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지난 세월 기나긴 겨울과 새로운 봄을 반복해 왔다. 성장과 추락을 넘나들며 덩치를 키워 온 가상자산 시장을 이야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 있다. 주요 암호화폐의 창시자부터 투자 업계 거물들까지,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알아본다.
[커버스토리]
정부나 중앙은행, 특정 개인의 통제에 놓이지 않는 ‘독립적 통화 수단’을 구축한다는 게 그가 생각한 비트코인의 개발 취지였다. 이듬해인 2009년 소스 코드와 함께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비트코인은 2010년 말부터 비트코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한다.
베일에 가린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
창시자 사토시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 직접 글을 올리거나 개발자들과 이메일을 주고받는 등 온라인상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보였지만, 돌연 게시물 작성을 중단한 뒤 모습을 감췄다. 사토시가 사라진 후 비트코인의 가치가 오를수록 창시자의 정체를 파헤치기 위한 세간의 추측이 끝없이 제기됐다.
비트코인의 참고 모델로 추정되는 ‘비트골드’ 개념을 만든 닉 재보, 일본인 프로그래머인 도리안 나카모토, 비트코인 첫 사용자인 할 피니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 바 있지만 단순한 ‘설’에 그쳤다. 현재까지도 사토시의 ‘후보자’로 다수의 업계 인사들이 거론될 뿐, 그의 진짜 정체가 밝혀지진 않았다.
비트코인은 사토시의 손에서 탄생했지만, 비트코인이라는 거대한 세계관에 영향을 끼친 인물도 다수 존재한다. 암호학자 아담 백은 1997년 ‘해시캐시’라는 암호화폐 개념을 만들었는데, 이는 비트코인의 핵심인 ‘작업증명 알고리즘’의 모태로 쓰였다. 사토시 또한 자신의 백서에 아담 백의 해시캐시를 참고문헌으로 언급한 바 있다.
20세에 이더리움 플랫폼 개발한 부테린

그가 본격적으로 가상자산 업계에 뛰어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행동으로 옮긴 시기는 2013년이다. 비트코인의 가능성에 깊게 몰두해 있었지만 그 한계점에도 주목했다. 비트코인을 바탕으로 여러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는 스크립팅 언어가 필요하다고 느꼈으나 당시 비트코인 분야에서 그의 주장에 흥미를 느끼는 개발자를 찾기란 어려웠다.
결국 새로운 암호화폐 체계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느꼈다. 그는 학교를 자퇴하고 ‘이더리움’이라는 이름을 내건 암호화폐 백서를 내놓는다. 이후 2014년 초부터 본격적인 이더리움 플랫폼 개발에 착수한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무 살에 불과했다. 부테린은 2014년 신기술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월드 테크놀로지 어워드’에서 정보기술(IT) 소프트웨어 부문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현재 그가 보유한 이더리움 규모를 현금으로 환산하면 수조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가상자산 시장과 관련자들을 향해 각종 ‘쓴소리’를 서슴치 않는 인물로도 손꼽힌다.
부테린과 함께 이더리움 프로젝트를 만드는 데 참여한 초기 멤버로는 미하이 앨리시, 앤서니 디 이오리오, 찰스 호스킨슨, 개빈 우드, 제프리 월크, 조 루빈, 아미르 체트리트 등이 꼽힌다. 이 중 현재까지 이더리움재단에 남아 있는 인물은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부테린을 제외하면 전무하다.
채굴 산업의 거인, 우지한
비트코인 생태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채굴 산업에 기여한 인물도 있다. 중국의 암호화폐 사업가이자 억만장자인 우지한(Jihan Wu)이다. 그가 창업한 암호화폐 채굴장비 제조 업체 비트메인은 채굴 효율성을 크게 높였다는 평을 받는데, 한때 전 세계 가상자산 채굴 분야에서 시장 점유율 80%를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가상자산 생태계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반대로 미국 3대 암호화폐 거래소였던 FTX의 설립자 샘 뱅크먼과 세계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자오창펑 CEO의 경우 각종 법적 문제로 유죄를 선고받거나 수감 후 출소한 바 있다.

비트코인 초강세론 이끈 ‘돈나무 언니’ 캐시 우드

우드는 그간 비트코인 가격이 50만~100만 달러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하며 비트코인의 장기적인 강세론을 꾸준히 펼쳤다. 과거 시장이 조정 국면에 접어들었던 2022년에도 “비트코인은 디지털 금”, “조정이 지나면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발언과 함께 낙관적 스탠스를 유지했다. 이 같은 우드의 강력한 지지는 기관투자가와 시장의 가상자산 투자 심리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는 평이다. 최근에는 비트코인 가격이 2030년까지 상승세를 기록해 150만 달러까지도 돌파할 수 있다는 ‘초강세론’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비트코인 시세가 추락하지 않자 다시 매수에 나서기 시작했고, 현재까지도 비트코인 낙관론의 대표 주자로 시장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는 “비트코인은 어떤 법정화폐보다 더 괜찮은 미래의 통화”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로빈후드 등 블록체인 기반 기업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가상자산 생태계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가 설립한 데이터 분석 업체 마이크로스트래티지는 2020년부터 비트코인에 투자해 회사 자산으로 보유해 왔다. 최근 이 회사의 총 비트코인 보유량은 42만3650개까지 늘었다. 총 매입 비용은 256억 달러, 평균 매입 가격은 6만324달러다. 그는 비트코인 가격이 고점이라는 평가가 잇따르는 시점에도 지속적인 매수를 멈추지 않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그는 “비트코인 가격이 100만 달러에 도달하더라도 매수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공격적인 비트코인 매수 전략은 다른 기업의 자산관리 전략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본 투자 회사 메타플래닛, 미국 의료기술 기업 셈러 사이언티픽 등은 마이크로스트래티지의 투자 방식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비트코인을 적극 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지코인의 아버지, 일론 머스크

이 과정에서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락을 반복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머스크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가상자산을 띄우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그만큼 시장에 혼란 초래하기를 반복했던 인물로 평가받는다.
머스크는 ‘도지코인의 아버지’를 뜻하는 ‘도지파더’라는 별명도 갖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엑스(X·구 트위터)를 통해 도지코인에 대한 선호도를 꾸준히 드러낸 덕이다. 최근에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차기 행정부가 만드는 정부효율부(Department of Government Efficiency·DOGE) 수장으로 지명돼, 자신이 추종하던 암호화폐와 동명의 정부 자문기구를 이끌게 됐다. 규제 철폐, 행정 감축, 비용 절감이라는 세 가지 주요 개혁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초원 기자 cc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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