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경영 평가 기준서 배점 커져,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
‘사회적 가치’가 뭐지?…혼란 빠진 공공기관들
(사진)현재 공공기관들은 2017년 경영 평가와 관련한 실적 보고서 작성에 여념이 없는 상황이다. 3월9일까지 기획재정부에 이를 제출해야 한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정부의 공공기관 경영 평가 대상인 A 준정부 기관에서 경영평가팀을 이끌고 있는 김인호(가명) 팀장은 요즘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내년부터 평가 지표에 확대 반영된 ‘사회적 가치’ 항목 때문이다. 내년에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 당장 올해부터 경영활동에서 사회적 가치 부문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어떻게 이와 관련한 계획을 세워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김 팀장은 “모든 공공기관이 각각의 고유 영역에서 사회적 가치를 이행하기 위해 만들어졌는데 어떻게 경중을 따져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부작용 낳을까 우려

정부가 1월 22일 인천공항공사·한국전력·국민연금공단 등 123개 공공기관(공기업 35개, 준정부 기관 88개)을 대상으로 하는 ‘2018년 공공기관 경영 평가 편람’을 확정해 공개했다.

이미 평가 대상 기관들에는 지난해 12월 말 편람을 배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를 받아든 공공기관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올해 바뀐 평가 지표가 혼란스럽다며 여기저기서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2018년도 공공기관 경영 평가 편람에 따르면 내년부터 공공기관 유형(공기업·준정부 기관)에 따라 각각 평가가 진행된다. 특히 이전과 달리 ‘사회적 가치’와 관련한 평가 배점이 크게 높아졌다. 공공기관 본연의 책무라고 할 수 있는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공공기관 경영 평가는 ‘경영관리’와 ‘주요 사업’ 등 두 개 부문으로 나눠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책정한다.

이전 편람을 보면 경영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 관점으로 분류할 수 있는 항목은 경영관리에 포함된 ‘전략기획·사회적 책임(5점)’, ‘정부 권장 정책(6점)’ 등 총 11점 정도였다. 그런데 2018년도부터 사회적 가치 항목의 점수는 공기업은 최대 37점, 준정부 기관은 최대 55점으로 크게 늘어났다.

우선 정부는 경영관리 부문에서 ‘사회적 가치 구현(공기업 22점, 준정부 20점)’에 대한 항목을 새롭게 추가했다. 사회적 가치 구현은 총 5개 항목으로 나눠진다. △일자리 창출 △균등한 기회와 사회 통합 △안전 및 환경 △상생·협력 및 지역 발전 △윤리 경영 등이다.

그간 공공기관의 경영 계획이나 실적을 종합적으로 살펴봤던 주요 사업 부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요 사업들이 얼마나 사회적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평가한다. 여기에 공기업은 10~15점, 준정부 기관은 30~35점이 배정됐다.

즉, 이제는 아무리 경영 실적이 좋더라도 사회적 가치에서 높은 점수를 따내지 못하면 최종 평가 등급 또한 낮게 책정될 수밖에 없는 구조로 바뀐 셈이다.

당장 내년부터 사회적 가치를 반영해 경영 평가 등급이 매겨지는 만큼 올해 얼마나 사회적 가치 구현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이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평가 등급이 엇갈릴 전망이다.

이 같은 2018년도 경영 평가 편람이 확정된 뒤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특히 주요 사업 부문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 여부를 평가한다는 방침이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이 공공기관에 만연한 분위기다.

정부는 기존의 경영 평가가 지나치게 수익성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공공기관이 실적 향상에만 매달리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해 주요 사업에도 얼마나 사회적 가치와 연관해 이를 이행하는지 평가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두고 A 공기업 관계자는 이번 개편이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공기업 본연의 사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 외에 사회적 가치와 관련된 것을 하라고 하면 여기에 따른 실적 악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요 사업 부문에서 공기업보다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점이 더욱 높게 책정된 준정부 기관들은 부담이 더하다고 주장한다.

B 준정부 기관 관계자는 “민간에 맡겨 놓으면 문제가 일어날 수 있어 정부가 해야 하는 안전 분야 등의 업무를 위탁받아 하는 것이 준정부 기관”이라며 “모든 업무가 다 사회적 가치를 갖고 있는데 여기서 더 무엇을 평가하겠다는 것인지 명쾌하지 않다. 그게 제일 큰 혼선이고 혼란”이라고 말했다.

개편된 평가 방식이 일부 공공기관에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제기된다. 이를테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주력 사업은 임대주택 사업으로, 그 자체로 사회적 가치가 많이 반영되는 사업이다.

근로복지공단 등 안전이나 보건과 관련된 기관도 목적 자체가 거의 순수하게 사회적 가치를 제고한다. 반면 한국전력이나 한국가스공사와 같은 기관은 경영관리를 통해 사회적 가치를 제고하는 기관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주장을 내놓은 C 공기업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존재 자체가 공익을 위해서 있는 만큼 정부는 설립 목적에 따른 사업을 가장 잘할 수 있게 평가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특정 공공기관에 유리하다는 지적도

일각에서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가 매번 정권 구미에 맞게 개편되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 또한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성과연봉제를 예로 들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2016년 1월 임금 경직성이 공공기관의 경쟁력을 해친다며 경영 평가에 성과연봉제 도입 기관에 대한 가점을 부여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성과연봉제가 노사 합의 없이 추진됐다는 비난이 빗발치면서 이를 폐기한 바 있다. 경영 평가에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배점을 늘린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

D 준정부 기관 관계자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가 부채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따라서 제도를 없앨 수는 없다”며 “새 정부에서도 국정 철학을 반영하는 새로운 평가 방식을 고민하다가 사회적 가치라는 항목이 들어간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공기관들은 정부의 방침을 고스란히 따를 수밖에 없다. 경영 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이 결정되는 것은 물론 기관의 위상 또한 높아진다.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가 자칫 평가에 악영향을 받을까 우려된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들은 대략 4월부터 사회적 가치 구현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돌입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공공기관들은 2017년 경영 평가와 관련한 실적 보고서 작성에 여념이 없는 상태다. 3월 9일까지 기획재정부로부터 이를 제출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에는 경영평가단의 실사가 기다리고 있다. 보통 3월 말~4월에 진행되는 만큼 올해 평가와 관련한 모든 절차를 마치고 내년을 준비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예컨대 한국가스공사는 실사를 준비하면서 사회적 가치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고 한국마사회 역시 올해 경영 평가를 모두 마친 뒤 조직 개편을 통해 내년 평가에 대응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한국전력은 사회적 가치 구현 지표를 조금 더 분석한 뒤 각각의 항목과 연관이 있는 부서들을 찾아 이를 담당하게 할 계획이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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