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증시가 심상치 않다. ‘잃어버린’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니던 일본 경제가 곳곳에서 재도약의 시그널이 나타나며 일본 투자열풍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정말 종착역에 다가선 걸까

[INSIDE ETF]

2012년 시작된 아베노믹스와 함께 오름세를 보이던 일본 증시의 상승 모멘텀이 지난해부터 눈에 띄게 강해졌다. 수치로 보면 2012년부터 올해 4월 10일까지 일본의 토픽스(TOPIX) 지수는 278% 상승했다. 같은 기간 한국의 코스피 지수가 48% 상승한 데 그친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증시만이 아니다.
지난 2월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주식 시황 전광판이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진 모습을 방문객이 휴대전화로 찍고 있다.
지난 2월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 주식 시황 전광판이 온통 빨간색으로 칠해진 모습을 방문객이 휴대전화로 찍고 있다.
2023년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9%로 한국의 1.4%보다 높았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5년 만에 한국이 일본에 추월당한 것이다. ‘잃어버린’이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붙던 일본 경제가 재도약의 불씨를 당긴 상황을 바라보며 일본 투자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경제의 어둠, 잃어버린 30년

일본 경제가 바닥을 친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증시의 호황을 이끈 최대 동력은 미국과의 역대급 내외금리차에 따른 슈퍼엔저이며, 소비와 투자 지출 같은 펀더멘털은 여전히 약하다는 의견이다. 글로벌 금리 상승기에 일본은행(BOJ)이 제로금리를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므로 언젠가 금리 정상화가 이루어지고 엔저가 해소되면 주가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뜨거운 일본 증시…30년 불황 탈출 호기
한국과 일본 증시의 수익률 차이를 경제성장률 격차로 설명할 수는 있겠지만, 지난해 한국이 낮은 성장률을 보였던 것은 수출 부진, 특히 반도체 불황에 따른 것이고 올해에는 이런 현상이 역전될 것으로 보여 앞으로는 한국 증시가 더 매력적으로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35년간 이어진 불황의 종착역에 서서히 들어서고 있다는 시장의 기대를 터무니없다고 도외시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따라서 오랜 기간 한국에서 잊혀 버린 일본 투자의 비중을 높여 가야 할 이유도 충분히 있다.
뜨거운 일본 증시…30년 불황 탈출 호기
일본이 30년 넘는 긴 시간 동안 불황에 빠져 있었던 이유를 간략히 복기해보자. 일본의 장기 불황은 1980년대 부동산, 주식 시장의 버블 형성과 일본 중앙은행의 정책 실패로 인한 급격한 버블 붕괴 후유증으로 보는 견해가 대다수다.

일본 경제의 급부상에 위협을 느낀 미국의 주도로 체결된 1985년의 플라자 합의로 엔화는 한순간에 40%나 절상됐다. 일본 경제의 성장 엔진이었던 수출이 가격 경쟁력의 급속한 악화로 급감하자, 일본은행은 내수 확대로 커버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1년간 5%에서 2.5%로 인하했다. 금리가 낮아지자 사람들은 빚을 내서 부동산,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이런 국면이 2년 넘게 이어지면서 자산 가격에 엄청난 버블이 만들어졌다.

특히 부동산 폭등으로 정치적 부담감이 커지자 미에노 야스시 일본은행 총재 주도로 1989년 12월부터 반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기준금리를 3.75%에서 6%로 대폭 인상했다. 더 이상의 거품을 막겠다는 정책의지였지만 시장에 준 충격은 일본은행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빚으로 지탱됐던 주식,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일본 경제는 장기간의 침체에 들어섰다.

디플레이션 탈출, 이번엔 가능할까

자산 가격 급락으로 사람들의 구매력이 낮아졌고 이는 극단적인 소비 위축으로 이어졌다. 물건이 팔리지 않자 기업들은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한 이익 감소를 보전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종업원들의 임금 상승을 억제해야 했다. 실질임금의 하락은 또다시 소비 위축을 가져왔다. 자산 가격 하락→소비 위축→제품 가격 하락→임금 하락→소비 위축이라는 전형적인 디플레이션 사이클이 지난 30여 년 동안 반복돼 온 것이 일본 경제의 모습이었다.

과연 일본은 디플레이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 예전에도 비슷한 기회가 몇 차례 있기는 했지만 저성장 탈출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를 것이라는 의견이 과거보다는 많은 편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의 여파는 일본에도 미쳤다. 과거 일본 기업은 원가 부담이 있어도 이를 가격에 전가하지 못했는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기업들이 판매 감소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격 인상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슈퍼엔저로 수출 기업을 중심으로 수익성이 좋아진 덕분이었다. 또한 개선된 기업 수익성에 정부의 정책적 유도책이 더해지면서 인상적인 수준의 임금 인상도 이루어졌다.

올봄 노사 간 임금 협상에서 올해도 임금 인상률이 5.3%로 합의됐는데 이는 1991년 이후 최대 인상 폭이다. 실질임금 상승률도 3%에 이를 것으로 기대되고 있는데 이는 199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제품 가격 인상에 따른 충격으로 소비가 주춤해지긴 했지만, 높은 임금 상승률이 조만간 소비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된다.

움직이지만, 여전히 신중한 일본은행

이처럼 여러 거시지표가 긍정적인 신호를 보이고는 있지만 일본이 진짜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고 있는지 판별해볼 수 있는 참조점이 있다. 바로 일본은행의 정책 전환이다.

일본은행은 1980년대 말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장기 침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원죄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웬만해서는 정책 전환, 즉 제로금리를 포기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난 3월에 아주 미약하기는 하지만 기준금리를 올렸다. 물론 일본에서도 비용 상승 인플레이션이 문제가 돼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이제는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30년의 종착점에 도달했다는 자신감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통화정책의 전환 속도는 아주 완만할 것이다. 3월에 금리를 소폭 인상하면서도 향후의 정책 가이던스는 제공하지 않았다. 일본은 기업의 수익성 개선, 의미 있는 임금 상승, 소비 회복이 확인될 때까지는 큰 틀에서 통화 완화, 재정 확장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구간에서는 엔저와 펀더멘털 개선에 대한 기대감이 증시를 끌어올리는 힘으로 작용하리라 예상된다.

지금의 선순환 구조가 이어져 일본은행이 금리정책을 차질 없이 정상화한다면 엔화 가치는 단계적으로 절상될 가능성이 높다. 디플레이션 고리를 끊은 슈퍼엔저라는 요인이 약화될 수 있겠지만, 일본 경제의 펀더멘털이 좋아진 것은 증시에 긍정적 요인이다. 한편 엔화 표시 자산에 투자한 국내 투자자 입장에서는 엔저가 해소된다면 일정한 환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일본의 금리와 엔화 가치가 상승하면 해외로 빠져나갔던 자금이 본국으로 돌아올 가능성도 주목해야 한다. 장기간의 저금리로 민간 부문 엔캐리트레이드 역외 자산 규모가 약 4조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이 중 일부만 환류하더라도 증시를 떠받칠 유동성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은 35년 만에 예전과 차별성이 있는 디플레이션 탈출의 호기를 맞았고 이 불씨를 살리기 위해 신중하면서도 전력을 다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제는 자산의 일정 부분을 일본에 투자하고 지켜보아야 하는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뜨거운 일본 증시…30년 불황 탈출 호기
국내에 상장된 일본 관련 ETF

이제 일본에 투자 가능한 상장지수펀드(ETF)에 대해 알아보자. 국내에 상장된 일본 관련 ETF는 총 11개다. 일본의 대표적 주가지수는 니케이225와 토픽스다. 니케이225는 대기업 225개의 주가를 단순평균한 지수이고, 토픽스는 도쿄거래소 프라임 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주가를 시가총액 가중치로 산출한 지수다.

니케이225는 지수 구성종목의 비중과 시가총액 비중 간에 차이가 있고 배당수익률은 낮지만, 대형주 투자에 유리하고 유동성이 훨씬 풍부하다. 반면 토픽스는 여러 종목에 분산투자를 할 수 있고 배당수익률이 높은 장점이 있다.

한국에 상장돼 있는 섹터 ETF는 반도체 부문에 집중돼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속화되고 있는 ‘지경학적 분절화(geoeconomic fragmentation)’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수혜를 받고 있는 일본의 반도체 산업에 대한 관심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내수의 회복과 부동산 경기 개선을 염두에 둔다면 부동산 ETF 투자도 고려해볼 만하다. 지난 12개월 동안 누적 분배금이 지난 4월 11일 종가(1만1815원) 대비 분배금 수익률이 6%를 넘는 준수한 수준이고 월 배당이라는 점도 매력 포인트다.
뜨거운 일본 증시…30년 불황 탈출 호기
엔화로 직접 투자할 수 있는 ETF

일본 관련 ETF에 투자할 때는 환리스크 노출 여부도 중요 고려사항이다. 느리고 신중하다고는 해도 일본은행이 통화정책의 정상화에 시동을 걸었기 때문에 엔화가 지금 수준보다 더 절하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금리 인하가 예상보다 늦어질 수도 있어서 일시적으로 엔화의 추가 약세가 진행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엔화 전망에 대해 한 방향으로 포지션을 잡기보다는 환리스크 헤지 ETF(H: 환리스크 헤지가 됐음을 표시)와 환리스크 노출 ETF에 적절히 분산투자를 한 후 엔화의 방향성을 주시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환리스크 노출을 감수한다면 한국 증시가 아닌 일본 증시에 상장된 ETF에 투자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특히 고배당주가 편입된 ETF를 매수하면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인컴을 기대할 수 있다. 높은 분배율이 예상되는 글로벌 X 슈퍼 디비던드 재팬 ETF(Global X Super Dividend Japan ETF·2564 JP)와 운용보수가 상대적으로 낮고 일본 내 브랜드 파워가 높은 넥스트 펀즈 니케이225 하이 디비던드 일드 스톡 50(NEXT FUNDS NIKKEI225 HIGH DIVIDEND YIELD STOCK 50·1489 JP)에 대한 투자가 고려 대상이 될 수 있다.

글 이희상 KB증권 WM투자전략부 연구위원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