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가 큰 토지 투자는 개발 호재만 믿고 들어가면 자칫 손해를 볼 수 있다. 특히 지분거래·공동투자로 인한 피해는 치명적인 자산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슈]
태영건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소재 오피스 개발사업 현장. 사진=한국경제DB
태영건설 서울 성동구 성수동 소재 오피스 개발사업 현장. 사진=한국경제DB
완만한 하락 추세를 이어 가던 부동산 시장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전망이다. 정부가 본격적인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에 나서게 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5월 1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부동산 PF 연착륙을 위한 향후 정책방향’을 발표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사무처장은 이 자리에서 “관대함보다는 엄정하게 평가하도록 할 예정이며 감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이해관계자가 손실을 분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부실 PF 사업장을 엄격하게 선별해 시장 원리에 맡기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위기감을 느낀 시행사들도 나섰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는 16일 긴급 간담회를 열고 “부동산 공급 생태계 붕괴가 우려된다”며 보완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개발사업이 추진되던 토지들이 경·공매 시장에 쏟아져 나오는 한편, 그 여파로 인해 전반적인 부동산 시세가 다시 한번 출렁일지 주목된다. 2022년 하반기 금리 인상을 기점으로 부동산 시세는 상당 부분 조정을 거쳤으나, 토지 시장은 주택과 오피스텔 등 비주택 시장에 비해 그 속도가 느렸다.

이번 구조조정에 따라 일부 개발 업체 및 시공사들은 위기에 직면하겠지만, 지난 부동산 사이클을 경험 삼아 대폭 조정된 가격으로 시장에 나올 매물을 노리는 투자자들 역시 존재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발간한 ‘2024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Korean Wealth Report)’를 보면 국내 자산가들의 추가 투자 의향이 높은 자산 1순위가 부동산으로 24%를 차지했으며 보유 부동산의 매도 의향보다 매수 의향이 더 높게 나타났다. 부동산 경기 전망이 여전히 부정적인데도 불구하고, 추가 하락 시 투자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경매 업계에 따르면 이미 선구안을 가지고 경·공매 학원을 찾기 시작한 개인투자자들이 늘었다. 그러나 이 같은 투자자들을 노린 함정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유서 깊은 ‘기획부동산’은 물론 최근에는 부동산 학원이나 카페에서 모집한 공동투자(공투)까지, 전문 지식이 없는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안기는 형태는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피해를 보지 않기 대해 소위 ‘뜬다는 지역’에 대한 ‘묻지마 투자’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개발의 재료’로서 토지의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세부적인 개발 계획 및 토지 용도에 대한 지식이 필수다.

금리 오르자 토지 시장도 ‘꽁꽁’

이미 PF 위기를 넘기지 못한 부동산 개발용 토지들이 속속 공매 시장에 나오고 있다. 5월 21일 기준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영하는 자산 처분 플랫폼 온비드에서 매각 입찰이 진행되는 서울 소재 토지물건은 총 46건에 달한다. 이 중 감정평가액 100억 원이 넘는 강남3구, 용산구, 성동구 토지도 있다.

그러나 이들 토지는 감정가대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강남구 역삼동 소재 4필지(2040.9㎡)는 감정가가 2307억 원에 달했는데, 지난 8일 최저입찰가 1684억 원에 나왔어도 낙찰되지 못했다. 결국 20일부터 1523억 원에 다시 입찰을 진행해 21일 1550억 원에 주인을 찾았다.

용산구도 사정은 비슷하다. 6호선 이태원역 상권 대로변에 위치한 용산구 이태원동 소재 토지 2필지(996.4㎡)는 총 열 차례 유찰됐다. 열 번째 입찰에선 최저입찰가가 기존 약 685억 원에서 450억 원까지 떨어졌지만 낙찰되지 않았다. 같은 용산 내 삼각지역 대로 앞 토지 453.5㎡는 감정평가액 390억 원에서 첫 번째 입찰을 시작했지만, 네 차례 유찰된 끝에 260억 원에 주인을 찾았다.

이들 토지의 공통점은 부동산 개발사업이 추진되다가 사정이 여의치 못해 공매 시장에 나왔다는 것이다. 역삼동 부지 역시 시행사가 2021년 오피스텔 개발 목적으로 SK디앤디로부터 1199억 원에 사들인 곳이다. 강남 등 서울 핵심 지역에 공사용 울타리가 쳐진 채 방치된 부지 대부분이 이렇게 매각을 진행 중이거나 경·공매 시장에 나오기 직전인 상황이다.

이들 부지는 입지 자체의 가치는 우수하지만, 가격대가 너무 높아 개인 차원의 투자는 불가능한 매물이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통상 부동산 개발용 부지는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된다.

이 때문에 공매에 나온 일부 토지는 단위면적 기준으로 쳐도 3.3㎡(평)당 3억 원이 넘는 등 기존 가격이 너무 비싼 상태다. 공매가 유찰돼 가격이 어느 정도 조정돼도 개발업자들조차 쉽사리 접근하기가 어렵다. 분양 시장이 침체한 데다 금리 역시 높은 상태가 유지되는 등 고가의 토지가 활발하게 거래되던 부동산 호황기와 상황이 180도 달라졌기 때문이다.

호재 따라간 토지 시장

주택 시장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국 토지 거래량은 다소 감소하는 추세다. 부동산 경기가 꺾이고 금리 인하가 늦춰지면서 투자심리는 위축됐다. 다만 개발 호재가 있는 지역에 거래가 집중된 편이다. 개별 토지의 특수성 탓에 평균 거래 가격은 일관된 흐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밸류맵 집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토지 거래량은 7만4905건으로 전분기 대비 16%,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 같은 기간 토지 3.3㎡ 당 전국 평균 가격은 100만 원으로 전분기보다 14% 떨어졌으나, 지난해 1분기보다는 15% 올랐다. 3.3㎡당 토지 가격은 지난해 1분기 87만 원을 기록한 뒤 3분기와 4분기에 116만 원까지 상승한 뒤 다시 떨어졌다.
부동산 하락기 토지 ‘줍줍’ 주의보…입지·용도 꼼꼼히 따져야

시도별 거래량은 전남(1만2381건)와 경북(1만286건), 경기도(1만239건), 충남(9580건) 순으로 많았다. 경기도는 지난해 4분기 1만4147건이 실거래돼 가장 거래량이 많은 지역이었으나 올해 들어 거래량이 28% 감소하며 전남에 1위 자리를 내줬다.

이들 지역 내에서도 거래는 주로 개발 호재가 있는 곳에 집중됐다. 다만 일부 지역에선 지분 거래가 활발해 실제 거래 규모 대비 거래량이 많이 집계된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에선 1년 이상 화성이 최대 거래량을 유지했고, 충남은 당진과 아산이 분기마다 1위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했다. 화성에선 장안면, 향남읍, 우정읍 등 서남부 거래량이 많았다. 이들 지역은 서해선 복선전철 홍성~송산 노선 개통 수혜지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 노선은 5586만㎡ 규모에 달하는 송산그린시티 개발사업이 진행 중인 화성 송산부터 평택, 충남 아산 인주와 당진 합덕을 거쳐 홍성까지 이른다. 향남읍에선 서해선이 개통하는 향남역을 중심으로 향남택지지구(향남1지구·향남2지구)가 성공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부동산 하락기 토지 ‘줍줍’ 주의보…입지·용도 꼼꼼히 따져야
부동산 하락기 토지 ‘줍줍’ 주의보…입지·용도 꼼꼼히 따져야
전남에선 해남, 경북에선 경주의 거래량이 가장 많았다. 해남은 친환경 기업도시 ‘솔라시도’ 개발 및 영농형 태양광 사업, 광주~영암 간 초고속도로 건설 등 호재가 있다. 경북 경주는 고속철도(KTX) 신경주역세권 신도시 개발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 역세권 개발사업의 근생 및 주차장 시설 용지는 지난 4월 16일부터 일주일간 공급돼 모두 매각됐다. 이 밖에 농사 목적의 농지 매매 또한 활발한 편이다.

부동산 경매 전문가인 정상열 천자봉플러스 대표는 “최근 토지 낙찰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경기도 평택이나 충남 등지에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도시개발사업이 진행되는 지역에 보상을 노리고 관련 경매에 꾸준히 관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는 “투자금이 클 경우 이 같은 토지를 여러 명이 지분 투자 형태로 사들이기도 한다”고 밝혔다.

전경진 밸류맵 시장분석팀장은 “토지 가격은 상승기에 완만한 오름세를 이어 가다가 하락기에 들어서며 일관된 흐름을 보이기보다는 등락을 거듭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팀장은 “경기도에선 철도, 산업단지 등의 개발 계획이 집중된 화성의 거래량이 압도적”이라면서 “충남 역시 당진 쪽으로 중심으로 개발 호재가 많은 데다, 경기도에서 불법 투기 거래를 단속하면서 토지 지분을 거래하는 사업자들이 이곳에 이동해 거래가 더욱 활발해진 편”이라고 덧붙였다.

위험한 지분 거래·공동 투자

일각에선 이런 토지 거래, 특히 지분 거래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도 나온다. 개인투자자들끼리 직접 지분 투자 형태로 토지, 건물 등 부동산을 공동 매입하는 사례는 흔하다. 그러나 개발 호재로 인해 지역 땅값이 곧 급등할 것처럼 홍보해 투자자를 모으는 세력이 공동 투자의 안 좋은 선례를 남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과거부터 일명 ‘기획부동산’이 성행하며 개발제한구역 등 개발 이익을 보기 어려운 땅을 수십 명이 지분을 쪼개 사게 만드는 사례가 많았다. 이 같은 지분 거래는 오랫동안 개인이 비교적 소액을 투자해 단기간에 높은 수익을 볼 수 있는 방법으로 포장됐다.

이 때문에 땅 투기와 부동산 지분 거래가 활발한 경기도는 ‘기획부동산 상시 모니터링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실시간 거래 자료를 받아 지분 거래 여부와 거래된 토지의 용도지역, 기간 대비 거래 빈도 등 ‘기획부동산 거래 패턴’과 일치하는 사례를 찾아내 집중 추적하는 것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경기도는 지난해에도 8월부터 12월까지 기획부동산 투기 의심 거래 1014건을 조사해 273명을 적발하기도 했다.
2022년 5월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김영수 공정특별사법경찰단장이 3기 신도시 및 기획부동산 불법 투기행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경기도
2022년 5월 경기도청 브리핑룸에서 김영수 공정특별사법경찰단장이 3기 신도시 및 기획부동산 불법 투기행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경기도
최근에는 한 경매학원이 법인 형태로 수강생을 공동투자자로 끌어모아 경매물건을 낙찰받도록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경매 낙찰가에 따라 학원이 수수료를 받게 되는 구조로 인해, 일부 강사들은 수강생들이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투자 가치가 낮은 물건을 고가에 낙찰받도록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낙찰받은 물건 상당수는 투자자들에게 시세차익을 안겨주기는커녕, 낙찰 가격보다 대폭 낮은 가격에 내놓아도 매도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액·경매에 집착 말아야

통상 경매는 소유주가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거나 세금을 체납해 압류된 물건을 시세보다 저렴하게 매수하는 투자 형태다. 지금 같은 부동산 경기 불황에 투자자들이 경매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다. 특히 토지는 당장의 경기와 상관없이 지역별 개발 계획이나 미래 가치에 따라 가격이 매겨질 수 있는 투자처라 불황기에도 투자자들이 차익을 보기 위해 접근하기 쉽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은 ‘소액 투자’나 ‘경매’라는 투자 방법에 집중하기보다 토지 본연의 가치를 분석해야 투자 손실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액으로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저렴한 농촌 임야나 농지에 투자하기보다 한 필지를 사더라도 수도권 역세권 주변이나 개발 계획이 확실한 땅을 매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경매학원 사례에서 보듯, 다양한 물건에 대한 입칠이 진행되는 경매 투자 역시 관련 지식을 바탕으로 한 세밀한 물건분석이 필요한 분야다. 특히 부동산 시세가 하락하는 시점에는 6개월에서 1년 전에 책정한 감정가에 따라 최저입찰가가 정해지기 때문에 인근 토지 거래 시세를 정확히 확인한 뒤 응찰에 나서야 손해 보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시가 곧 개발이 되니 그 일대 땅에 투자해야 한다”는 식의 단순한 접근 역시 많은 투자자들이 개발제한구역 등의 토지에 ‘물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같은 위치에 있는 부지라도 용도에 따라 개발할 수 있는 시설이 달라지므로 토지의 가치가 달라진다. 그만큼 토지 투자는 난이도가 높다.

김종율 보보스부동산연구소 대표는 “개발 계획이 있는 택지지구 인근 토지 매수는 리스크가 낮고 투자 금액 대비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투자 방식인 것은 맞으나, 관공서 확인 등을 통해 개발 단계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알아보고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택지 개발 자체보다는 그로 인해 정주인구가 늘어나는 효과가 토지 시세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면서 “역세권 개발의 경우 인근 아파트 수요가 많은 곳에 한 해 추진 속도가 빨라지게 되므로 분양 수요가 적은 충남 당진의 경우 합덕역 주변보다 도로, 철도, 산업단지 호재가 집중된 계획관리지역 토지의 시세 상승이 빠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보름 한경비즈니스 기자 br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