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존경하는 선배 한 분을 만났다. 얘기 도중 비로소 알게 된 70이 훌쩍 넘은 선배의 개인사는 슬펐다.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 중 하나였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 출신의 모친과 가난했지만 총명했던 부친이 동경 유학 중 얻은 아들이었다. 비극은 광복 정국과 더불어 시작됐다. “일본에서 좌익 사상에 심취한 부모님이 6·26전쟁이 터지자 나만 남겨두고 월북해 버린거야!” 외할머니 밑에서 자라던 선배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자 고아원에 맡겨졌다. 천신만고 끝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좌제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지 못했다. “도대체 사상이 뭐고 이념이 뭐길래 제 자식도 버리게 만드는가?” 그는 부모님을 만나면 꼭 이 말을 물어보겠다고 결심했다.

유비, 겁쟁이 흉내로 조조를 안심시켜
그런데 유학파 인텔리 부모님과 논쟁하려면 그들만큼의 지식을 갖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를 악물고 공부했다. 동기들보다 열 살 더 많은 나이에 명문대를 졸업했다. 하지만 100세가 넘었을 부모님을 아직 만나지 못했고 생사도 모른다. 그는 아직도 부모님을 기다리고 있다. 70평생은 그에게 한 맺힌 기다림의 세월이었다.
따지고 보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인생사가 기다림 아닌 것이 없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구약과 신약이라는 두 개의 ‘약속’이 성취되기를 갈망하는 기다림의 역사다. ‘그날이 속히 오리라!’는 믿음으로 메시아의 출현을 간구하는 종교인들과 달리 기다리는 ‘새로운 세상’이 내세가 아니라 지금 당장 오기를 열망하며 들고일어나는 사람들도 있다. 혁명과 반란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성공하면 충신이고 실패하면 역적이다. ‘삼국지’ 시대에 “푸른 하늘이 망했으니 누런 하늘이 일어선다!”는 구호를 내세우고 난을 일으킨 황건의 무리. ‘누런 하늘(黃天)’은 그들이 기다리던 새 세상을 상징했다. 기다리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자연히 그들은 도적(황건적)이라고 불리게 됐다. 홍건적의 무리였던 주원장이 명나라 태조가 된 것과 대조적이다.
‘삼국지’ 시대를 풍미하던 군웅 중에도 ‘기다림의 미학’을 실천한 이들이 있었다. 유비부터 살펴보자. 황제의 위세가 땅에 떨어졌고 몰락한 황가의 자손인 유비도 무력했다. 반면 헌제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하던 조조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유비는 ‘조조를 죽이고 사직을 구하라!’는 헌제의 밀서를 받은 동승의 조조 암살 작전에 가담했다가 실패했던 터라 더욱 입지가 좁았다.
천둥벼락이 칠 때는 바짝 엎드려 이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유비는 진짜로 그랬다. 유비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경계의 눈초리를 풀지 않던 조조가 물었다. “요즘 유비는 뭘 하고 있는가?” “유비는 채소를 가꾸며 하루 종일 밭에서 살고 있습니다.” “모셔 오너라! 내 유비를 위해 위로연을 베풀겠다.” 유비와 함께 대작하던 조조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현덕공은 지금 천하에서 가장 뛰어난 영웅이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유비는 한껏 몸을 사리며 원소·손책·유표 등의 이름을 댔다.
조바심이 난 조조가 탁자를 탁 치며 말했다. “아니오! 천하에 영웅은 바로 그대와 나, 둘밖에 없소!” 속내를 들킨 유비가 당혹해 하는 찰나 하늘에서 천둥이 쳤다. 유비는 깜짝 놀라 젓가락을 떨어뜨리며 주안상 밑으로 코를 박고 부들부들 떨었다. 조조는 유비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잠룡인 줄 알았더니 천둥소리에 놀라는 겁쟁이로구나!’ 농사나 짓는 척하며 때를 기다리며 몸을 낮추고 있던 유비의 탁월한 연기였음은 말할 나위가 없다.
황제를 등에 업고 전횡을 일삼던 포악한 리더로만 알려진 동탁도 뜻밖에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자였다. 나관중의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동탁은 무식하고 잔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조조가 황제를 옆에 끼고 천하를 호령한 것은 사실 동탁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고 큰 공을 세워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내렸지만 동탁은 그때마다 고사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영제가 죽고 후임 황제의 외숙부로 실권을 잡았던 대장군 하진이 환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동탁은 그제야 행동에 나섰다. 무주공산이 된 황실에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무혈 입성한 것이다.

위나라를 하루아침에 집어삼킨 사마의
‘삼국지’ 시대 인물 중에서 기다림의 미학을 가장 잘 실천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삼국지 최후의 승자’ 사마의다. 혹자는 사마의를 일러 제갈량과 조조를 합친 것보다 더 지략이 뛰어난 리더라고 평하기도 한다. 사마의는 능청스러운 연기의 달인이기도 했다.
조조는 단번에 사마의의 야망을 알아챘다. 사마의도 이를 알고 더욱 신중하게 처신했다. 조조가 벼슬을 내려도 병을 핑계로 출사하지 않았다. 집 안의 하인들조차 속을 정도로 사마의의 아픈 연기는 탁월했다. 어느 날 뒤뜰에 책을 늘어놓고 말리던 중 소나기가 내리자 책을 무척 아끼던 사마의는 버선발로 달려 나가 책을 거둬 왔다. 이때 하녀 하나가 이를 목격했다. 사마의 부부는 그 자리에서 하녀를 죽여 보안을 유지했다. 그의 치밀하고 잔혹한 성격을 잘 보여주는 에피소드다.
조조가 죽고 그의 아들 조비가 대권을 잡자 사마의는 조비의 신임을 바탕으로 날개를 달았다. 조예를 거쳐 조방이 황권을 넘겨받았을 때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당시 실권자 조상이 어린 황제를 모시고 성을 나가 조예의 능묘인 고평릉에 제를 올리고 사냥도 하는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낙양 성문을 굳게 닫았다. 이를 ‘고평릉의 변’이라고 한다. 조조가 그렇게 공들여 세운 위나라를 사마의는 하루아침에 집어삼킨 것이다.
사족 : 유비·동탁·사마의처럼 자신의 재능을 감추고 참고 기다리는 작전을 ‘도광양회(韜光養晦)’라고 한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남몰래 힘을 기른다는 뜻이다. 미소 양국이 냉전 체제를 구축해 막강한 힘을 자랑할 때 등소평이 구사한 국가 전략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양강 체제로 들어선 지금 시진핑이 구사하는 대국굴기 전략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고도(Godot)’와 같은 부모님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는 선배. 그를 보며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주인공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을 떠올렸다. 노선배의 애달픈 처지가 눈물겨웠고 가슴 아팠다. 박학다식과 상당한 필력은 그의 이마에 깊이 새겨진 주름과 듬성듬성한 흰머리와 함께 그의 기다림의 깊이와 넓이를 대변해 주는 듯하다.
김진국 칼럼니스트, ‘재벌총수는 왜 폐암에 잘 걸릴까?’ 저자
‘그날은 오리라’…때를 기다린 영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