만 둘 수는 없다. 아마존 효과 등으로 물가가 크게 올라갈 확률이 작을 뿐만 아니라 기준금리 변경, 유동성 조절 등과 같은 종전의 통화정책 수단도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통화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다른 경제주체도 공유가 가능해짐에 따라 ‘정보의 비대칭성’을 전제로 한 중앙은행의 시장 주도 기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즉, 중앙은행과 시장참여자 간 관계가 ‘수직적’이 아니라 ‘동반자적’으로 변한다는 의미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 위상, 금융 시장 효율성 지표인 기준금리와 시장금리 간 체계는 약화가 불가피하다.
가장 우려되는 것은 각국 국민이 적응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새로움과 복잡성’에 따른 위험이 증대되고. 화폐 개혁 논의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사 금융 행위도 판치게 된다. 이런 환경에 맞춰 금융 감독이 새로운 방식, 이를테면 옴니버스 방식 등으로 접근하지 못하면 각국 국민의 화폐 생활에 있어서는 혼란이 초래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도 ‘디지털 원화’를 도입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 있다. 주무부서인 한국은행은 ‘디지털 원화’ 시범 운용 계획을 마무리했다. 앞으로는 중앙은행 목표 수정, 디지털 통화지표 개발,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 무력화 방지, 통화정책 관할 범위 확대, 통화정책 전달 경로의 유효성 점검, 경기 예측력 제고 등의 과제를 선제적으로 준비해 놓아야 한다.
글 한상춘 한경미디어 국제금융 대기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ㅣ사진 한국경제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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