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전 세계 정상들이 유엔본부에 모여 ‘2030 지속 가능 발전 의제’를 채택했다. 우리가 언론이나 방송 매체 등을 통해 한번쯤은 들어봤을 ‘지속 가능 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의 개념은 1987년 ‘브룬트란트 보고서’의 ‘우리 공통의 미래’에서 처음 제시됐다.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공식적으로 채택된 이후 2000년 새천년 개발 목표(MDGs : Millennium Development Goals), 리우+20 등을 거치면서 해당 개념은 수사(rhetoric)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실제(reality)로의 이행에 초점을 맞춰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해당 의제는 세계 각국의 정책가와 비정부기구(NGO),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 조율과 논의를 거쳐 17개의 지속 가능 발전 목표(SDGs :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국제적·국가별로 정량화해 달성돼야 하는 총 169개 이행 목표로 구성된다.
유엔이 새롭게 출범시킨 2030 의제는 전 지구적 차원의 인류 존립을 위협하는 다양한 이슈들에 대한 공통의 인식을 제공하고 이를 해결해 나가기 위한 글로벌 행동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막론하고 세계 모든 나라의 모든 이해관계인들의 책임과 역할을 정의하고 권고하는 매우 광의의 보편적 개념이다. ‘새천년 개발 목표’의 확대판
지난해 종료된 MDGs는 개발도상국들의 비참한 현실을 해소하기 위해 개발 측면을 지원하는 성격이 강했다. MDGs가 기본적으로 개도국을 대상으로 설정된 목표였다면 SDGs는 그 적용 범위가 선진국까지 확대된 것이다.
더 나아가 일부 계층만 목표로 하지 않고 사회 전 구성원을 고려해 설정됐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과거 MDGs가 인류 보편적 이슈를 두루 다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를 유발하는 근본적 사안(불평등, 양질의 일자리 부족, 안전 문제 등)에 대한 규명이나 해결에 대한 세부 목표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돼 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SDGs에서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목표가 설정됐다고 볼 수 있다.
또한 SDGs는 전 세계 각국 정부들이 협상을 통해 채택했지만 향후 성공적 이행을 위해서는 다양한 이해관계인(정부·기업·NGO 등)의 역할과 책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기업의 역할과 책임이 크다. 기본적으로 SDGs는 기업의 경영 활동 전반에 혁신과 창의적 활동을 통한 2030 의제와의 접목을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최근 다국적 컨설팅 업체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는 2015년 7월부터 8월까지 세계 약 90개국 기업 임직원 1000여 명과 30개국 일반 시민 약 2000명을 대상으로 ‘기업과 시민들의 SDGs 인식도 및 이에 대한 준비도’에 대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이 중 기업의 업종 특성에 따른 영향력을 조사했는데 업종별로 연관성이 높은 SDGs에 대한 우선순위에 다소 차이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 52%, 이미 관심 가져
화학·통신·에너지·금융에서 소비재 산업에 이르는 다양한 업종을 대상으로 조사했는데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상위 등급은 ‘일자리와 경제성장’, ‘기후변화 대응’, ‘책임 있는 생산과 소비’의 순서로 조사됐다. 이들은 주로 기업이 친근하게 생각하는 이슈들이다.
관심도가 가장 떨어지는 이슈는 ‘빈곤 퇴치’나 ‘불평등 해소’, ‘생태계 보호’, ‘해양자원의 보존 및 지속 가능한 이용’ 등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향후 한국 기업은 다수의 SDGs를 백화점 식으로 추구하는 대신 기업과 업종 특성에 맞는 SDGs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2030 의제로 대표되는 사회 현안의 ‘사회적 영향’과 추진 기업의 ‘사업적 역량’에 대해 면밀히 비교 검토해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글로벌이나 지역별 사회 현안의 사회적 영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2030 의제와 함께 지속 가능 발전과 지속 가능 경영의 글로벌 스탠더드인 ISO-26000이나 지속 가능성 보고서 가이드라인인 GRI, 세계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WBCSD)의 ‘비전 2050’ 등을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업의 사업적 영향에서는 SDGs의 해당 이슈에 대한 관련 정책 및 전략 보유 여부, 기존 프로그램의 유무 및 성숙도, 기업 핵심 역량과의 연계성, 다양한 이해관계인들의 참여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평가해야 한다.
PwC 설문에 따르면 글로벌 기업의 52%가 이미 고유 사업 분야와 연관이 있는 SDGs의 내용을 파악 중이며 35%가 기존 사회적 책임 활동(CSR)의 일환으로 추진 중이고 34%는 SDGs 달성에 기여할 구체적 프로젝트 계획을 수립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벌써 많은 글로벌 기업들은 2030 의제를 인지한 후 구체적인 행동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 주목해야 할 점은 실제 기업 경영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SDGs를 설정한 후 이에 대한 이행 점검과 성과 측정이 가능한 수준으로 실행력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델은 ‘경제성장과 일자리 증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두 가지 측면의 사업 활동을 추진 중에 있다.
첫째,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지원이다. 미국·영국·캐나다·프랑스·이스라엘·네덜란드 등에 ‘기업가 센터(Center for Entrepreneurs)’를 설립해 스타트업 기업에 델과의 비즈니스 기회 및 최신 기술과 장비·노하우·교육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둘째, 여성 기업에 대한 지원이다. 여성 기업가를 위한 네트워크(Dell Women’s Entrepreneur Network)를 구축해 매년 회의를 개최하고 여성 기업가가 양성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31개 국가의 여성 기업 환경에 대한 스코어카드를 측정해 공개하고 있다.
그러면 향후 한국 기업들은 어떻게 체계적으로 SDGs를 기업 경영에 접목하고 활용해야 할까. 이에 대해 여러 국제 기관과 연구소 및 컨설팅 회사 등이 기업 차원의 효과적 SDGs 대응을 지원할 다양한 방법론 개발 등의 활동이 진행 중이다.
방법론별로 기업의 SDGs 대응 전략 마련을 위한 접근 방식은 상이하지만 공통적으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기업의 SDGs 대응 우선순위 설정, 기업 SDGs 활동 분야 도출, SDGs를 반영한 기업 전략 마련, 성과 관리 및 커뮤니케이션 과정 수행 등이다. 기업 특성 고려해 전략적 접근 필요
새롭게 채택된 2030 의제는 모든 인류가 지향해야 하는 공통의 목표로, 과거 MDGs보다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확대되고 구체화됐다. 이에 따라 지구상의 모든 플레이어들의 참여가 요구되며 특히 커져 가는 기업의 위상에 따른 역할과 책임을 고민해야 할 시점에 있다.
PwC 조사에 따르면 SDGs에 대한 해외 기업들의 인지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나 한국 기업들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에 있고 향후 SDGs를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기업 특성과 업의 특성을 고려해 연관성이 가장 높은 영역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전략 수립 및 프로그램을 설립해야 한다.
또한 SDGs를 새로운 사업 기회로 인식하고 이에 부합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의 노력이 요구된다.
박재흠 삼일회계법인(PwC) 지속가능경영·기후변화서비스 리더 이사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