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금리 인하 기대감에 들떠 있던 시장이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물가와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 때문이다. 금리 인하 기대감이 한순간에 꺾인 배경을 따라가 본다

[빅스토리] 지연된 피벗, 금리 카오스
사진=연합AP·연합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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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를 향한 시장의 기대가 섣불렀던 것일까. 미국발(發) 고금리 태풍이 곧 잦아들 것처럼 보였던 연초 분위기와 달리,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최근 거짓말처럼 꺾였다. 지난 2년간 이어진 고강도 긴축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예상외로 견조한 모습을 이어 간 것이 거꾸로 ‘독’이 됐다. 시장에서는 미국 중앙은행(Fed)의 피벗(통화정책 전환)이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고 있다.

분위기가 반전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미국의 물가 상승률이 최근 시장 전망치를 연달아 웃돈 것이 큰 변수가 됐다. 지난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1년 전에 비해 3.5% 올랐다. 이는 시장의 전망치(3.4%)보다 높은 수준으로, 올 들어 3개월 연속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은 수치다. 또한 지난해 9월(3.7%) 이후 6개월 만의 최고치이기도 하다.

미국 경제, 예상 밖 ‘나 홀로 성장’

물가가 잡히는 것 같던 지난해 말의 분위기와는 달리 Fed의 물가 억제 목표치인 2%를 훌쩍 넘어선 3% 중반대를 기록한 것이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예상보다 ‘더 끈적한(sticky)’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큰 변동성을 보이는 에너지·식품을 제외한 근원 CPI도 3.8% 올라, 시장 전망치 대비 0.1%포인트 웃돌았다.

고용 등 견조한 미국의 성장세는 오히려 물가를 자극하는 요소가 됐다. 2022년부터 장기화된 고금리(higher for longer)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는 글로벌 시장에서 ‘나 홀로 질주’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미국 경제는 소비, 고용 등 각종 지표가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깜짝 호조’를 이어 가고 있다.
‘피벗 지연’에서 ‘인상론’까지…대혼돈의 금리 멀티버스
우선 경제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내수 소비가 호조를 보였다. 미국의 3월 소매판매는 전월 대비 0.7% 증가한 7096억 달러다. 1년 전과 비교하면 4% 증가한 수치다. 2월 소매판매 증가율도 종전 0.6%에서 0.9%로 수정됐다. 아직은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데 인색하지 않다는 뜻이다.

활발한 소비의 원천은 무엇보다도 노동 소득에서 나온다. 시장의 예상치를 계속해서 뛰어넘는 미국의 고용지표가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미국의 3월 비농업 부문 신규 일자리 수는 30만3000건으로, 시장 전망치(20만 건)를 크게 웃돌았다. 12개월 평균 증가 폭(21만3000건)보다도 많은 일자리가 창출됐다. 2020년 4월 코로나19 팬데믹 초입에 15%였던 미국의 실업률은 이제 3%대까지 내려왔다. 지난 3월 실업률은 전월 대비 0.1%포인트 하락한 3.8%다.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히는 시간당 평균임금도 전월보다 0.3% 올랐다.

최진호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미국의 노동 시장을 보면 실업률이 매우 낮고 신규 취업자 수도 매달 예상치를 상회할 정도로 높다”며 “고용 시장이 좋기 때문에 국민들의 소득이 어느 정도 보전되고, 그러다 보니 지출을 많이 하게 된다. 특히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서비스 분야 지출이 늘면서 서비스물가가 크게 뛰었다. 이런 것들이 미국 물가가 쉽게 잡히지 않는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피벗 지연’에서 ‘인상론’까지…대혼돈의 금리 멀티버스
물가를 끌어올린 요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 지출도 물가 상승을 부채질했다. 이례적인 강도로 긴축의 고삐를 죄고 있는데도 미국 경제가 호황을 이어 가는 기저에는 미국 정부가 푼 막대한 돈이 존재한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금리를 올리면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고 경제는 쪼그라드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미국은 오히려 정반대 상황이라 그 원인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코로나19 시기부터 최근까지 미국 정부가 재정 지출을 과도하게 확대한 결과라는 분석이 그중 하나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미국의 대규모 재정 적자가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세계 경제를 큰 위험으로 빠뜨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IMF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피에르올리비에 구랭샤스는 미국 재정 지출에 대해 “인플레이션 2%라는 목표치를 향하려는 Fed의 시도를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며 “인플레이션을 낮추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위험을 초래하고, 글로벌 경제의 장기적인 재정 위험, 금융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은)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쉽게 물가를 잡기 어려울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가에서는 미국의 경기가 가라앉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노랜딩(no landing·무착륙)’으로 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Fed 내 높아지는 매파 목소리

올 들어 예상 밖으로 탄탄한 경제지표가 확인되면서 Fed의 분위기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시장의 금리 인하 전망이 눈에 띄게 후퇴했고, Fed 내 인사들의 발언 내용도 달라졌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의 ‘변심’이 대표적인 사례다.

파월 의장은 지난 4월 16일 워싱턴DC 윌슨센터에서 열린 북미경제포럼에서 “정책을 완화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리기 전에, 인플레이션이 2%로 지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더 큰 자신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실상 물가 경로에 대한 확신이 없다면 금리 인하가 지연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시장에 던진 것이다. 그는 “최근 경제지표는 우리에게 더 큰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다. 물가 상승률이 목표치를 향한다는 확신이 생기기까지는 예상보다 더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도 했다.

올해 초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둔화)’을 언급하며 금리 인하 메시지를 던진 것과는 상반된 태도다. 지난 1~2월 소비자물가가 시장 전망치보다 높게 나왔을 때만 해도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 수치가 강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2%라는 목표치를 향하는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때로는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가고 있지만, 2%를 향해 점진적으로 하락하는 전반적 추세는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당시 그의 발언을 비둘기적(통화 완화 선호) 입장으로 읽었다.
‘피벗 지연’에서 ‘인상론’까지…대혼돈의 금리 멀티버스
파월 의장의 변심 이후 Fed 내 매파적인 목소리도 한층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 4월 18일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금리 인하가 연내 이뤄지지 않고 내년으로 지연될 가능성에 대해 “어쩌면(potentially)”이라는 답변을 내놨다. 그는 “인플레이션이 2%로 내려간다는 확신이 설 때까지 필요한 만큼 인내하며 기다릴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중도파인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같은 날 “추가 금리 인상이 나의 기본적인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데이터가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더 높은 금리가 필요하다고 말하면, 우리는 분명 그렇게 하기를 원할 것”이라고 했다. 래피얼 보스틱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우리는 올해 연말 무렵까지 기준금리를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Fed 내 비둘기파로 꼽히던 오스탄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마저 4월 들어 중립적 입장으로 의견을 바꾼 바 있다. 그는 “불확실성이 존재할 때 가장 중요한 규칙은 데이터 도그(data dogs)가 계속해서 냄새를 맡게 하는 것”이라며 “움직이기 전에 기다린 후 확실한 쪽으로 가는 것이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미국의 금리 인하 시기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횟수도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이 메인 시나리오로 떠올랐다. 미 시카고상품거래소(CME)가 제공하는 시장분석도구인 페드워치(4월 20일 기준)에 따르면, Fed가 6월 FOMC 회의에서 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은 16.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7월 인하 확률은 40.6%, 9월 인하 확률은 64.5%로 예측됐다. 한 달 전만 해도 6월 인하에 60%의 확률을 베팅했던 시장의 전망이 이제는 9월 인하 쪽으로 옮겨 간 셈이다.

일각에서는 미국이 인플레이션 둔화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면 Fed가 연내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는 Fed가 내년 3월까지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만한 ‘실질적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스티븐 주노 BoA 이코노미스트는 “6월이나 9월조차 Fed가 금리 인하 사이클을 시작하는 것이 불편할 수 있는 시기”라며 “인플레이션 지표가 올해 금리 인하를 시작할 수 있을 만한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경제활동 지표도 강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Fed가 금리 인하를 뒤로 미루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지금보다 더한 고금리 시대를 경고하는 월가의 큰손들도 존재한다. 제임스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시장은 연착륙 가능성을 70~80%로 보고 있는 것 같지만 나는 그보다 확률이 훨씬 낮다고 본다”면서 “금리 연 8% 시대의 시나리오도 대비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 등 불안정한 대외 환경이 미국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리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며 월가의 통화정책 전망도 극과 극의 시나리오로 엇갈리는 모습이다.
‘피벗 지연’에서 ‘인상론’까지…대혼돈의 금리 멀티버스
통화정책 각자도생, 한은의 선택은

전통적으로 미국 통화정책 방향의 불확실성은 세계 각국의 통화정책까지도 오리무중으로 빠뜨리는 요인이었다. 하지만 현재 미국 경제가 글로벌 경제와 동떨어진 채 ‘자신만의 길’을 가는 상황이라,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과거처럼 Fed를 통화정책의 등대로 삼긴 힘들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본격적인 통화정책 탈동조화(디커플링)의 시작이다.

미 스위스 중앙은행인 스위스국립은행(SNB)은 지난 3월 기준금리를 1.5%로 종전 대비 0.25%포인트 인하했다. 유럽중앙은행(ECB)도 오는 6월 미국에 앞서 금리를 낮추는 방향을 여러 차례 시사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최근 “큰 충격이 없다면 곧 통화 긴축을 완화할 것”이라며 “디스인플레이션 과정에 좀 더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빌르루아 드갈로 프랑스 중앙은행 총재도 “중대한 충격이 없다면 6월 초 첫 금리 인하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선제적 인하에 무게를 실었다.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는 유로존과 달리 일본은 디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하락)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일본은행(BOJ)은 2016년 2월부터 펼쳤던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서 8년 만에 벗어나 지난 3월 금리를 인상했다. 일본이 기준금리를 올린 것은 2007년 2월 이후 17년 만이다. 일본 기준금리는 -0.1%에서 0~0.1%로 오른 상태다. 다만 일본은 금리 인상 이후에도 34년 만에 최저치까지 떨어진 ‘슈퍼 엔저’ 현상을 겪고 있다. 수입 물가가 계속 오른다면 연내 추가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도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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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국 통화정책이 각자도생의 길로 접어든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현재로서는 Fed가 9월에 금리를 인하하고 한은도 3~4분기에 금리를 낮추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떠오른다. 한은이 주요국 피벗 흐름에 맞춰 선제적으로 인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는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국내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끼치는 변수로 ‘유가’를 꼽았다. 이 총재는 “주요국 통화정책보다 국제 유가가 어떻게 될지가 문제”라며 “근원물가에 비해 CPI가 끈적끈적하다. 유가가 90달러 밑에 있을지 더 오를지가 제일 문제다”라고 했다.

국제 유가 상승이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평균 가격과 상승 기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의 충돌로 국제 유가가 불안정해지자 강달러로 인해 수입 원재료 가격이 자극을 받았다. 식료품 물가가 오르면 한은이 우려하는 고물가 상황을 더 부추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렇게 되면 국내 기준금리 인하 시기를 잡기 더 어려워진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은 “중동 지역의 리스크가 확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유가가 단기간에 빠지기는 힘들 것 같다”며 “최근에 유가가 상승한 것은 미국 경기가 받쳐주다 보니 수요 측면에서 올라간 측면이 커, 공급 리스크가 단기간에 해소돼도 유가를 끌어내리기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글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 사진 연합AP·연합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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