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면세점 판매수량 제한 파장]
불법 유통 차단 목적
유통업계 “공항서 받게 하면 될 문제를…쇼핑 위축 우려”
유통업계 "면세점 판매수량 제한은 실효성 없는 탁상행정"
(사진) 외국 관광객들이 서울 소공동 롯데면세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모습.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관세청의 면세점 1인당 판매 수량 제한 지침에 유통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관세청과 롯데·신라·신세계 등 유통업계에 따르면 각 면세점은 지난 7월 11일부터 1인당 상품 판매 수량을 제한하는 지침을 관세청으로부터 하달 받고 일부 제품에 대해 판매 수량 제한을 시행 중이다.

지침에 따르면 출국일 기준으로 가방과 시계는 합산해 10개 이내, 화장품과 향수는 50개 이내로 면세품 구매 수량을 제한하고 있다.

◆ 화장품 50개 시계 10개까지 허용

이에 대해 유통업계는 이번 판매 제한 조치가 일부 중국 보따리상들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취지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문제점 해결 가능성이 낮고 오히려 국내 쇼핑 관광 환경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관세청이 수량을 제한한 것은 보따리상 등을 통해 면세품이 국내로 불법 유통될 가능성을 막는 한편 수량 부족으로 일반 여행자들이 면세품을 구입하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일부 조직적으로 꾸며진 일부 보따리상들이 중국인 학생이나 관광객 등을 동원해 면세점을 돌며 면세품을 사재기해 수수료를 제한 뒤 중국 및 국내에 유통해 유통시장 구조를 혼탁하게 만들었다.

외국인은 구매 금액에 제한이 없는 데다 주류·담배를 제외한 국산품은 시내 면세점에서 직접 받아갈 수 있다는 허점을 노린 것이다. 중국인에게 높은 인기를 끄는 국산 화장품과 향수 그리고 시계 등이 주요 타깃이 됐다.

하지만 구매 수량 제한이 이들 보따리상의 불법과 편법 행위를 막기에는 어렵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방법적으로는 우선 대리 구매가 문제인데, 1인당 면세점 내 구매 수량을 제한해도 지금보다 대리 구매인을 더 늘려 제품을 구입하면 문제될 게 없기 때문이다.

서울 시내 A 면세점 관계자는 “관세청이 내놓은 면세점 판매 수량 제한으로는 작정하고 사재기하는 보따리상을 막을 수 없다”며 “오히려 순수 관광객들의 쇼핑을 번거롭게 만드는 꼴”이라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 들어선 대부분의 면세점 측은 판매 수량 제한이 유커(중국인 관광객)를 비롯한 해외 관광객들의 소비에 제한을 두게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예로 정해진 한국 방문 기간 동안 계속 면세점을 돌며 쇼핑만 할 수 없기에 자연스레 외국인 관광객들의 지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면세점 관계자는 “지금 당장만 보더라도 면세점 매출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이번 관세청의 판매 수량 제한을 두고 유통업계는 매출 하락을 우려하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면세 쇼핑 가운데 가장 큰 판매 비율을 차지하는 화장품 업계의 타격도 예상된다. 특히 대형 화장품 업체가 아닌 중소 화장품 업체의 타격이 심각할 수 있다.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 등 대형 업체들은 이미 중국 시장 진출 이후 자체적으로 면세점 판매 수량을 제한하며 판매하고 있지만 여타 판매 활로가 없는 기타 중소 화장품 업체들은 국내 면세점에서의 판매 수량이 줄어들면 매출을 마땅히 올릴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중소 화장품 면세점 영업 담당자는 “외국 관광객, 특히 유커는 화장품 한 품목을 선물용으로 수십 개씩 사가는 이들이 많은데, 이들에 대한 판매를 제한한다면 당장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광업계도 비상이 걸렸다. 특히 쇼핑 관광이 대부분인 유커의 이탈이 생길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관세청의 판매 수량 제한은 관광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며 “중국인 관광객은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위해 면세점에 들러 국산 화장품을 수십 개씩 구매해 갈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 중소 화장품 업체 ‘울상’

유통업계는 불법행위 근절을 위한 관세청의 노력은 이해하지만 판매 수량 제한은 방법이 잘못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근거는 이중 규제다. 국내 면세 쇼핑의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인의 1인당 면세 한도는 5000위안, 약 84만원이다.

이미 중국 세관이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 면세 한도를 넘어 반입되는 품목에 관세를 물리고 미신고 시 가산세도 매긴다. 이는 한국 국민이 외국 관광 시 쇼핑할 때를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한국 국민의 면세품 구매 한도는 3000달러(약 330만원), 반입 한도는 600달러(약 66만원)로 정해져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에는 밀수출에 대해서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물품 원가 이하의 벌금, 밀수품 몰수 및 추징이라는 처벌 조항도 있다. 이미 각 나라별로 행정권·사법권으로 자국 국민의 해외 쇼핑에 대한 규제 조항이 마련돼 있다. 이러한 근거로 관세청이 행정 편의주의에 빠져 이중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보따리상과 대리 구매 문제를 해결할 근본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에게 판매한 면세품도 모두 공항에서 받아가도록 하면 해결될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현재 관세법상 외국인 관광객들은 시내 면세점에서 구입한 토산품(국산품)을 바로 가지고 나갈 수 있다. 내국인이 모든 면세품을 출국 직전 공항 인도장에서 받아야 하는 것과 다르다.

외국인 관광객의 쇼핑 편의를 위해 선데, 이것이 보따리상들의 대리 구매로 악용되는 것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판매 수량 제한은 오히려 외국인 관광객들의 불편과 소비를 위축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보다 근본적으로 공항 인도장에서 받아가는 시스템을 만들면 불법행위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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