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놀로지]
-고가 韓·美 vs 중저가 中…‘이미지 변신’으로 판 깨려는 중국 기업들

[한경비즈니스=최형욱 IT 칼럼니스트] 중국과 미국의 무역 전쟁이 뜨겁다. 그리고 이러한 무역 전쟁에서 가장 먼저 피해를 본 기업은 화웨이와 ZTE 같은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이다.

지난해 말부터 루머로 돌기 시작했던 화웨이 스마트폰의 미국 시장 진출설은 2018년 1월 열린 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CES의 시작 전까지는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화웨이는 미국의 통신 사업자 AT&T와의 파트너십을 맺고 미국 시장 첫 론칭 이벤트를 위해 글로벌 기자들을 초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웨이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미국의 상하원 정보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와 함께 AT&T에 화웨이의 스마트폰 도입을 철회하라는 압력을 행사했고 결국 AT&T는 이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4월 들어 중국 스마트폰 업체인 ZTE에 또 하나의 비보가 날아들었다. 바로 미국 상무부가 대북·대이란 제재를 위반했다는 혐의로 ZTE에 향후 7년간 미국 업체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경제제재를 가한 것이다.

당장 퀄컴이나 인텔로부터 스마트폰 칩셋을 납품받고 있던 ZTE로선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물론 결론은 다소 밝았다. 5월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본인의 트위터를 통해 ZTE에 대한 제재 수위를 완화할 뜻을 내비쳤고 최근 미국 행정부도 이러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견을 받아들여 ZTE에 대한 제재 수위를 낮추는 방향으로 검토 중이다.
‘중국에서 인도로’…전쟁터 바뀐 스마트폰 삼국지
◆초기 중국 시장의 승자였던 삼성전자

한국과 중국 그리고 미국의 스마트폰 전쟁의 시작은 중국 시장에서 시작됐다. 가장 먼저 승기를 잡았던 것은 한국의 삼성전자다.

중국 시장을 들여다보면 3G망이 보급되기 2011~2012년에도 스마트폰은 보급됐었고 이러한 초기 시장부터 삼성의 갤럭시는 독보적인 제품으로 시장 1위를 확실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공불락으로만 보였던 갤럭시의 지위는 2013년부터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특히 떠오르는 스타 샤오미의 가성비 높은 제품 ‘훙미’는 LTE라는 차세대 네트워크와 이를 활용하고 싶은 10~20대 모바일족의 주머니 사정을 저격했고 시장은 새로운 전략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화웨이 역시 ‘아너’라는 신생 브랜드를 가지고 샤오미의 전략에 재빨리 동참했다. 이듬해인 2014년 6월쯤부터 샤오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온라인 시장으로 대변되는 중저가 시장을 무섭게 차지하기 시작했다.

사실 LTE망이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모바일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세상과 이를 통한 새로운 서비스들을 빨리 접하고 싶었던 10~20대 소비자들로선 599위안, 699위안 수준, 10만원 정도인 제품은 가뭄의 단비처럼 환영할 만했다.

통신 사업자 역시 LTE의 전국망 확대를 위해 중저가 제품에 대해서만 추가적인 보조금을 지급했고 이러한 혜택은 스마트폰 보급에 불을 지피기에 이르렀다.
‘중국에서 인도로’…전쟁터 바뀐 스마트폰 삼국지
여기에 또 하나의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미국의 아이폰이다. 2013년 하반기 7억 명의 가입자를 가진 중국의 1위 통신 사업자인 차이나모바일과 공급계약을 체결하고 그 이듬해인 2014년 1월 아이폰 5S와 5C를 판매하기 시작했지만 성적은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해 연말 출시된 아이폰 6는 달랐다. 말 그대로 ‘대박’이 터졌고 아이폰은 단숨에 중국 시장점유율 1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지금도 5위권을 유지하며 중국에서만 연간 5000만 대 전후의 아이폰을 판매하고 있는 애플로선 중국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다.

종합하면 초기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별다른 경쟁자가 없었고 그 시장을 삼성전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013~2014년 이후 애플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진입하고 중국 업체들 역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함에 따라 시장의 판도는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의 중국 시장에선 삼성전자의 흔적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에서 인도로’…전쟁터 바뀐 스마트폰 삼국지
◆샤오미의 반란, 인도에서도 재연

2017년 4분기부터 인도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샤오미의 반란이다. 2017년 초까지만 해도 부동의 1위였던 삼성전자와 큰 격차를 보이며 2위권을 유지하고 있던 샤오미가 3분기 들어 1위인 삼성전자를 바짝 뒤쫓더니 4분기부터 2018년 1분기까지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1위 자리로 올라섰다.

여기에 힘입어 레이쥔 샤오미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5년간 인도의 우수한 스타트업 100개 업체에 10억 달러를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방식은 이미 중국에서도 진행 중이다. 지난 4년간 중국의 300여 개 기업에 40억 달러를 투자하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성비의 샤오미 제품들을 브랜드 라이선싱 등을 통해 만들고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고 샤오미 경쟁력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인도에서도 같은 전략을 사용해 생태계를 만들고 기업 및 브랜드 가치 증대와 함께 제품 판매도 증진하려는 목적이다.

이러한 샤오미의 성과를 보고 오포와 비보 같은 업체들 역시 일찌감치 인도 시장에 진출해 중국에서 그들이 펼쳤던 전략을 현지 맞춤형으로 변화시키며 시장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또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장 진입을 시작한 화웨이 역시 제2의 중국 시장인 인도를 차지하기 위해 본격적인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사실 최근 인도 시장을 살펴보면 2013~2014년 스마트폰 보급이 확대됐던 중국의 상황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LTE로 네트워크가 업그레이드됐고 이에 따라 모바일 인터넷과 이를 활용한 서비스를 사용하려는 젊은 고객층 역시 늘어나고 있다.

스마트폰 보급이 더뎠던 인도 시장에서 최근 스마트폰 보급이 급격하게 확대되고 이러한 확대의 견인차 역할을 중국의 가성비 제품들이 도맡아 하고 있다.

결국 마이크로맥스·라바·스파이스와 같은 인도 로컬 업체들과 경쟁하던 시기에 큰 격차를 두고 부동의 1위를 유지했던 삼성전자에 중국에서처럼 진정한 경쟁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이제 본격적으로 치열한 진검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여기에 미국의 대표 주자 애플의 행보 역시 심상치 않다. 아이폰 중 상대적으로 저렴한 제품 라인업을 새로 만들면서 인도 시장에서 본격적인 시장 판매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전쟁의 승자는 중국?

일단 최근 중국과 인도의 스마트폰 시장을 보면 한국의 대표 선수인 삼성전자에는 그리 긍정적인 시그널이 나오고 있지 않다.

중국에서는 1% 전후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그 존재감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고 인도에서는 그동안 지켜 왔던 1위를 샤오미에 내줬다.

여기에 3~4위권이었던 오포와 비보 역시 소매가 100~150달러의 인도 주요 시장을 차지하기 위해 별도의 브랜드를 론칭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사실 그동안 중국 업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바로 가성비였다. 하지만 그 뒤를 따르는 말들을 보면 ‘그만큼 품질이 떨어진다’거나 ‘기술력이 떨어져 새로운 기능이나 서비스가 없다’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에 이러한 부정적인 인식들이 바뀔 만한 많은 시도들이 중국 업체들로부터 시작됐다.

최근 발표된 화웨이의 P20을 보면 3개의 카메라를 달고 좀 더 좋은 사진을 만들기 위한 기술을 접목했고 샤오미의 미맥스는 극단적인 베젤리스를 위해 전면 카메라를 하단으로 배치했고 근접 센서를 위한 홀이나 리시버 홀을 없애기 위해 초음파 근접 센서나 피에조 스피커와 같은 새로운 기술들을 접목했다.

물론 이러한 모든 기술들이 완성도가 높거나 사용자가 많이 사용할 대세 기술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인 기술 기업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는 분명 도움이 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중국에서 학습한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리테일과 마케팅 경험도 중국 업체들의 변화무쌍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샤오미는 일단 어떤 시장에 진입하든 중국에서 했던 것처럼 온라인을 중심으로 최근 ‘샤오미의 집’이라고 불리는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해 샤오미 생태계를 소비자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하는 유기적인 구조를 만들었다.

오포와 비보는 중심 도시가 아닌 주변 도시의 젊은 충을 우선 공략 대상으로 삼고 이들의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를 끌어올리기 위한 오프라인 리테일 전략을 펼치는 등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화웨이는 중국 스마트폰의 맏형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기술 기업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면서 글로벌 시장과 중국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 시장에서의 플래그십 제품의 판매는 애플의 아이폰과 삼성전자의 갤럭시가 양분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균형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통신 시장 역시 최근 5G가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아직까지 4G LTE망도 구축하지 못한 많은 지역들과의 편차가 발생하고 있다.

그리고 이미 인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중남미·아프리카·동유럽과 같은 이머징 시장에서는 기존 해당 지역의 로컬 유통 업자가 유통하던 자체 브랜드 제품에서 중국 업체들의 제품으로 시장이 변화하고 있다. 결국 가성비가 가장 큰 무기인 중국 업체들의 시장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업체가 위협적인 부분은 이러한 점유율 상승을 바탕으로 기술에 투자를 하고 과감하게 새로운 시도를 추진함으로써 기술 기업으로서의 브랜드 이미지 역시 조금씩 쌓아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중국·미국을 대표하는 스마트폰 업체 간의 전쟁이 새로운 갈림길에 들어선 모양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