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일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소도시 오마하에서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가 열렸다. 투자의 귀재이자 존경 받는 부자로 손꼽히는 워런 버핏 회장의 투자 철학과 통찰을 듣기 위해 수만 명이 모여들었다. 살아 있는 투자 교육을 위해 자녀 손을 잡고 함께 참석한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커버스토리]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 참관기 지난 5월 3일 미국 네브래스카주의 소도시 오마하에서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가 열렸다. 투자의 귀재이자 존경 받는 부자로 손꼽히는 워런 버핏 회장의 투자 철학과 통찰을 듣기 위해 수만 명이 모여들었다. 살아 있는 투자 교육을 위해 자녀 손을 잡고 함께 참석한 참가자도 적지 않았다. 오북미 대륙의 한복판, 네브래스카주 오마하는 눈에 띄는 높은 빌딩 대신 야트막한 건물들과 널따란 도로들 주변에 띄엄띄엄 자리한 주택가들로 한적하기 이를 데 없는 지역이다. 인구 49만여 명의 미국 내 작은 소도시이지만 매년 딱 한 번, 5월 초 사흘간 아담한 애플리공항에서 쏟아져 나오는 4만 명의 인파를 맞이하는 연례 행사로 북적이는 곳이다. 바로 ‘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의 주주총회를 즐기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주주들이다.
‘자본가들의 우드스톡’이라는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는 올해 미 중부 시간 기준 5월 3일부터 5일까지 사흘에 걸쳐 주주를 상대로 한 바자회(3일), 주주총회(4일), 5km 달리기(5일)로 열렸다. 메인 행사일인 4일 오마하 시내 초대형 복합공간인 CHI헬스센터는 다소 궂은 날씨에도 새벽 4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 주주들이 2층과 1층 출입문 4곳을 따라 늘어나면서 입장 시간인 7시 무렵엔 행사장 블록을 한 바퀴 돌 정도가 됐다. 1년 전부터 숙소 예약…“버핏 생전에 볼 마지막 기회”
네 아이들과 함께 줄을 선 마이클 게이뇰(48) 씨는 “아이들이 미래를 계획하고 투자의 즐거움을 알도록 하기 위해 벅셔해서웨이 주식을 사줬다”며 “지난해 미리 호텔을 잡아 여행을 왔다”고 기대를 보였다. 벅셔해서웨이의 자회사로 합류한 파일럿 트래블센터스가 제공한 따뜻한 커피를 든 채 기다리던 다른 주주들의 방문 이유도 다양했다. 게이뇰 씨 외에도 아들과 경험 삼아 방문을 계획한 토르슨 슐러슨(52) 씨는 “버핏의 조언을 따라 투자를 시작했고, 그가 혹여 세상을 떠나더라도 새 경영진이 어떻게 할지 확인하고 싶어 참석했다”고 말했다.
올해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에서 버핏 회장은 지난해 11월 말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찰리 멍거 부회장 없이 벅셔해서웨이 주주총회 연단에 서게 됐다. 그렉 에이블 벅셔해서웨이 에너지 최고경영자(CEO) 겸 비보험 부문 부회장, 아짓 자인 보험 부문 부회장 등과 함께 연단에 나란히 앉았지만, 멍거 부회장의 빈 자리는 지워지지 않았다. 버핏 회장은 질의응답 중 왼편에 앉은 그렉 부회장을 향해 ‘찰리’라 잘못 호칭하고서 “또 실수하는 걸 볼 겁니다”라며 문답 이후에 찰리 멍거에게 되묻던 오랜 습관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버핏을 향해 찰리 멍거와 하루가 더 있다면 어떤 것을 하고 싶냐는 10대 소년 앤드루 네카스의 해맑은 질문도 청중들에게 두 오랜 단짝의 애틋함을 불러일으켰다. 버핏은 “우리는 무엇이든 모든 것을 함께 했습니다. 실패한 일들도 함께 해결해야 했죠. 서로에 대한 의심조차 없었습니다”라며 “인생의 마지막 날에 누구와 보내고 싶은가요? 그들을 만날 방법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가능한 자주 만나세요”라고 조언했다. 이러한 버핏의 답변은 주주총회 내내 투자자들에게 깊은 각인을 남겼다. 미국 최대 철도 회사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를 벅셔해서웨이가 사들이면서 주주가 됐다는 로라 그레이(64) 씨는 “버핏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시즈캔디(See’s Candies)를 먹던 찰리 멍거가 그립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현금만 상반기 271조 원…“사용할 곳 없어, 좋은 공 기다린다”
버핏 회장은 질의응답에 앞선 2024회계연도 1분기 실적 보고에서 1823억3500만 달러, 약 247조8000억 원에 달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대비 12.8% 증가한 규모인데, 올해 상반기까지 총 2000억 달러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버핏은 “현재 금리가 5.4%인 상황에서 효과적으로 사용할 곳을 잘 모르겠다”면서 “돈을 쓰고 싶지만, 위험이 거의 없고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지 않는 한 쓰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버핏은 야구의 타자가 타석에 오르는 것에 비유해 “좋아하는 공에만 스윙하겠다”면서 막대한 자금을 사용하기 전 시장 환경의 변화를 기다리고 있음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벅셔해서웨이는 이러한 현금성 자산의 상당한 비중을 미국 재무부가 발행하는 국채(T-bill)에 투자하고 있다. 버핏은 지난해 8월 미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주 월요일 100억 달러의 미 국채를 매입했고, 이번 주 월요일에도 매입했습니다”라며 단기 국채를 이용한 안정적 현금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일본만 한 곳 없어…중국 아닌 “미국 자본주의에 투자”
미 재무부가 5월 발행해 11월 만기 예정인 6개월 단기 국채 금리는 5.160%에 달한다. 만일 벅셔해서웨이가 1823억 달러를 통째로 연 5%의 수익률로 투자한다면 아무런 거래를 하지 않고도 매년 91억1000만 달러(약 124억9000만 원)에 달하는 이자를 확보하는 효과가 발생한다.
버핏은 “현재 상황에서 현금 포지션을 구축하는 것은 전혀 고민스럽지 않다”면서 “주식 시장의 가능한 대안과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의 구성을 보면 (현금은)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강조했다.
투자 지역은 미국 위주의 좁은 행보를 이어 갈 전망이다. 버핏은 지난 연례 주주서한에서 무기한 보유 계획을 밝힌 대로 옥시덴탈 페트롤리움, 일본 상사를 제외한 새로운 투자 계획이 없음을 재확인했다. 버핏은 이날 주주 가운데 중화권을 비롯한 해외 투자 가능성을 묻자 “다른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큰 투자는 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일본 상사에 대한 투자를 언급하며 “지금 그런 기회가 벌어진다면 벅셔를 위해 나설 것”이라면서 “제가 편식을 하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상황이 매력적이지 않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버핏은 90세 생일이던 2020년 8월 “기회에 놀랐고, 배당성장에 한 번 더 매료됐다”며 이토추상사 등 5개 일본 무역상사 지분을 5%씩 확보한 뒤 지난해 말 기준 이를 9%로 늘린 상태다. 앞서 버핏은 주주서한에서도 “벅셔해서웨이를 진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기업은 소수에 불과하다”며 일본 무역 회사 투자 이후 “기본적으로 해외에 자본을 배치할 의미 있는 옵션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버핏은 엔화 채권 발행을 통해 현금 조달 비용을 최소화하고, 동시에 니케이 지수 대비 절반 수준의 기업 가치를 가진 저평가 기업이면서, 강력한 주주환원이 가능한 일본 상사에 공격적인 투자를 진행해 왔다. 벅셔해서웨이는 지금까지 1%대 미만의 금리로 일곱 차례의 엔화 채권을 발행했는데, 각 상사에서 제공하는 배당 수익률만 3% 수준에 달한다. ‘제2의 워런 버핏’으로도 불렸던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X(구 트위터)에서 “수조 엔을 거의 무료로 빌리는 무위험 베팅에 가깝다”며 “이 투자가 실패하는 유일한 길은 일본 경제가 무너지는 것밖에 없다”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보험은 재정적 화력 제공…막대한 투자 성과의 힘
벅셔해서웨이의 주력 사업은 크게 아짓 자인 부회장이 이끄는 보험 부문과, 그렉 에이블 부회장이 이끄는 비보험으로 나뉘는데 애플과 같은 주식 투자를 포함해 매우 다각화한 투자지주회사다. 보험 부문은 미국 2위 자동차 보험사인 가이코(GEICO), 세계 최대 재보험사인 제너럴리(General Re), 현재 벅셔해서웨이 투자의 토대가 된 내셔널 인뎀니티(National Indemnity) 등으로 운영된다. 나머지 비보험 부문은 다시 벅셔해서웨이에너지, BNSF철도, 트럭 정유장 관리 업체인 파일럿 트래블센터, 제조·서비스업 부문에 넷젯(NetJet), 시즈캔디, 맥레인(McLane) 등이 포함된다. 벅셔해서웨이는 이를 기반으로 이번 실적 보고에서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39% 증가한 112억 달러에 달하는 성적을 기록했다.
벅셔해서웨이가 보유한 보험 부문은 유나이티드헬스와 같이 미 건강보험에 연계돼 질병 치료에 따라 수시로 보험금을 되돌려주어야 하는 방식이 아닌 재산을 보호할 목적의 손해보험 사업에 집중돼 있다. 가령 주력 계열사인 가이코는 지난해 보험료를 인상하고서 온화한 날씨와 사고율 감소로 깜짝 실적을 냈다. 전체 보험료의 크기와 가입자에게 지급할 보상액이 일정하니 나머지 자금은 고스란히 투자 재원으로 활용할 여력이 생긴다.
벅셔해서웨이는 이런 방식으로 보험 부문에서 책임준비금(float)으로만 지난 분기까지 1680억 달러를 확보했는데, 회사 설립 후 지금까지 이를 저비용의 레버리지를 일으켜 기업을 인수하거나 지분 투자로 수익을 얻는 동력으로 삼아 왔다. 이러한 전략 덕분에 벅셔해서웨이는 196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 환산 19.8% 수익률로 같은 기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연 환산 수익률 10.3%를 웃도는 성과를 냈다. 현금 외에 마땅한 투자 대안을 찾지 못했다던 버핏이지만, 같은 관점에서 투자 화력을 더할 세계 최대 손해보험그룹 처브(Chubb) 지분을 지난해 하반기부터 비공개 매집한 사실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 1분기 기관투자가 13F(Form 13) 공시에서 드러나기도 했다. AI는 핵무기와 같아…“이해하지 못한 것 투자 안 해”
올해 주식 시장을 이끈 인공지능(AI) 열풍에 대해 버핏 회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했다. 그는 “보이스피싱에 제가 관심이 있었다면 역대 최고의 성장 산업이 될 것”이라면서 AI를 이용한 사기가 급증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버핏은 “핵무기를 개발할 때 요정을 병 밖으로 꺼냈다고 했는데, 그러한 힘은 우리를 두렵게 하고 그 요정을 다시 병 속에 넣을 방법도 없다”면서 “AI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버핏은 “우리는 늘 많은 것을 놓쳤고, 매우 큰 기회를 잃어 정말 후회하기도 했다”면서도 “우리가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 걱정할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장의 변동성과 관련해 버핏 회장은 “많은 분들이 매일 또는 매주 가격을 확인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일 주가를 확인하는 사람들은 가격 확인을 잊어버린 사람들이 벌어들인 만큼의 수익을 얻지 못했는데, 그렇게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벅셔해서웨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지난 수십 년간의 주주총회에서 고(故) 찰리 멍거 부회장과 그가 여러 차례 반복한 조언이다. 1995년 당시 멍거 부회장은 “워런, 사람들이 그렇게 자주 틀리지 않았다면 우리는 부자가 되지 못했을 거예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고, 2014년 주총에서도 “저희가 앞서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바보들과 경쟁하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공급이 많았죠”라며 독서를 꾸준히 하고, 상식에 벗어나는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해 왔다.
벅셔해서웨이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도 버핏 회장은 구체적인 방안들을 공개했다.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만 “특정 시장 상황에서는 환매에 상당한 자금을 투입할 수 있다”며 “때때로 큰 기회가 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올해 8월 94세 생일을 앞둔 버핏은 자신의 후계자로 비보험 부문을 이끌어 온 그렉 에이블 부회장을 공식 지명했다. 버핏은 “자본 배분은 그렉에게 맡길 것이며, 그가 사업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며 결정 배경을 밝혔다.
버핏은 “예전에는 다르게 생각했지만, 책임은 CEO가 져야 하고 그러한 결정이 도움이 될 수 있다”면서 “벅셔해서웨이의 자산이 너무 커져 두 사람이 나눠 관리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버핏은 “최고결정권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을 때 사업을 인수하고 주식을 모으는 등 모든 종류의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버핏의 발언에 따라 투자 포트폴리오 매니저 역할을 맡아온 토드 콤스와 테드 웨슬러가 아닌 그렉 에이블이 투자 부문까지 최종 결정권을 갖게 될 전망이다.
한편 버핏 회장은 주주총회 끝 무렵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정책을 언급하며 제롬 파월 Fed 의장을 ‘매우 현명한 사람’으로 추켜세웠다. 미국의 인플레이션이 Fed의 목표치인 2%를 상회하는 기간이 길어지고, 이에 따른 통화 긴축이 지속되는 것에 대한 세간의 불만과는 정반대의 평가다.
그는 “파월 의장이 재정정책을 통제하지 않지만,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해 위장한 탄원서를 보내기도 한다”며 파월 의장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있다고 밝혔다.
버핏은 1980년대 들어 인플레이션을 성공적으로 통제한 폴 볼커 전 Fed 의장의 사례를 들어, 미국의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와 달러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의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도 덧붙였다.
단짝인 찰리 멍거 없이 사실상 홀로 6시간에 걸친 모든 대화 시간을 이어 간 버핏 회장은 “내년에도 꼭 오셨으면 좋겠고, 저도 내년에 참석하면 좋겠습니다”라는 말로 주주총회를 매듭지었다. 10년 넘게 벅셔해서웨이에 투자하며 두 번째 주주총회에 참석한 지나 헤이건(67) 씨는 이러한 버핏의 모습에 대해 “버핏은 일상을 더 낫게 할 훌륭한 조언들을 하고, 미국에 투자하면서 자본주의를 대변해 왔다”며 “찰리 멍거는 떠났지만 그가 함께 설계한 벅셔해서웨이가 더 나은 성과를 이어 갈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마하(미국)=김종학 한국경제TV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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