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여행 선호도가 높아지면서 전통 패키지여행의 수요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위기는 누군가에게 기회가 됐다. 시장의 변화를 먼저 읽은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은 이제 여행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끄는 신흥 강자로 떠올랐다. 마이리얼트립의 누적 투자액은 약 300억원, 그중 170억원은 올 초에 이뤄졌다.
여행 상품을 팔지만 여행사는 아니다. 이동건(33) 마이리얼트립 대표는 “유통하는 상품이 여행일 뿐 정체성은 마켓 플레이스”라며 “개발과 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테크 기업”이라고 말했다. 80여 명의 정규직 직원 중 정보기술(IT) 인력이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유다.
2012년 마이리얼트립이 문을 열 때만 해도 자유여행을 위한 플랫폼은 전무했다. 마이리얼트립은 초기에 자유여행자 현지 가이드 투어를 연결하는 사업 모델을 선보였다.
마이리얼트립의 가이드 투어는 상품보다 콘텐츠에 가깝다. 소믈리에와 함께하는 와인 농장 투어, 미술사 전공자와 함께하는 박물관 투어, 스탠퍼드생과 함께하는 캠퍼스 투어까지.
전문 가이드가 아닌 현지 교민이나 전문가들이 만든 특색 있는 프로그램은 마이리얼트립만의 경쟁력이 됐다. 이후 액티비티 티켓, 레스토랑 예약까지 판매 상품을 확장했다. 지난해 숙박과 항공까지 론칭하며 여행의 모든 것을 해결하는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마이리얼트립은 이 대표의 둘째 창업이다. 이 대표는 대학 3학년 때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으로 첫 사업을 시작했지만 흐지부지 끝맺었다.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취업하거나 언제든 학교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다.
“첫 창업을 접고 돌이켜 보니 얻은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진지함 없이 임했던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하기로 마음먹었죠.”
둘째 창업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4학년생이 된 이 대표에게 여행이라는 사업 아이템을 추천한 사람은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다. 대학생과 강연자로 만났던 이 두 사람은 초기 투자자와 스타트업 대표로 연을 이어 갔다.
대출도 받아보지 않은 대학생에게 스타트업 생태계는 생소하기만 했다. 그때 프라이머와 본엔젤스 등 성공한 선배 창업가들이 초기 투자를 진행하고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며 이 대표를 도왔다.
◆여행사 아닌 IT 기업
“첫 창업을 통해 사업은 생각보다 시장이 많은 것을 좌우한다고 느꼈어요. 창업자가 아무리 의지가 넘치고 구성원들이 모두 새벽까지 일한다고 하더라도 시장의 평균 성장률을 이기기 어렵다고 생각했죠.” 이 대표가 여행을 사업 아이템으로 정한 이유다.
마이리얼트립은 여행업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루 동안 마이리얼트립에서 거래되는 금액만 10억원이 넘는다. 이대로라면 5월 월 거래액은 300억원을 거뜬히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월 거래액 200억원을 돌파한 지 4개월 만의 성과다.
이 대표는 “월 거래액 100억원을 달성하기까지 창업 후 2018년까지 6년이 걸렸지만 올 1월 거래액 200억원을 넘겼고 4개월 만에 월 거래액 300억원 돌파를 앞두고 있다”고 말했다.
마이리얼트립은 현재 80개국 680여 개 도시에서 현지 가이드, 액티비티, 입장권, 교통패스 등 1만8000개 이상의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여행업계에서 가장 많은 투어와 액티비티 상품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마이리얼트립의 미래 수익 모델은 ‘크로스 셀(교차 판매)’이다. 이를 위해 작년 5월 국제항공운송협회를 통해 항공권 판매 자격을 획득하면서 최저가 항공권 판매에 매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항공사업실을 신설하고 ‘스카이스캐너’ 최형표 한국 총괄을 영입, 항공권 예약과 프로모션 강화에 나섰다. 항공권 최저가 판매를 통해 투어나 액티비티 상품, 숙박 등으로 연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항공권 최저가 판매가 가장 강력한 마케팅입니다. 사람들은 항공권을 살 때 가격만 따지거든요. 항공권을 저가로 팔아 고객을 유입시키고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른 상품을 교차 판매하는 거죠.” ◆교차 판매로 수익 확대
항공권은 마진이 거의 남지 않는다. 가격 비교가 쉬워지면서 소비자들이 모두 최저가 항공권으로 몰리기 때문이다. 다른 여행사들은 항공권과 입장권 등의 가격을 앞다퉈 낮추며 출혈경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마이리얼트립에는 콘텐츠로 무장한 투어 프로그램과 액티비티가 있다.
“저가 출혈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똑같은 상품을 팔기 때문이에요. 중개 비즈니스를 하는 마켓 플레이스의 숙명이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남들이 팔지 않는 것을 팔아야 해요. 마이리얼트립에만 있는 가이드 투어나 한인 민박 등 차별화된 콘텐츠를 늘려가고 있는 이유입니다.”
현재 마이리얼트립 거래액의 70%는 투어 프로그램이 차지한다. 이제 막 시작한 항공과 숙박 거래액은 아직 크지 않다. 하지만 교차 판매율은 30%에 이른다.
교차 판매의 핵심은 항공권을 통해 다른 데이터를 유추하고 정교한 추천을 하는 데 있다.
“어느 지역에 명 몇이, 어떤 비행기와 어떤 좌석으로 가는지 알 수 있다면 숙소와 투어 프로그램의 정교한 추천이 가능해요. 상품 개수가 워낙 많다 보니 소비자들이 일일이 비교하기 번거롭기 때문에 데이터를 추출해 정확하게 교차 판매하는 게 가장 큰 성장 전략입니다.”
이 대표는 교차 판매를 위해 기술 역량을 집약했다.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마이리얼트립에서 가장 중요한 조직 문화다. IT 인력 중 데이터만 분석하고 활용하는 ‘그로스팀’과 교차 판매에만 집중하는 ‘크로스셀팀’을 통해 교차 판매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전사에 걸쳐 데이터 활용 능력 교육을 실시하고 직무에 상관없이 모든 의사결정에 데이터를 뜯어보고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이리얼트립은 5월 하루 거래액 10억원을 돌파하면서 올해 목표였던 연 거래액 3500억원을 상향 조정했다. 올해 170억원을 투자받으며 성장을 위한 실탄도 확보했다.
하지만 익스피디아와 트립닷컴 등 글로벌 온라인 여행 업체(OTA)도 최근 항공·숙박·현지투어를 모두 갖춘 종합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글로벌 OTA와의 과잉 경쟁을 우려하는 기자의 질문에도 이 대표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과잉 경쟁이라는 표현은 시장의 성장이 멈추고 파이를 나눠 가질 때 쓰는 말인데 자유여행 시장은 해당되지 않습니다. 국내 여행 시장은 여전히 성장하고 있고 자유여행 트렌드는 금방 꺼져버릴 유행이 아니에요. 가끔 국내가 너무 작은 시장이 아니냐고 묻는 이들이 있는데, 올해 출국자가 3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규모로 따지면 40조원에 달하는 무궁무진한 시장이죠.”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할 때 강점도 뚜렷하다. ‘현지인에 의한 한국어 가이드 투어’는 마이리얼트립만의 무기다. 한국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가장 적합한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 대표는 “수치에서도, 사람들의 인식에서도 국내 최고의 자유여행 플랫폼으로 거듭나는 것이 목표”라며 “안정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기업공개(IPO)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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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4호(2019.05.13 ~ 2019.05.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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