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과 강북 대표 상권인 신사동 세로수길과 연트럴파크 상권의 공실이 늘어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금리인상 여파에도 건재했던 핫플레이스 상권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닥친 이유는 무엇일까.

[부동산 이슈]
‘핫플’ 속 새 건물은 왜 비어 있나…대박 건물주 공식 옛말
지난 3~4년간 코로나19 팬데믹은 물론 금리 인상 여파에도 건재했던 서울 강남· 강북 대표 상권 ‘신사동 세로수길’과 ‘연트럴파크’가 흔들리고 있다. 당장 공실이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이들 상권 역시 불황의 조짐은 피하기 어려운 분위기다.

공실의 양상도 평소와 다르다. 통상 임차인들은 시설이 노후화되지 않은 새 건물을 선호하는데, 공실이 난 근린상가 대부분이 최근 신축 또는 리모델링을 거친 새 건물이다. 공사가 끝난 새 건물은 건물주 눈높이에 맞는 임차인을 구할 때까지 비어 있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부동산 관계자들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신규 창업할 임차인이 씨가 말랐다”고 입을 모은다.

자연스레 해당 지역에 신규 투자한 건물주들의 손실도 불가피해졌다. 투자금만큼 비싼 임대료를 받기가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버티고 있는 기존 상가 임차인들이 영업을 중단한다면 공실 확산으로 인한 부동산 시세 하락은 더 본격화할 전망이다.
‘핫플’ 속 새 건물은 왜 비어 있나…대박 건물주 공식 옛말
쪼그라든 매출, 신규 창업자 사라져

2월 11일 오전, 강남 ‘핫플레이스’ 세로수길 상권에 변화의 기미가 감지되고 있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상징 신사동 가로수길이 텅텅 비어 가는 동안, 차별화에 성공하며 급성장했던 곳이다.

세로수길에는 지난해 상반기 찾아보기 어렵던 1~2층 상가 공실이 불과 1년여 만에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통으로 공실 상태인 한 건물 앞에서 만난 A씨는 “요즘 영업하기에 분위기가 너무 안 좋다”면서 “이 건물도 다 지어진 지 몇 달째 비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공실 없기로 유명하던 마포구 연남동도 마찬가지다. 골목상권 속 말끔한 건물 통창에는 임대문의 연락처와 공인중개사무소 상호명이 적힌 현수막 등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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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동 세로수길과 연남동 일대는 ‘경리단길’ 같이 유행이 변하며 하락세를 탄 곳과 여러모로 차별화한 상권이다. 각각 3호선·신분당선 신사역과 2호선·공항철도·경의중앙선이 정차하는 홍대입구역 역세권으로 유동인구가 집중되기 쉽다. 위치상 관광객부터 인근 직장인, 대학생 수요까지 자연스럽게 흡수할 수 있다.

상권 특성 또한 젊은 세대 소비 트렌드에 맞았다. 대형 상가 위주인 가로수길이나 명동, 강남역 등 전통적인 번화가에 비해 중소형 건물 및 상가 위주였기 때문이다. 세로수길과 연남동은 대기업 프렌차이즈 브랜드 대신 MZ(밀레니얼+Z) 세대가 선호하는 ‘힙한’ 가게들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세로수길은 아더에러, 탬버린즈 같은 특색 있는 브랜드나 개인 상점들로 채워졌다. ‘홍대 상권’의 일부인 연남동도 점차 개인 식당, 디저트 카페가 들어서며 젊은 층이 선호하는 만남의 장소로 자리 잡았다. 2015년 개장한 경의선숲길이라는 콘텐츠가 생기며 데이트 코스로도 인기가 높아졌다. 몇 년 사이 이들 상권에 창업하려는 상인들은 부지런히 가게를 구하러 다녔다.
‘핫플’ 속 새 건물은 왜 비어 있나…대박 건물주 공식 옛말
그러나 최근 들어 흐름이 180도 달라졌다.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면서 ‘반짝’ 했던 엔데믹 효과도 끝이 나고 있다. 서울시 상권 분석 통계를 보면 2024년 3분기 마포구 연남동 점포별 평균 매출은 505만 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9만 원 줄었고 이 기간 점포 수와 유동인구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신사동 점포의 평균 매출은 1946만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동기 대비 136만 원 감소한 것으로 점포 수는 21개, 유동인구는 헥타르(ha) 당 1789명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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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권 분석 플랫폼 오픈업에 따르면 2024년 12월 연남동 상권 전체 매출은 21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5.59% 하락했다. 같은 기간 다른 ‘범홍대 상권’인 서교동, 합정동 매출도 각각 8.29, 7.5% 감소했다. 신사동 상권 매출은 1030억 원으로 1.25% 올랐지만, 인근 현대백화점 압구정본점 연말 매출과 아파트 상권 수익 등이 포함된 결과다.

지난해 말 비상계엄 이후 불거진 국내 정치 갈등과 트럼프 2기 행정부 임기 시작 등 각종 변수로 인해 올해 들어 소비심리는 더 싸늘하게 식었다는 평이다. 연남동에서는 몇 년간 유명세를 타던 한 디저트 맛집의 대기가 주말에도 크게 줄었다. 신사동에서도 인기 커피숍 손님은 감소한 반면, 인근 직장인을 대상으로 저가에 커피를 파는 카페에는 손님이 몰리고 있었다.

과잉 공급된 상가, 임대료 제자리

상권 매출이 줄면서 올해 들어 신규 임차 수요는 거의 사라진 상태다. 기존 임차인들은 그럭저럭 수익을 내며 장사를 하고는 있지만, 경기가 급격히 악화하자 새로 인테리어 등에 투자해 가게를 창업할 임차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이 같은 현상으로 인해 새로 창업하거나 이전, 확장하는 가게가 입점해야 하는 신축 건물이 집중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2023년까지만 해도 서울뿐 아니라 전국 투자자들이 소위 ‘뜨는 상권’에 꼬마빌딩 투자를 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벨류맵 사용자가 지난해 설정한 관심 부동산 건수를 보면, 상업업무시설의 경우 95.91%가 서울에 위치했다. 자치구별로 보면 가장 많은 5961건이 강남구, 2598건이 서초구에 소재했고 2503건을 기록한 마포구가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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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망 상권에 가격 접근성이 높은 소규모 근린상가 건물이 증가했던 것도 원인이다. 오래된 주택가였던 지역이 감각적인 상권으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이 대거 소규모 근린상가 건물로 개조됐다. 대체로 집값이 오르면 손바뀜이 되고, 새 건물주가 리모델링 등을 통한 용도 변경으로 조성한 상가 건물에 임차인을 들이는 방식으로 건물 가치를 높이고 시세차익을 누리는 것이 일종의 투자 공식이었다.

“연예인이 꼬마빌딩에 투자해 ‘억대’ 시세차익을 올렸다”는 내용이 부동산 뉴스를 채우기도 했다. 신사동은 배우 류승범이 상가주택에 투자해 건물 가치가 몇 배로 커진 사실이 알려졌다. 걸그룹 출신 가수 소유(본명 강지현)도 연남동 단독주택을 사들여 꼬마빌딩으로 재탄생시킨 뒤 16억 원 시세차익을 남겼다.

2022년 하반기 금리 인상 이후 출렁이던 부동산 경기와는 상관없이 계속 오르던 서울 번화가 땅값도 투자 심리를 부채질했다. 이로 인해 신사역 인근 건물 가격은 부지면적 기준 3.3㎡(평)당 2억 원을 호가했다. 연남동에서도 3.3㎡당 1억 원이 넘게 거래된 사례가 나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근린상가가 과잉 공급됐다. 건물주가 건물을 매수해서 건축 행위를 진행하는 동안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건물주는 부동산 매수대금 및 건축 행위에 투입된 비용, 금융 비용 등을 새 건물 임대료에 반영하려 했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시장에 나오는 상가가 많아 결과적으로 높은 임대료에 임차인을 구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성수동 연무장길, 압구정 로데오, 용산 용리단길 등 서울 시내에 ‘핫플’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대체재도 많아졌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 따르면 신사역과 동교·연남 상권은 지난해 초부터 공실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공실률이 낮던 소규모 상가조차 임대료가 소폭 상승하던 중에도 빈 곳이 생기기 시작했다.

2022년까지 공실이 제로(0)에 가깝던 신사와 연남 상권은 지난해부터 공실이 발생하고 있다. ㎡당 임대료가 7만 원을 넘겼던 신사역 상권에선 7% 내외, ㎡당 5만2000원 정도로 임대료가 이보다 저렴한 동교·연남 상권은 공실률이 2.4%로 높아졌다.
‘핫플’ 속 새 건물은 왜 비어 있나…대박 건물주 공식 옛말
사라진 임대 수익, 이자만 불어나

여기에 경기 불황까지 겹치며 임대료 상승세와 함께 건물 호가도 주춤하고 있다. ‘배짱’을 부리며 호가를 올리던 기존 건물주들도 “가격 조정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도 오던 매수 문의가 ‘뚝’ 끊기며 거래가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연남동 소재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기존에는 다가구주택을 리모델링하면 새 임차인을 받는 데 무리가 없었는데 요즘은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면서 “새 건물 임대를 맞춰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공실이 늘면서 건물 매수 문의도 끊긴 상태”라고 덧붙였다.

주택 임대차 시장은 다르다. 인근 다른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주택을 자꾸 근린상가로 바꿔놔서 상가 임대료는 오르기가 힘든 반면 직장인이나 학생들이 찾는 자취방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건물주의 손실도 불어나고 있다. 새 건물주 대부분은 부동산이 한창 비쌀 때 저렴한 이자에 대출을 끼고 건물을 사들였다. 그런데 2년 사이 금리가 많이 올랐다. 최근에는 금리가 다소 하락했다고 하지만, 약 80억 원 상당의 건물을 매수하며 50%가량 담보대출을 받았을 때 이자 비용은 매월 1100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이 공실로 남아 있으면 이 같은 비용은 전액 건물주가 부담해야 한다.

신사역 인근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근린상가를 리모델링한 건물주들 대부분이 2~3년 사이 비싼 가격에 건물을 사들였다”면서 “새 건물주들은 전문직이나 자산가라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지만 이자 비용이나 건축비 등을 따져보면 부담이 큰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민보름 한경비즈니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