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투자전략에서 반드시 고려돼야 할 상수는 금리다. 누구보다 금리의 힘을 정확히 꿰고 있는 부자들은 금리 변동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채권으로 수익을 높여왔다. 예나 지금이나 금만큼 부자들의 애정을 받아 온 채권의 매력은 무엇일까.

[커버스토리] 부자들이 점찍은 유망 투자처-채권
서울 시내 한 금융정보 회사 모니터에 한국 국채 수익률이 표시되고 있다. 한국경제
서울 시내 한 금융정보 회사 모니터에 한국 국채 수익률이 표시되고 있다. 한국경제
부자들은 금리가 오르내릴 때마다 채권에 주목했다. 채권은 정부와 기업이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차용증서로, 통상 금리가 하락하면 채권 가격은 상승하게 되면서 시세차익을 노릴 수 있다. 반대로 금리 인하 시점이 멀어지고, 고금리 기조가 길어질수록 채권 투자에 대한 매력은 떨어진다.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지속됐던 지난해 부자들의 투자 포트폴리오에도 채권은 어김없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4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Korean Wealth Report)’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자들은 지난해 부동산과 주식 비중을 줄이고 현금성 자산이나 채권 비중을 늘렸다.

매매차익 비과세…부자들의 절세 파트너

실제 지난해 부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에서 부동산 자산의 비중이 50%를 차지해 직전 연도 대비 5%포인트 하락했다. 반면 금융 자산 비중은 46%로 같은 기간 3%포인트 증가했는데, 금융 자산 중에서는 예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4%포인트가량 늘어난 37.5%로 가장 높았다.
주목할 점은 국내 부자 4명 중 1명은 채권을 보유했다는 것이다. 특히, 세금 부담이 큰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 저쿠폰 채권 투자 수요가 부쩍 증가했다. 저쿠폰채는 금리가 급등하기 전인 2020∼2022년 연 0∼2%의 낮은 표면금리로 발행된 개별 채권이다.

통상 채권 투자 수익은 이자수익과 매매차익으로 나뉘는데, 채권은 매매차익에 대해선 비과세지만 이자소득에 대해선 연 2000만 원 이하는 분리과세(15.4%), 연 2000만 원 초과분에는 종합소득을 합산한 과세율(6~45%)이 적용된다.

여기에 저금리 시기에 낮은 표면금리로 발행된 저쿠폰채를 만기까지 가져가면 높은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고,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적용받는 고액자산가에게 채권의 절세 효과가 더 크다. 매매차익을 과세 대상으로 분류하는 금융투자소득세 시행 시기가 오는 2025년까지 유예된 점도 투심을 모으는 요소다.

정은지 신한PWM서교센터 PB팀장은 “2022년 하반기부터 고액자산가들의 저쿠폰채 선호도가 매우 높았다”며 “저가에 매입해 만기 시 상대적으로 높은 매매차익을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종합소득세 과세 대상에서도 제외되는 등 절세 효과까지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부자들의 찐테크, ‘1석N조’ 채권 투자의 매력
부자들의 찐테크, ‘1석N조’ 채권 투자의 매력
정 팀장은 그러면서 “지금은 조건 좋은 저금리 절세 채권은 찾아보기 힘들고, 금융기관 신종자본증권이나 우량회사채 5년 만기 고금리 채권 수요가 많은데 이마저도 신규 경쟁이 치열하다”며 “유례없이 높은 고금리 상황에서 일정 기간 고금리를 확보할 수 있고, 금리 인하 시 매매차익까지 기대할 수 있으니 고액자산가들뿐만 아니라 일반 투자자들에게도 채권은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설명했다.

또한 인플레이션 우려가 잦아들 조짐을 보이면서 이르면 9월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수 있다는 기대감과 함께 채권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5월 18일 금융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채권형 펀드의 설정액은 16일 기준 50조5533억 원으로 일주일 전(48조4417억 원) 대비 2조1116억 원 증가했다. 반면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47조2383억 원으로 한 주 전(47조3551억 원)에 비해 1168억 원 줄었다. 채권형 펀드 설정액이 주식형 펀드를 3조3000억여 원 상회한 것이다. 이로써 채권형 펀드와 주식형 펀드 간 격차는 지난 2일 6000억 원에서 2주 새 5배 이상으로 벌어졌다.

채권 투자 열기는 지난 5월 15일 공개된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예상보다 둔화한 것이 확인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미국 4월 CPI는 전년 동월 대비 3.4% 상승, 3월(3.5%)보다 0.1%포인트 낮아졌다. 소폭이지만 CPI 상승세가 둔화한 건 올해 들어 처음으로 멀어지는 듯했던 금리 인하 기대를 되살려냈다. 한때 연내 금리 인하 자체가 불투명해 보였으나 다시 9월과 12월 두 차례 인하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문가들도 하반기 저금리로 전환되더라도 채권 투자의 인기는 쉽게 식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절세 효과로 채권 투자의 장점이 부각됐고 투자 포트폴리오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소속 채권 전문가는 “금리가 높을 때는 통상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투자금을 채권으로 안전하게 불렸다가 금리가 떨어지면 차익 실현을 해 부동산에 다시 투자한다”며 “특히, 채권은 매매차익이 비과세라 차익 실현을 해도 세금을 한 푼도 안 낸다는 이점이 있어 부자들의 투자 손길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지 팀장도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목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 2%다. 이미 지난 3월 근원물가 상승률이 2% 초반인 점을 감안하면 하반기로 갈수록 목표에 도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며 “물가 상승률이 둔화하면 시장금리는 더욱 하락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국고채 3년 수익률이 금리의 하방성을 알려주듯 기준금리 인하는 시기의 문제이지 방향성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러면서 “다만, 미국 금리나 미국 물가지수를 함께 고려해야 되기 때문에 정확한 금리 인하의 시점을 예상할 수 없다”면서도 “기간을 여유 있게 설정할 수 있는 투자자에게 채권은 여전히 유효하고 매력적인 투자처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후순위채권, 금리보다 신용등급 따져야

고액자산가들의 절세 파트너 채권 투자에도 주의할 점은 있다. 채권은 원금 손실이 가능하고, 은행과 달리 예금자 보호가 되지 않는다. 발행기관인 회사가 파산하면 원리금을 다 돌려받기 어렵다.

정 팀장은 “높은 확정금리라고 해서 모두 좋은 채권은 아니다”라며 “만기까지 발행한 회사가 파산의 위험은 없는지 신용등급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면서 “요즘 많이 발행되는 후순위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은 발행 회사가 원리금 회수가 어려운 상황에서 변제 순위가 낮기 때문에 신용등급이 매우 중요해서 만기가 길수록, 후순위채권일수록 신용등급이 금리보다 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며 “내년 1월에 시행 예정인 금투세도 잘 체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자들의 찐테크, ‘1석N조’ 채권 투자의 매력
금투세 유예기간 동안 채권 매매차익은 비과세가 되지만, 예정대로 2025년 1월부터 금투세가 시행된다면, 채권의 매매차익은 20% 세율(공제 250만 원)이 적용된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에 금리 인하로 인해 매매차익이 기대되는 채권을 보유했다면, 금투세 시행 전에 매도를 고려해보는 편이 좋다.

또한 채권 투자 시 머니마켓펀드(MMF)를 상장지수펀드(ETF) 형태로 구성한 초단기 채권 ETF를 주목할 만하다. 운용사들도 채권·금리형의 인기에 관련 상품을 연달아 출시하고 있다. 지난 4월 미래에셋자산운용은 타이거(TIGER) 27-04 회사채(A+ 이상) 액티브를 신규 상장했다. 이 상품은 연금 계좌를 활용해 투자할 경우 다양한 절세 효과도 누릴 수 있다.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중개형, 개인연금, 퇴직연금(DC·IRP) 계좌에서 거래 시 인출 시점까지 과세가 이연되고 세액공제까지 받을 수 있다. 채권형 ETF로 퇴직연금 계좌에서 100% 투자가 가능하다.

삼성자산운용도 자사의 코덱스(KODEX) 25-11 은행채(AA- 이상) 플러스액티브 ETF의 순자산도 상장 이후 70 영업일 만에 5000억 원을 돌파했다고 5월 17일 밝혔다. 해당 상품은 만기가 내년 11월까지인 만기매칭형 채권 ETF다. AAA급 은행채와 AA- 이상인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에 투자하는 전략을 지니고 있고, 편입 중인 AAA 은행채를 담보로 환매조건부채권(RP) 매도를 통해 마련한 재원을 여전채에 추가로 투자해 만기 기대수익률(YTM)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임태혁 삼성자산운용 ETF운용본부 상무는 “개인투자자들도 다양한 은행채에 투자하는 만기매칭형 ETF를 통해 기관투자가들이 주로 참여하는 우량 은행채 시장에 동등한 조건으로 투자할 수 있다”며 “안전자산 투자를 계획하고 있는 연금 투자자들에게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드릴 수 있는 만큼 좋은 투자 수단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오는 6월 첫 발행을 시작하는 개인투자용 국채에도 투자자들의 이목이 쏠린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정부가 새로운 형태의 안정적인 초장기 투자처를 제공해 개인의 노후 대비를 위한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는 국채다. 만기 보유 시 가산금리, 연복리, 분리과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며 국가가 보장하는 안정성까지 갖추고 있다.

개인투자용 국채는 전용 계좌에서만 매입할 수 있기 때문에 사전에 필수적으로 계좌를 개설해야 한다. 개인(미성년자 포함 거주자)만 투자가 가능하고, 청약의 형태로 최소 10만 원에서 연간 최대 1억 원까지 매입할 수 있다. 국채는 10년, 20년 월물로 1월에서 11월까지 연 11회 발행될 예정이다. 전용 계좌는 미래에셋증권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M-STOCK) 또는 미래에셋증권 전 지점에서 개설이 가능하다.

글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