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스피커 ‘누구(NUGU)’가 대표주자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선경 시절부터 글로벌 기업 SK가 되기까지 우리 SK 식구들의 수고가 정말 많았다. 앞으로 세계 시장을 제패할 SK 가족들을 항상 지켜보고 응원하겠다.”
지난 8월 24일 서울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고(故) 최종현 전 SK그룹 회장 20주기 추모행사에서 고인의 음성이 울러 퍼졌다. 홀로그램으로 환생한 고인은 생전 모습과 음성 그대로 행사장 연단에 서 아들 최태원 회장과 딸·손녀 등의 이름을 일일이 부르며 참석자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최 회장은 20년 만에 홀로그램으로 만난 선친에 감동하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날 20주기 기념행사는 “최종현 전 회장이 SK그룹의 비약적인 성장을 본다면 어떤 말을 하실까” 하는 최태원 회장의 물음에서 시작됐다. SK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기존의 전통적 형태의 추모식 대신 회사의 첨단기술을 총집결한 복합 공연 형태의 추모식을 열었다.
그 과정에서 SK텔레콤의 인공지능(AI) 플랫폼인 ‘누구(NUGU)’를 결합한 홀로그램 기술을 끌어왔다. 홀로그램은 실제 사람과 같은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구현되는 과정에서 지금보다 수백~수천 배 많은 데이터 전달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AI와 미디어 기술의 집약체’로 불릴 만큼 고도의 기술력이 핵심이다. 이날 500여 추모객들은 최 전 회장의 생전 모습과 함께 그가 떠난 이후 SK가 일군 미래 기술의 결실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파격적 비즈니스 모델 혁신해야
SK의 AI 투자는 그룹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SK의 주력 사업인 통신업의 성장세가 갈수록 둔화되는 상황에서 ‘탈통신’ 정책을 통해 회사의 미래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특히 최 회장은 근원적인 변화를 뜻하는 ‘딥 체인지 혁신’을 통해 미래 성장 동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최 회장은 “미래 생존이 불확실한 시대에 올드 비즈니스에서 벗어나 블루오션으로 가기 위해서는 기존의 껍질을 깨는 파격적 수준의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 회장이 추진하는 ‘딥 체인지’, 그 변화의 중심에 AI가 있다.
SK는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AI부터 5세대(5G)까지 다양한 신기술을 각 산업군에 침투시킴으로써 ‘초연결 세상’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SK의 최대 강점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연결되는 세상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네트워크를 통해 사람과 사물·데이터 등 모든 것이 연결 가능한 초연결 사회에서는 AI가 필수 기반이자 핵심 기술이다. 통신과 반도체 사업이 두 축인 SK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할 열쇠이기도 하다.
계열사 중에서는 SK텔레콤과 SK C&C가 AI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SK텔레콤은 오는 2019년까지 4차 산업혁명을 위한 새로운 정보기술(IT) 생태계 조성에 5조원, 5G 이동통신 등 미래형 네트워크에 6조원 등 총 11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투자 지원으로 AI·자율주행차·사물인터넷(IoT)·로보틱스·스마트홈 에너지 관리 솔루션 등 새로운 사업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작년에는 대표이사 직속 AI사업단을 신설하며 AI를 사업의 우선순위에 두고 비즈니스 모델을 그려 나가는 중이다.
추모행사에서 선보인 홀로그램 외에 대중에게 보다 잘 알려진 SK텔레콤의 AI 서비스는 음성인식 AI 스피커인 ‘누구’다. SK텔레콤은 2016년 국내 최초로 누구를 출시하며 AI 서비스 시장에 첫 발을 뗐다. 출시 2년째 누구는 월간 실사용자(MAU) 400만 명을 기록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출시 첫 달 102만1000건으로 시작한 대화량은 지난 8월 7343만8000건으로 72배 늘었으며, 월간 실사용자는 같은 기간 5280명에서 387만5000명으로 734배 뛰어올랐다. ◆‘누구’·‘에이브릴’로 시장 선점
또 유통·자동차·금융·건설 등 다양한 산업군과 융합해 AI 서비스를 실생활 전반으로 확대하고 있다. AI가 적용된 디바이스만 스피커 1종에서 최근 스피커에 조명 기능을 추가한 ‘누구 캔들’까지 총 7종으로 확대됐다. ‘누구’를 기반으로 AI와 연계한 스마트홈 전기·전자제품은 총 220종에 달한다. IPTV부터 공기청정기·조명·가스밸브 등 다양한 가전 기기를 누구로 제어할 수 있다.
SK텔레콤이 앞으로 주력할 분야는 차량이다. 내비게이션의 ‘AI 운전비서’를 목표로 T맵 고객들의 더욱 안전한 주행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지속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이상호 SK텔레콤 서비스플랫폼사업부장은 “SK텔레콤은 AI 플랫폼인 누구를 고객이 언제 어디서나 인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물의 AI화를 지속적으로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기술을 집대성한 로봇 사업에도 투자를 늘리고 있다. 우선 SK텔레콤이 선보일 차세대 AI 로봇은 음성인식 기술에 영상인식 기술을 더한 탁상형 기기다. 기존 AI 기기와 달리 헤드 부분에 카메라와 화면이 장착됐다. 이 기기를 부르면 이용자가 따라다니고 손동작을 인식해 작동 멈춤 등이 가능하다. SK텔레콤은 앞으로 독자 개발한 ‘지능형 영상인식 솔루션’을 탑재해 얼굴 인지 기반의 개인화 시스템 구축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누구’ AI도 함께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또 다른 계열사인 SK C&C는 AI 기술 강자인 IBM과 손잡고 AI 플랫폼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IBM의 AI 플랫폼인 왓슨을 기반으로 국내 환경에 최적화한 한국형 AI 서비스 브랜드인 ‘에이브릴’을 2017년 선보였다.
에이브릴은 사용자가 AI 관련 경험과 지식이 없더라도 전문 산업 지식과 아이디어만 있으면 자신만의 AI 서비스를 쉽게 만들어 서비스할 수 있는 AI 플랫폼을 말한다. SK C&C는 에이브릴을 통해 AI 창업생태계를 조성하고 에이브릴이 산업 부흥을 선도하는 대표 브랜드가 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미 ‘에이브릴’은 의료·엔터테인먼트·학습·금융 등에서 다양한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작년 10월에는 금융·보험·통신·유통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고객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 1위 통합 콜센터(컨택섹터) 구축 전문 기업인 한솔인티큐브와 제휴했다. 에이브릴에 기반한 AI 컨택센터 솔루션을 개발해‘가상 상담원’과 ‘상담원 보조’를 구현, 맞춤형 고객 상담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SK텔레콤과 SK C&C의 합작품도 탄생할 예정이다. 누구 스피커에 에이브릴을 결합해 영어 대화 기능을 도입할 계획이다. 예컨대 “What is the highest mountain in the world?(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무엇인가?)”라고 물어보면 “Mount Everest(에베레스트산)”라고 대답하는 식이다. 집 안에 AI 영어회화 선생님이 등장할 날도 머지않았다. 두 회사는 이번 협업을 시작으로 AI 분야 협력을 지속, 경쟁력을 강화해 나갈 예정이다.
박명순 SK텔레콤 미래기술원장은 “‘누구’를 시작으로 음성인식과 AI가 생활 전반을 획기적으로 바꿔 가는 ‘AI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며 “공유·개방을 통해 AI 생태계 자체가 커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내외 AI 기업 투자 지속
SK의 투자는 계열사 간에만 이뤄지지 않는다. 회사는 탄탄한 중견·중소기업은 물론 미래 유망 스타트업까지 손을 뻗어 AI 생태계를 보다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AI 기술 혁신과 함께 다양한 사업자와의 제휴를 통한 AI 생태계 확장이 이루어져야만 향후 AI 사업의 성패를 가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 전략에는 투자뿐 아니라 인수·합병(M&A)도 포함된다.
먼저 SK텔레콤은 이달 초 보안 전문 기업 ADT캡스를 품에 안았다. 이번 인수는 AI·IoT·빅데이터 등 뉴 정보통신기술(ICT)과 보안 시스템이 결합하면 새로운 사업 영역이 펼쳐질 것이란 판단이 작용했다. 기존에는 보안 관리자가 영상을 육안으로 감시하며 상황을 판단했지만, 뉴 ICT와 결합하면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위급 상황 파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AI가 적용될 경우 이상 행동이 카메라나 센서에 포착되면 보안 관리자에게 경고를 보내거나 출동 명령을 내릴 수 있어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래 유망 스타트업도 SK텔레콤의 주요 파트너다. SK텔레콤은 구체적인 투자 규모를 공개하고 있지 않지만 5G 시대를 이끌 10개 사업 분야의 스타트업과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 10개 분야는 AI를 비롯해 자율주행·블록체인·빅데이터·지능영상보안·스마트팜·환경플랫폼·미디어·센서·데이터관리 플랫폼 등이다.
글로벌 석학들과의 연구 교류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글로벌 AI 분야 선도 업체와 학계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AI의 진화 방향에 대해 전망해 보는 컨퍼런스인 'ai.x 2018'을 개최했다. SK텔레콤의 AI 총괄인 김윤 AI리서치센터장을 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AI 플랫폼을 개발하는 아마존 웹 서비스의 머신러닝 분야 브라틴 사하 부사장, 세계적인 AI 연구소인 오픈 AI 소속 존 슐만과 구글의 AI 연구조직인 구글AI의 데이빗 하 등 900여 명의 AI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인 행사였다.
회사는 앞으로도 국가와 소속을 초월해 AI 분야 지식 공유와 인적 교류를 위한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방침이다. 미국의 구글 I/O, 페이스북 F8이 각 사의 혁신적인 성과물을 발표하고 개발자들 간 교류의 기회를 제공하는 행사로 자리한 것처럼 ICT 기술의 선도자인 우리나라가 AI 분야에서도 앞서갈 수 있도록 연구·개발자 간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최고급 인재 모인 ‘드림팀, AI리서치센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인공지능(AI) 핵심 인재 영입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의 AI 전문가들을 합류하며 AI 사업에 한층 더 활력을 불어넣었다.
SK텔레콤의 AI 분야 연구·개발(R&D)을 책임지는 곳은 AI리서치센터다. 최근 조직 개편과 함께 세계적인 수준의 AI 관련 분야 인재를 선임하면서 ‘AI 드림팀’을 완성했다. AI리서치센터는 AI 분야의 각종 기술을 선제적으로 연구하고 사업화 가능성을 확인하는 R&D 기관으로 지난 7월 조직을 재정비했다. 현재 △T-브레인 △테크 프로토타이핑 그룹 △데이터 머신 인텔리전스 그룹 등 3개 조직으로 구성돼 있다.
먼저 센터를 이끄는 김윤 센터장은 애플 음성인식 개발팀장과 시리 개발총괄을 역임한 머신러닝 전문가로, SK텔레콤 초대 AI리서치센터장을 맡았다. 그와 함께 데이터 머신 인텔리전스 그룹장은 실리콘밸리 소재 세계 최대의 모바일 광고 플랫폼 탭조이에서 데이터 사이언스를 총괄해 온 진요한 박사가 선임돼 머신러닝 등 AI 기반 기술 연구를 책임진다. 테크 프로토타이핑 그룹장에는 세계적인 자연어 기반 지식 엔진 ‘울프램 알파’의 창립 멤버인 장유성 박사가 선임돼 AI 기술의 검증과 사업화 가능성을 타진할 계획이다.
AI리서치센터의 조직 구성을 마무리 지은 SK텔레콤은 ‘채용 규모를 한정 짓지 않고, 상시로 영입한다’는 내부 방침을 세우고, AI 분야의 R&D를 함께 할 글로벌 인재 확보에 나섰다.
SK텔레콤은 머신러닝 분야 학술회의의 양대 산맥으로 이름 높은 ICML(International Conference on Machine Learning)과 NIPS(Neural Information Processing Systems)를 직접 찾아가 글로벌 AI 인재 대상 채용을 진행한다. 이미 한 차례 SK텔레콤은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진행된 ICML에서 글로벌 AI 인재 채용을 진행했다.
지난 1980년 출범한 ICML은 구글·인텔·엔비디아·페이스북·아마존 등 글로벌 기업들의 후원 속에 참가 등록 인원만 5000명, 제출 논문만 2437편에 달하는 등 AI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학회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T-브레인 조직을 담당하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출신 김지원 상무가 직접 학회를 찾아가 AI와 머신러닝 분야의 우수 인재들과 만나 SK텔레콤의 AI 분야 사업 현황 및 비전을 소개해 높은 호응을 얻었다고 밝혔다. 학회에서 SK텔레콤 지원 의사를 밝힌 인재들은 학회 이후 면접 과정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어 SK텔레콤은 오는 12월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열리는 신경정보처리시스템 국제학회(NIPS) 참가를 포함한 AI 분야 글로벌 인재 채용을 지속적으로 전개한다.
이 밖에도 SK텔레콤은 국내의 주요 AI 관련 학회·포럼 참석, 캠퍼스 방문 설명회 등을 통한 AI 분야 인재 확보도 진행한다. 또한 자체적으로 AI 분야에서 전 세계적으로 능력을 인정받는 국내외 전문가들을 초청해 ‘AI 심포지엄’을 개최할 계획이다.
김윤 센터장은 “전 세계적으로 AI 분야 인재 확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장유성 박사, 진요한 박사처럼 훌륭한 인재들이 합류한 것은 커다란 행운”이라며 “SK텔레콤, 나아가 대한민국의 AI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는 것은 물론 최고의 전문가들이 마음 놓고 신나게 연구·개발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조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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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2호(2018.10.01 ~ 2018.10.0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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