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포커스]
-레몬법 4개월, 여전히 환불·교환 어려워
…“치명적 사고 위험 있는데 반복돼야 인정한다니”
‘주행 중 시동 꺼짐’ 환불 요구한 차주에게 타이어 2개 제안한 벤츠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 김 모 씨는 2018년 3월 ‘벤츠 AMG A45’를 구매했다. 벤츠 오너가 됐다는 기쁨도 잠시, 출고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차량에서 주행 중 시동 꺼짐과 이상 증상이 발생하면서 김 씨의 지난 1년은 공식 서비스센터를 오가느라 악몽이 돼버렸다. 김 씨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명성과 한성자동차의 서비스를 믿고 6000만원대 차량을 샀는데 시동 꺼짐 증상과 미흡한 애프터서비스(AS)로 1년간 고생하게 될 줄 몰랐다”며 “그러면 수입차를 사지 않았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 새 차 1년도 안 돼 ‘주행 중 시동 꺼짐’ 발생

경기도 수원에서 4월 16일 만난 벤츠 차주 김 씨의 하소연이다. 김 씨는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인 한성자동차를 통해 지난해 3월 차량(모델명 ‘AMG A45’)을 구매했다. 구매 초기 시동이 제대로 걸리지 않는 시동 불량 현상과 소음 발생 등을 겪었고 경기도의 한 지점 서비스센터를 통해 차량 수리를 여러 번 맡겼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시동 꺼짐 증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신호 대기 중 공회전 제한 시스템(스톱앤드고) 작동 후 재시동하고 출발하는데 5m 이동하고 잠시 정차했을 때 시동 꺼짐이 발생했다. 다행히 신호 대기 상태였으니 망정이지 주행 중 시동 꺼짐이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후 같은 증상이 또다시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번엔 주행 중 시동 꺼짐이었다. 주행 중 시동 꺼짐은 대형 사고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첫 시동 꺼짐 증상이 발생했을 때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주행 중 시동이 꺼져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김 씨는 신차를 구매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주정차 중 원인을 알 수 없는 시동 꺼짐과 시동 불량, 소음 등 이상 증상 등으로 차량을 8번(시동 꺼짐은 2번)이나 서비스센터에 입고시켰다. 하지만 차량을 수리하는 엔지니어에게서도 증상의 원인에 대해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구매 1년이 되기 전부터 주행 중 시동 꺼짐을 경험했기 때문에 안전 문제를 우려해 차량을 더는 몰 수 없다는 판단에 한국소비자원에 한성차를 고발했다. 구매한 모델이 단종돼 환불이나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원했던 김 씨에게 한성차는 ‘타이어 두 개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김 씨는 “그동안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소비자원에 고발하니 타이어 두 개를 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해왔다”며 “사람 목숨이 걸린 일인데 타이어로 사태를 무마하려는 것 같아 어이없어 거부했다”고 말했다.

한성차 관계자는 “고객의 소비자원 피해 접수 여부와 관계없이 불편하게 한 부분에 대해 제안한 것”이라며 “시동 장애 증상은 고압 펌프 이상으로 발생했고 해당 증상에 대한 서비스는 조치 완료했다”고 설명했다.

환불 또는 보상 요구에 대해 메르세데스-벤츠는 김 씨의 경우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에 따른 환불이나 교환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환불·교환은 차량 인도일로부터 12개월 이내에 중대한 결함으로 동일 하자가 3회째 재발하는 경우에 한한다는 설명이다. 회사 측은 김 씨가 시동 꺼짐과 관련해 서비스 받은 것은 한 번이라고 말했다.

또한 김 씨는 “사설 업체에서 진단받으니 공식 서비스센터가 수리 과정에서 전자제어장치(ECU) 기록을 사전 동의 없이 초기화했다”며 “자체 규정일 수도 있지만, 초기화하면 문제 발생시 소비자에게 굉장히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한성차는 차량을 제어하는 ECU의 점검과 업데이트는 서비스 진행에 필수적인 사안이라며 “문제 해결을 위한 진단 코드만 삭제했고 ‘초기화’는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했다.
‘주행 중 시동 꺼짐’ 환불 요구한 차주에게 타이어 2개 제안한 벤츠


◆ “레몬법 만능 아냐…제작사가 하자 입증해야”

김 씨는 2018년 차량을 구매해 올해부터 도입, 시행된 레몬법 적용 대상은 아니다. 레몬법은 자동차관리법 제47조 2항에 따른 자동차 교환·환불 제도를 말한다. 신차 구매 후 1년(또는 주행거리 2만km) 이내에 중대 하자로 2회(일반 하자는 3회) 이상 수리 후 동일 문제가 재발하면 제조사에 신차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할 수 있다.

김 씨는 자동차 수리에 대한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은 적용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규정인 ‘동일 하자에 대해 3회까지 수리했는데 재발한 이력이 있어야 함’은 충족하지 못한다. 시동 꺼짐 증상은 두 번 겪었으나 문제가 나타날 때마다 센터에 입고시키진 못했기 때문에 한성차에 남겨진 관련 수리 이력은 한 번뿐이다. 매번 센터에 가서 증거를 남기지 못하면 향후 보상, 법적 분쟁 등에서 사실상 소비자가 불리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윤철한 경실련 정책실장은 “타기 불안하다는 이유로 교환이나 환불을 요구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제작사에 관철하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주행 중 시동이 꺼졌다면 생명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굉장히 위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윤 실장은 또 “공정거래위원회 소비자 분쟁 해결 기준도 문제가 반복돼야 주장할 권리가 생기는데 사실 안전·생명과 직결된 문제에선 ‘두 번’이라는 게 없다”며 “‘단 한 번’이라도 굉장히 치명적일 수 있으므로 반복 여부와 상관없이 그 제품은 교환·환불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 씨 사례를 통해 국내에 더 강력한 레몬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올해 1월 1일부터 도입된 ‘한국형 레몬법’은 제조·판매사가 교환·환불에 대한 내용을 계약서에 자발적으로 반영하지 않으면 적용받을 수 없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특히 국내 레몬법은 해외 레몬법과 달리 강제성이 없어 아직 수입차 업체들의 레몬법 도입률은 저조한 상황이다.

수입차 업체 중에는 볼보가 가장 먼저 도입한 이후 BMW·도요타·재규어랜드로버·닛산 등이 레몬법을 수용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4월 3일 레몬법 적용을 결정하고 단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레몬법이 만능이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레몬법 시행으로 법이 소비자 쪽으로 조금 기울긴 했지만 현행법만 가지고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첨단 기술의 발달로 수많은 전자 장비가 장착되는 자동차는 이제 하나의 컴퓨터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 현상이 발생하는 원인과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고 입증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한 법률 전문가는 “컴퓨터가 다운됐을 때 그 원인을 찾기 어렵듯이 자동차 시동 꺼짐의 원인도 찾기가 쉽지 않다. 아마 제작사도 모르는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는 소비자가 시동이 꺼진 것만 증명하고 그 현상이 정상이라는 것은 제작사가 증명하도록 법이 바뀌어야 한다”며 “레몬법 도입에 만족하기보다 하자를 입증하는 책임을 자동차 제작사가 지도록 하는 게 궁극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ahnoh05@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1호(2019.04.22 ~ 2019.04.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