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테크 기업들이 반등하고 있다. 딥시크의 부상은 중국 주식시장에 대한 재평가로 이어졌다. ‘투자 부적격’에서 ‘긍정적 전망’으로 중국 시장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미국의 M7에 비견되는 중국의 ‘테크 거인’들이 있다.
[커버스토리]


지난해 글로벌 주식 시장의 리더는 인공지능(AI)과 미국 빅테크 기업이었다. 올해 들어 이들의 주가 변동성이 심화되고 있다. 그 자리를 대신한 건 중국 테크 기업들이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올해 중국 테크 기업들은 3월 7일 기준 주가 상승으로 시가총액이 4390억 달러 증가했다. 소시에테제네랄이 선정한 ‘7대 거인(7 Titan)’ 주식은 올해 40% 넘게 급등했다. 반면 같은 기간 미국 M7은 10% 하락했다.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메이퇀 등 주요 기술주로 구성돼 ‘중국판 나스닥’으로 불리는 홍콩 항셍테크 지수는 약 30% 넘게 반면, 나스닥 지수는 10% 가까이 하락하며 조정 국면 진입을 앞두고 있다.




유럽 투자사인 유니온 방케어 프리베의 링 베이선 상무는 “중국 기술주가 미국 기술주 대비 우수한 성과를 보일 수 있는 필수 요인들이 갖춰졌다”며 “미국 기술주는 지난 2년간 밸류에이션이 급등했으며, 현재 실적 부진과 거시경제적 우려로 매도세가 촉발되는 상황이 미국에서 유럽과 중국으로의 자금 이동을 촉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AI 강국이 된 중국…딥시크가 던진 충격
최근 중국 테크 기업들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중국 AI의 구조적 성장이 자리하고 있다. 올해 중국 시장의 주도 테마는 단연 AI 관련 테크 기업들이다. ‘딥시크 쇼크’의 연장선이다.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는 지난해 12월, 올 1월 잇따라 ‘V3’, ‘R1’ 모델을 출시하며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딥시크는 미국의 기술 제재에도 불구하고 소프트웨어 혁신을 통해 낮은 사양의 칩으로도 저비용, 고효율의 AI 모델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딥시크의 등장으로 중국이 AI 기술에서 미국 수준을 따라잡으려면 수년 또는 그 이상 걸릴 것이란 기존의 통념을 순식간에 뒤집었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딥시크의 출현은 중국의 여러 분야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며 “AI 응용 확대에 따라 신생 산업 부상과 기존 산업의 생산성 향상이 기대되고 있으며, 2021년 2월 앤트파이낸셜의 기업공개(IPO) 중단 이후 크게 위축됐던 중국의 테크 생태계에 새로운 동력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동연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알리바바, 텐센트, 바이두의 AI 활용 증가에 따라 클라우드 부문 실적이 개선된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중국 빅테크는 AI 스타트업에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AI 생태계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고 말했다. 특히 ‘AI 응용’에 있어서만큼은 중국의 경쟁력이 돋보이고 있다. 이 애널리스트는 “AI 하드웨어 기술력이 미국에 뒤지는 것과 달리 소프트웨어 측면에서는 인력풀이 우수하다”며 “자율주행과 로봇, 그리고 AI 에이전트 부문 활용이 늘어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규제에서 지원으로…중국의 정책 변화
중국 정부의 정책 지원도 큰 역할을 했다. AI의 경우 중국은 국가 핵심 경쟁 산업으로 지정하고 육성한 지 최소 10년 이상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5년에 발표한 ‘중국제조 2025’ 국가 정책을 비롯한 여러 산업 정책에서 이미 AI를 비롯한 첨단기술에 대한 육성 및 투자를 천명하고 10년 이상 꾸준하게 육성하는 중이다. 대규모 자금 지원뿐 아니라, 자국 인재 육성 및 글로벌 인재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런 점에서 딥시크가 보여준 기술력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시각도 있다. <중국 테크 기업의 모든 것>의 저자인 고성호 코트라 차장은 “평소 중국 기술 발전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에게는 중국 테크 기업의 급부상이란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는 느낌”이라며 “중국 AI 기업도 이미 5000여 개에 달할 정도로 저변이 넓고 딥시크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공모펀드를 중심으로 중국으로의 자금 유입이 눈에 띄게 늘어난 시점은 지난해 9월 이후다. 당시 중국 정부가 경기부양책을 발표하면서 그 효과로 올해 1~2월 실물 지표가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 경기부양책보다 더 의미 있는 이벤트는 올해 2월 17일 열린 민영 기업 좌담회다.
중국의 2025년 경제 정책 기조는 ‘내수 올인’으로 5%대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5.6.7.8.9(세수의 50%·GDP의 60%·기술 혁신의 70%·고용의 80%·기업 수의 90%를 민영 기업이 담당) 경제’라고 하는 중국 민영 기업의 협조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알리바바, 텐센트, 샤오미, BYD 등 다수의 중국 민영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좌담회를 개최하며 민간 기업의 성장을 강조했다. 시 주석이 주요 민영 기업인들과 가진 이례적인 회동은, 중국의 민간 기업 기조가 바뀌었을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되며 주가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20년 10월 정부 비판 발언으로 시 주석의 분노를 사면서 한때 ‘망명설’까지 나왔던 알리바바의 창업자 마윈의 등장이 큰 화제가 됐다. 중국 정부가 기업 때리기를 멈추고 빅테크 지지를 강화한다는 정책적 신호라며 시장은 환영했다.


또한 지난 3월 6일 양회(전국인민대표회의·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에서 플랫폼 기업의 건전한 성장 지원이 언급되면서, 빅테크 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정책 환경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실제로 이번 양회에서 내수 확대를 여전히 최우선 과제로 제시하면서도 산업 부문에서는 신성장 산업과 첨단 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을 강조하는 기조를 보였다.
중국판 M7, 질주 이어질까
올해 중국 시장의 주도 테마는 AI 기술력이 높은 테크 기업들로 요약된다. 텐센트, 알리바바, 샤오미, BYD, 메이퇀, SMIC, 레노버 등 중국판 M7이 여기에 속한다. 알리바바, 샤오미, SMIC 주가는 올해 들어 70%가량 상승했다.
중국판 M7은 2023년부터 항셍테크 지수를 계속 상회했다. 올해에만 중국 M7 지수는 연초 대비 31% 상승하며 같은 기간 미국 M7의 상승률인 4%보다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올해 연간 매출액과 영업이익 이익률도 중국 M7이 미국 M7을 넘어설 전망이다. 최설화 애널리스트는 “미국 기업의 절대 이익 규모가 중국 기업을 월등히 앞서고 있지만, 중국 기업의 빠른 AI 응용 확산으로 미국과의 기술 격차를 축소해 가는 과정들이 중국 M7의 중장기 주가 상승을 견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대표주자이지만 최근에는 AI에 역량을 모으고 있다. 알리바바는 향후 3년 동안 데이터센터를 비롯한 AI 인프라에 3800억 위안(약 76조 원)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알리바바는 지난 3월 6일 자체 거대언어모델(LLM)인 ‘QwQ-32B’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했다. 알리바바는 딥시크 ‘R1’ 대비 성능은 비슷하고, 가성비는 높은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홍콩 증시에서 알리바바 주가는 장중 7% 넘게 상승했다.

전 세계적으로 AI 경쟁이 촉발된 가운데, 중국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는 AI 응용으로 꼽힌다. AI의 학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데이터 축적’이 바탕이 돼야 한다. 이때 개인정보를 비롯한 민감한 데이터 수집에서도 중국은 강점을 가질 수 있다. AI 응용에서도 자율주행, 휴머노이드 등에 기대감이 쏠리고 있다. 샤오미와 BYD가 이 부분에 역량을 모으는 중이다.
AI 하드웨어 쪽에서는 반도체를 생산하는 SMIC와 서버 및 PC 제조 기업인 레노버가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박주영 키움증권 책임연구원은 “미국 증시가 불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의 정책 기조 전환에 따른 유동성 확대 구간에서는 중국판 M7이 단기적으로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중국 주식은 현재까지 테크와 논테크로 양극화돼 있으며, 향후 시장 흐름은 경기 회복 여부가 결정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4월 말 열리는 정치국 회의가 주요 분기점으로, 4~5월까지는 테크 중심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며 “경기 회복이 되지 않고 유동성 모멘텀만 지속되면 테크 쏠림현상이 하반기까지는 이어지며, 만약 경기 회복이 동반된다면 전반적인 중국 증시의 부활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최설화 메리츠증권 애널리스트는 "증시가 급등한 측면이 있지만,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며 "투자 전략 측면에서 미국과 중국을 8대2 정도로 분산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개별 종목으로는 알리바바와 샤오미를 우선적으로 추천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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