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날이 한국은 고령화 속도 이상으로 1인 가구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여기에 이혼과 재혼 변수까지 더해지면서 상속 문제도 더욱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늘어나는 갈등 구조 속에서 현명한 대처법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상속플래닝]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 고령 국가인 일본을 이미 추월헀다. 고령인구 증가와 함께 저출산의 이슈가 함께 겹치면서 2017년 고령 사회에 진입한 지 7년 만에 초고령 사회를 목전에 두게 됐다. 우리의 인구구조는 일본과 유사하게 후행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1인 가구의 비중만큼은 고령화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1인 가구 이슈는 연령층별 다양한 원인과 문제가 있어 모두의 지혜가 필요하겠지만, 소위 황혼이혼과 사별에 따른 고령층의 1인 가구화는 자녀들과 상속이라는 새로운 쟁점을 낳고 있다. 통계청 인구동향조사 자료에 따르면 연간 결혼. 이혼 및 재혼 건수는 감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2015년 재혼 건수가 6만4000건에서 2020년 4만6000건, 2022년 4만2000건으로 전체 재혼 건수는 줄고 있으나 각각 재혼인 남녀의 결합비율은 매년 55% 전후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이는 전체적인 인구 고령화와 함께 연령대별로 재혼 전 각자의 재산에 대한 관리와 상속·증여라는 문제를 잉태하고 있다.
이혼과 재혼으로 인한 재산에 대한 분별 관리 등의 문제만큼 재혼을 하지 못하고 노후를 함께 보내야 하는 사실혼 배우자 등 동거인과 자녀들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 구조도 이젠 간과할 수 없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사별 후 동거인에게 상속하려면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하던 박재성(가명) 씨는 가족들의 지지하에 의사가 됐다. 전문의를 마치고 바로 개업을 했던 박 씨는 안정적인 삶을 위해 결혼을 서둘렀다. 결혼과 함께 생활도 안정되고 개업한 병원도 순항했다.
젊은 나이에 자신과 결혼해 슬하에 3명의 자녀를 잘 키워준 아내는 늘 바삐 지냈고 아이들을 훌륭히 키워주어 더할나위 없이 행복했다. 그러나 70이 넘긴 지금 박 씨 곁에 아내는 없다. 급작스러운 사고로 아내와 사별한 지 15년이 넘었다. 사고 당시 자녀들 모두가 성년이 된 후라 아이들과 함께 그나마 아내 자리의 부족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금은 자녀 모두 어엿한 직장과 일가를 이루어 감사하기 그지없다. 오랫동안 홀로 지내던 박 씨는 지금은 새로운 동반자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동거인은 몇 해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남을 이어오다 남은 인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나이가 있으니 가족끼리 모여 작은 언약식 후 신혼여행도 다녀왔다. 하지만 박 씨는 동거인과 법적으로 결혼하지 않았다.
동거인은 자녀가 없지만 박 씨에게는 3명의 자녀가 있어 상속 문제로 인한 가족관계를 깨드리고 싶지 않았다. 박 씨가 운영하는 병원은 꽤 유명해 아직도 잘되고 있고 개인적으로 보유한 자산도 큰 상황이라 상속이나 증여 관계가 문제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박 씨는 지금의 동거인에게는 함께하는 한 지켜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동거인은 박 씨와 10살 연하로 박 씨는 그 약속을 어떻게 지켜줄지 늘 고민했었다. 박 씨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 놓았다. 친구도 박 씨와 같은 상황으로 동거인과 함께 살고 있지만 법적 배우자로 등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정 비율의 재산을 미리 증여를 해야 하는지 등도 고민했지만 증여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면 끝까지 지켜주고 싶은 플랜을 찾고 싶었다. 증여를 한 후 박 씨 사후에 동거인이 치매에 걸린다면 또 동거인의 노후가 불안정하게 되는 경우도 주변 사람들로부터 듣기도 하고 가끔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박 씨 자녀들은 모두 다 동거인을 존중해주고 있다. 하지만 박 씨가 사망을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동거인에게 증여와 상속을 통해 이전된 재산은 혼자인 동거인의 관계로 보아 친정 식구들에게 상속이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고령의 상태에서 친정 식구들이 케어할 수도 있지만 형제들도 고령이 돼 노후를 안정적으로 보내길 바라는 고민도 풀어주고 또 자신의 자녀들과의 관계도 어느 정도 문제 없이 진행되길 바라고 있다.
박 씨의 친구 홍길수(가명) 씨는 박 씨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 박 씨의 친구가 박 씨와 다른 점은 전 배우자와의 사이에 자녀가 있다는 점이다. 사실 박 씨보다 친구의 고민이 더욱 깊어지는 이유다.
홍 씨가 60에 만난 두 사람은 첫만남부터 많은 교감이 있었다. 인정이 많고 누구에게나 따뜻이 대해주는 그녀를 보고 홍 씨는 한눈에 반했다. 하지만 법적 배우자로 올리기엔 부담이 됐다. 지금의 동거인의 자녀들이 나중에 동거인 사망 시에는 그 재산에 대해서만큼은 상속인이 된다는 점이 법적 배우자로 하지 못하는 가장 고민되는 점이었다. 지금의 동거인의 자녀와는 홍 씨도 잘 소통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홍 씨의 재산이 동거인에게 상속되고 나면 동거인의 사후 재산은 홍 씨의 친자녀들이 상속권이 없다는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홍 씨는 동거인이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는 돈을 계산해보았다. 100세로 가정해 생활비, 병원비, 간병비, 주거비를 계산해보니 꽤 많은 돈이 준비돼 있어야 하는데 이를 지금 증여하기엔 여러 염려가 실행을 막고 있다. 하지만 동거인이 생을 다하는 날까지 지켜주고 싶다. 동거인도 언젠가 사망을 하면 남는 재산은 홍 씨 자신의 자녀들에게 이전이 되면 좋겠는데, 동거인에게 재산을 남겨주면서 다시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유언장을 쓰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홍 씨는 신탁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로 헀다. 자신이 보유한 현금과 작은 상가를 신탁하고 자신이 사망하면 동거인에게 상속이 바로 이루어지는 대신에 동거인이 사망할 떄까지 적정한 생활비 등으로 지급된 후 동거인이 사망하면 남겨진 신탁재산은 홍 씨 자신의 자녀들에게 귀속되도록 정해 두었다.
‘재혼을 앞둔 60대 김 씨’의 상조 약속
자녀들 손에 이끌려 유언장을 작성하는 김수남(가명)씨. 와이프와 사별 후 자녀들과 오랜 갈등의 시간을 겪은 끝에 결국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상속 문제를 처리하기로 헀다. 지난해 초 아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상태에서 얼마전 새로이 만난 사람과 재혼을 하겠다고 추석 때 자녀들에게 알렸다. 세 자녀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특히 아내 병 간호로 오랜 시간을 보낸 딸은 더 분노하며 김 씨에게 서운함을 드러냈다. 엄마의 온기가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평생 저축하고 아껴서 어렵사리 마련한 다가구주택 건물에 어찌 새 여자를 들인다는 것이나며 서럽게 울었다. 평소 살갑게 지내던 아들도 연락이 끊기더니 세 자녀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을 찾아오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식들은 재혼하겠다는 김 씨의 결심을 철회하라고 독촉했다.
자식들과 갈등이 생기고 관계가 멀어지는 이야기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거라 생각했는데 급속히 얼어붙어 가는 관계는 회복하기 어렵다고 느껴졌다. 재혼 시기를 좀 늦추고 친구처럼 지내보겠다는 설득도 먹히지 않았고 결국 자녀들은 혼인신고를 하지도 말고 변두리지만 짓고 나서 그토록 기뻐했던 다가구 건물은 미리 자녀들에게 넘기는 약조를 하라는 요구를 하고 나왔다.
김 씨는 결국 오늘 유언대용신탁 계약을 했다. 자신이 재혼을 하더라도 배우자와 함께 일궜던 재산은 자녀들을 위해 신탁하기로 결심했다. 세 자녀들이 모두 수탁자이면서 동시에 사후수익자로서 귀속 주체가 되는 가족신탁으로 설계했다. 자신에게 유고가 발생하면 신탁한 부동산은 세 자녀를 수익자로 지정한 신탁 계약에 의해 이전될 것이다. 허탈한 마음에 눈물을 흘렸지만 한편으론 먼저 떠난 배우자를 위해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김 씨는 이왕 자녀들에게 가족의 가장 큰 재산의 분배를 설계했으니 자신이 운영하는 개인사업체의 상가와 주택에 대해서도 재혼할 법적 배우자와 자녀들 사이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정리해 둘 필요를 느꼈다. 자신도 지금은 건강하지만 언젠가 건강이 안 좋아질 때를 대비해서 미리 유언장을 작성해 노후를 대비하고 재혼할 배우자를 위한 플랜도 구체화할 예정이다.
배정식 법무법인 화우 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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