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2인자이자 잠룡인 ‘이낙연과 임종석’…일거수일투족 연일 화제 [김형호 한국경제 정치부 기자]
“여의도에서 총리한테 밥 한 번 못 얻어먹으면 정치인이 아니라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혹시 들어보셨습니까.”
지난 10월 대정부 질의에서 김성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이 같은 여의도의 분위기를 전했다.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지만 힐난보다 ‘더욱 열심히 여야 의원들을 만나 달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선 이 총리의 ‘밥 정치’와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선글라스’가 단연 화제다. 여야를 가리지 않은 이 총리의 ‘식사 정치’ 행보와 지난 10월 17일 비무장지대(DMZ)에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방문했다가 뒤늦게 야당의 맹폭을 받은 임 실장이 연일 입길에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현 정부 내각과 청와대의 ‘실세’인지라 세간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이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매주 독대하며 국정 현안을 논의하고 내각에서는 ‘군기반장’ 역할을 맡으며 장수 총리의 길을 다지고 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임 실장은 야당으로부터 ‘왕 실장’이라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대통령의 신임이 두텁다. 이들은 여권의 잠재 대권 후보이면서 호남(이 총리는 전남 영광, 임 실장은 전남 장흥) 출신이라는 교집합을 갖고 있다. 정치적 기반이 겹치는 두 사람의 최근 정치적 행보를 여의도 정가에서 예사롭지 않게 보는 이유다.
◆‘막걸리 정치’로 보폭 넓히는 이 총리
이 총리가 10월 중순께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이부영 전 민주당 고문, 정대철 민주평화당 상임고문 등과 식사 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이 총리가 인연이 있는 여야 인사들과의 식사 자리를 마련해 국정에 관한 아이디어를 구했다는 전언이지만 손 대표와의 회동에 눈길이 머무른다.
이 총리는 현역 의원 시절 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친손학규계 인사로 꼽혔다. 손 대표가 민주통합당 당 대표이던 2010년에는 이 총리가 당 살림을 책임지는 사무총장을 맡았다. 손 대표가 전남 강진 만덕산에 칩거하던 시절에도 두 사람은 각별한 인연을 유지했다. 당시 전남지사였던 이 총리는 관할 지역에 머무르는 손 대표를 각별히 챙겼다는 후문이다. 막걸리를 남달리 사랑하는 술 취향도 비슷하다. 당시 만덕산 토굴을 찾아가 빈번하게 막걸리 잔을 기울이던 이 총리는 어느 날 밤, 양희은의 ‘한계령’ 속의 가사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하네’를 인용해 칩거를 끝내고 당으로 돌아오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타진했다. 이에 손 대표는 ‘살어리 살어리 청산에 살어리랏다’로 화답하며 칩거를 이어 갔다.
막역했던 두 사람은 손 대표가 안철수 전 대표와 함께 국민의당을 창당하기 위해 2016년 10월 민주당을 탈당하면서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거센 만류에도 불구하고 탈당 의사를 굽히지 않은 손 대표에게 이 총리가 적지 않게 실망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전언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에 낙점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소원해진 듯했다.
그런 두 사람이 2년여 만에 재회한 것이다. 표면적으론 국무총리와 제2야당의 대표 자격의 만남이지만 옛 인연을 감안하면 예사롭지 않다. 이 총리나 손 대표 측이나 확대해석은 경계하는 분위기다. 손 대표 측은 “정대철 고문과 이부영 고문 등 옛 민주당에서 함께 지냈던 분들과 함께 만나는 자리였다”고 했다.
물론 이날 모임은 이 총리가 취임 후 보여 온 ‘식사 정치’의 한 부분인 측면이 있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초대 총리에 취임한 후 삼청동 총리공관은 그 어느 때보다 손님맞이로 분주한 모습이다. 정부 여당과 내각 관계자들뿐만 아니라 야당·언론계 등 다양한 인사들을 접촉하는 이 총리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초청 손님의 고향에서 공수해 온 막걸리를 내놓는 ‘고객 감동 서비스’는 이 총리의 전매특허다. 이정미 대표 등 정의당 의원들을 초청했을 때는 이 대표의 고향인 부산의 금정막걸리를, 지난 8월 임 실장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들을 초청했을 때는 임 실장의 고향인 장흥 안양주조장에서 빚은 동동주를 공수해와 내놓았다.
이 총리는 최근 여권 내 차기 정치 지도자 적합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경향신문의 지난 10월 조사와 알앤써치의 정례 조사 등에서 박원순 서울시장, 김경수 경남지사 등 여권의 유력 주자들을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총리라는 ‘프리미엄’과 대정부 질의 과정에서 보인 폭넓은 국정 이해, 야당의 공세를 되받아치는 ‘사이다 표현’ 등이 문재인 정부 지지층의 호응을 얻고 있다는 분석이다. 차기 지도자 적합도 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이 총리와의 회동 이후 손 대표의 임 실장을 겨냥한 비판은 더욱 매서워진 듯싶다. ◆‘선글라스’는 핑계, 임 실장 향한 야권의 압박 배경은
임 실장의 행보는 매번 정치권에 파장을 낳고 있다. 최근에는 임 실장의 비무장지대 방문과 복장, 그중에서도 ‘선글라스’가 논란이 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10월 30일 대통령 해외 순방 기간 중 국방부장관·국정원장·국가안보실차장 등과 DMZ를 시찰한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을 겨냥해 “청와대 왕실장 정치를 본격화했다”고 맹비난했다.
임 실장이 DMZ를 시찰한 것은 지난 10월 17일. 약 2주가 지나서 또다시 이를 거론한 것은 그만큼 임 실장이 야권의 표적이 돼 있다는 방증이다. 물론 임 실장이 전날 청와대 홈페이지에 DMZ를 방문한 모습에 직접 해설까지 곁들인 동영상을 올려 논란을 재점화한 측면이 있다.
임 실장을 향한 공세는 손 대표가 더욱 매서웠다. 손 대표는 “자기 정치를 하려거든 비서실장 자리에서 내려오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이게 제왕적 대통령제하에 측근 실세들의 모습이고 패권정치의 폐단”이라며 “국민은 또 하나의 차지철(박정희 정부 시절 경호실장), 최순실을 보고 싶지 않다”고까지 했다.
선글라스를 착용한 인사들이 득세했던 독재정권 시절에 학생운동을 해서인지 손 대표의 선글라스 알레르기 반응이 도드라졌다. 민주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손 대표와 임 실장은 당시에도 정치적으로는 가까운 사이가 아니었다. 여기에 지난 8월 임 실장이 평양 남북정상회담 동행 초청을 거절한 손 대표에게 “올드 보이들의 귀환에 여의도 정치의 복원을 기대했다”면서 ‘꽃할배’라고 지칭하면서 사이가 더욱 틀어진 모양새다.
임 실장과 주변 인사들은 최근의 야당 비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임 실장 측은 “선글라스는 약시가 있어 바깥 활동을 할 때 착용해 왔고 DMZ 방문은 비서실장 자격이 아닌 남북공동선언준비위원장 자격으로 간 것인데 왜 문제 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권의 한 인사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역할에 대한 야권과 청와대의 인식 차가 그 어느 때보다 큰 것 같다고 평가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야당은 과거처럼 청와대 비서실장이 ‘보이지 않는 손’, 즉 눈에 띄지 않으면서 역할을 하는 롤을 바라는 데 현 청와대는 전혀 다른 콘셉트의 비서실장을 그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인사는 “현 청와대는 비서실장을 비롯한 참모진에게 적극적인 외부 소통뿐만 아니라 능동적 자기 역할을 하는 사실상의 ‘보이는 손’ 역할을 주문하고 있다”며 “게다가 임 실장이 차기 총선 출마 등 정치권으로 복귀해야 하는 정치권 인사라는 점을 감안해 대통령도 일정 부분 자기 정치를 용인해 주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일각에선 야당의 ‘임종석 실장 때리기’가 본인에게 정치적으로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 청와대 한 인사는 “야당의 집중 견제는 보기에 따라 그만큼 위협적이라는 의미가 될 수 있다”며 “정치인이 논란의 한복판에 서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chsan@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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