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야무지(暮夜無知)’ 고사성어의 주인공…가장 귀한 유산은 ‘청백리’ [김경집 인문학자, 전 가톨릭대 인간학교육원 교수] ‘후한서’의 ‘양진전’에 ‘모야무지’라는 고사성어가 나온다. 말 그대로 풀면 ‘심야에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지만 그 본질은 ‘뇌물을 주고받는 행위’를 의미한다. 양진은 후한 시대의 인물이다.
경전에 밝고 두루 아는 바가 많아 사람들은 공자에 견줘 ‘관서의 공자’라고 불렀다. 400여 년 동안 대대로 서한과 동한의 고위 관직을 지낸 손꼽히는 명문 세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찍이 현지 관리들이 수십 차례 벼슬에 나서길 권유했지만 거절하다가 50세에 대장군 등즐의 천거로 형주자사와 동래태수를 지냈다.
◆‘모난 돌’은 사회적 자산
형주자사로 부임하러 가는 도중 창읍현을 지나게 됐는데 한밤중이었다. 사방은 캄캄하고 사물을 구분하기 어려웠다. 그때 창읍의 현령 왕밀이 은밀하게 찾아왔다. 양진에게 바싹 다가온 왕밀은 품에서 황금 10근을 꺼내 양진의 품에 안겼다.
“이것이 무엇이오?” 깜짝 놀란 양진이 물었다.
“감사의 마음입니다. 받아주십시오.” 왕밀은 양진의 천거로 현령이 된 인물이었으니 그것을 사례하려고 했던 것이다.
강직했던 양진은 되물었다. “그대는 어찌 내 마음을 몰라주는가?” 직접 꾸중을 하면 무안할 것 같으니 돌려 말했다.
그러자 왕밀이 대답했다. “늦은 밤이라 아무도 모릅니다(暮夜無知).” 보는 이도 아는 이도 없으니 무슨 뒤탈이 있겠느냐는 뜻이다.
하지만 양진은 왕밀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크게 화를 내며 꾸짖었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있는데 어찌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가!”
이게 바로 이른바 ‘사지(四知)’라는 것이다. 왕밀은 양진의 거절과 노여움에 깜짝 놀라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황금을 도로 넣고 돌아갔다.
‘모야무지.’ 어둡고 깊은 밤이어서 아무도 모르니 마음 놓고 자신의 마음(뇌물)을 받아달라는 뜻이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안전한 뇌물’이라는 뜻쯤 될 것이다.
고마운 마음에 혹은 기대하는 이익을 위해 선물을 빙자한 뇌물이 오간다. 뇌물은 공정을 깨뜨리고 제대로 된 평가를 방해해 결국은 그 사회 전체를 부패하고 무능하게 만든다. 당장은 어느 누군가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사회적 비용은 훨씬 더 커진다.
양진은 청백리의 삶을 끝까지 고수한 사람이다. 탁군태수로 전임한 후에도 그는 사람을 겸손하게 대했고 검소하게 살았다. 자연히 가난한 살림살이였다. 다행히 자식들도 그 본을 따라 검소하게 살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보자니 벽창호처럼 보였고 궁색한 살림이 안쓰러웠던 모양이다. 그래서 받아도 탈 없는 것은 적당히 챙겨 전답과 가옥을 마련해 자식들에게 물려주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양진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이렇게 타일렀다.
“후세 사람들에게 청백리의 자손이라는 명성을 물려주는 것이 가장 귀한 유산이 아니겠는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이 있다. 강직하고 청렴하면 존경하기는커녕 모질다거나 혼자만 잘난 척한다며 뒤에서 쑥덕인다. 그러면서 그를 따돌린다. 그야말로 ‘사회적’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뇌물을 줬다가 거절당하는 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원성을 산다.
양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 자들에게 양진은 제거해야 할 대상이었다. 몸에 밴 뇌물과 청탁이 자신의 안위와 승진 혹은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청백리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결국 그들은 양진을 모함해 쫓아냈다.
삭탈관직 된 양진은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간신들의 나쁜 짓을 보고 분노했지만 그것을 제거할 방법을 찾지 못했으니 무슨 면목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며 독주를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자신이 죽은 후 선산에 묻지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고 당부했다. 모함으로 죽는 것보다 그런 불의를 발본색원하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을 탓했던 사람이니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으면 그렇게 당부했을까. 얼마나 억울했을까.
삼성의 김용철 변호사가 엄청난 비리를 고발했을 때 그의 용기를 칭찬하고 그가 몸담았던 대기업의 악행과 불의를 비판하기보다 ‘주인을 문 개’ 취급하고 심지어 그의 출신 지역을 들먹이며 불온의 딱지를 붙였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내부자 고발에 대해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 이후 내부자 고발은 위축됐다. 그러니 다시 악과 불의가 발호했다. 그렇게 사회가 점점 더 부패해진다. 부패는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킨다.
비리를 고발하고 불의를 거절하는 것은 당장은 고통일지 모르지만 크게 그리고 멀리 보면 환부가 커지기 전에 도려내는 수술과 같다. 그런 점에서 모난 돌은 중요한 사회적 자산이고 조직의 소금이다.
‘김영란법’을 시비하거나 너무 엄격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푸념하는 것은 그만큼 불의와 부패가 만연해 마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지경이 됐다는 뜻이다.
‘모야무지’를 질책한 양진만큼은 아니더라도 이참에 사회의 부패를 막고 미래의 가치를 키운다는 각오로 제대로 그 법을 지킬 일이다. 쓸데없는 밥자리 술자리 접대가 줄어 자연스럽게 집에 일찍 들어가거나 자신의 시간을 누리는 것은 덤이다.
(일러스트 김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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