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업은행 “지금은 제값 받을 수 없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이르면 올해 하반기, 늦으면 내년 상반기로 예상됐던 대우건설 매각 추진이 조금 더 지연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대우건설의 최대 주주인 KDB산업은행(이하 산업은행)은 구조조정을 전문으로 추진하기 위해 설립한 자회사 KDB인베스트먼트에 보유하고 있던 지분 50.75%를 넘기며 대우건설 매각 의지를 내비쳤지만 매각(가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대우건설의 실적이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면서 매각 시점을 미루는 분위기다.
KDB인베스트먼트 측은 대우건설의 실적 부진에 따른 가치 하락에 지금 매물로 내놓을 경우 “제값을 받을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KDB인베스트먼트 관계자는 “산업은행으로부터 대우건설 지분을 넘겨받을 때부터 매각에 대한 날짜를 정해 놓지 않았고 시기도 정해진 것이 없다”며 “하지만 현시점에서 대우건설의 가치가 시장에서 저평가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한 만큼 급하게 서두르기보다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회사로 만든 후 매각 시점을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기업 가치 급락, 6.6조원 → 3.2조원 → 1.6조원 당초 시장의 예상과 달리 대우건설의 매각 시기가 늦춰진 이유는 역시 부진한 실적 때문이다. 당장 매각에 나설 경우 제값을 받기 어렵다.
대우건설은 2019년 1분기에 연결 기준으로 매출 2조309억원, 영업이익 985억원을 올렸다. 2018년 1분기보다 매출은 23%, 영업이익은 46% 줄었다. 1분기 연결 기준 순이익은 494억원으로 1년 전보다 56% 급감했다.
사업부문별로 1분기 매출을 살펴보면 주택 사업 1조2633억원, 토목 사업 3506억원, 플랜트 사업 3156억원, 기타부문 1014억원 등이다. 1년 전보다 주택 사업은 17.2%, 토목 사업은 13.1%, 플랜트 사업은 49.3% 줄었다. 기타부문은 큰 변동이 없었다.
대우건설은 2019년 2분기에도 주력 사업부문에서 모두 매출이 줄며 시장의 기대에 못 미치는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는 올해 2분기 대우건설의 영업이익은 1207억원으로 전년 동기(1617억원) 대비 25.35%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부진한 실적은 주가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고 곧바로 매각 가격에도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우건설의 현재 주가(7월 24일 종가 기준)는 4370원이다. 2010년 산업은행이 인수할 당시 주당 평균 매입 가격이 1만5069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 주가는 71% 가까이 급락했다. 당시 산업은행은 대우건설 인수에 3조2000억원을 투입했다.
통상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매각 가격은 업종 전망, 재무 상태, 경영권 프리미엄 등 여러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긴 하지만 기준점이 되는 것은 역시 기업 가치를 나타내는 주가다.
대우건설의 주가 하락이 매매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지난해 있었던 매각 시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매각을 진행할 때 애초 주당 1만원 이상 받아 2조원대에서 매각을 성사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호반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할 때 주가가 워낙 낮아 1조6242억원에 만족해야 했다. 당시 매각 가격은 대우건설 주가였던 6000원 초반대에 경영권 프리미엄 25% 정도를 얹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3조2000억원에 대우건설을 사들였던 산업은행 측은 ‘헐값 매각’ 논란이 제기되는 와중에도 매각을 성사시키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3000억원에 이르는 해외 부실채권이 알려지면서 결국 무산됐다.이와 동일한 기준으로 산업은행이 지금 당장 대우건설을 매각할 경우 지난해 매각 추진 때보다 주가가 약 27%(6000원→4370원) 떨어져 경영권 프리미엄 25% 정도를 더한다고 하더라도 1조원을 간신히 넘기는 가격에 만족해야 한다.
이와 별개로 대우건설의 가치가 M&A 시장에 나올 때마다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대우건설이 처음 M&A 시장에 나온 것은 2006년으로 당시 금호아시아나그룹은 6조6000억원에 대우건설을 사들였다.
하지만 4년 뒤 다시 매물로 나온 대우건설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3조2000억원에 산업은행에 넘어갔고 지난해에는 또 반 토막 난 1조6242억원에 매각이 추진됐었다.
◆ 대대적 구조조정, “선 체질 개선, 후 매각”
이 밖에 시장에서는 대우건설 매각이 지연되는 이유로 마땅한 인수 기업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도급액이나 자산 규모, 국내외 네트워크 등을 따졌을 때 대우건설의 몸집을 소화할 만한 업체가 몇 없는 데다 비교적 덩치가 작은 곳이 인수에 나설 경우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인수 당시와 올 초 호반건설이 인수에 나섰을 때 지적된 ‘새우가 고래 삼키기’ 등의 논란이 재연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규제를 통해 부동산 시장 안정을 꾀하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나마 대우건설의 실적을 견인하는 것은 국내 주택 사업인데 현 주택 시장은 연달아 나오는 규제책으로 피로감이 쌓여 있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이 대우건설 인수에 뛰어들 가능성이 낮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몇 년 동안 이어져 오는 정부의 고강도 규제와 갈수록 어려워지는 해외 건설 사업으로 최소한 건설업계에서는 대우건설을 인수할 만큼 여력이 있는 곳이 없어 보인다”며 “설사 여력이 있다고 해도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섣불리 나서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 인수 기업을 찾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국의 친환경 건설 기업 엘리온자원그룹과 중국건축공정총공사(CSCES) 등 몇몇 중국 건설사들이 대우건설 인수에 적극적이었지만 올 들어선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산업은행과 중국 기업의 만남을 주선했던 한 기업인은 “지난해만 해도 대우건설 인수를 검토하고 있는 엘리온자원그룹 등 몇몇 중국 기업으로부터 산업은행 측 고위 임원을 만나게 해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받았지만 올 들어서는 요청이 전혀 없다”며 “미·중 무역 전쟁에 따른 중국 경기 둔화와 부동산 시장 하강 추세 때문에 중국 건설사들도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처럼 대우건설 매각이 대내외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처하자 산업은행은 KDB인베스트먼트를 앞세워 대우건설의 체질을 바꾸는 한편 주가를 끌어올린다는 방안이다. 재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사옥을 옮기는가 하면 지난해 모든 사업부문에서 줄곧 인력을 줄여 나가고 있다.
또 최근엔 침체된 주택 시장에서 소비자를 사로잡기 위해 아파트 브랜드 푸르지오를 새롭게 리뉴얼하기도 했다. 또한 대우건설은 기존 부동산 자산(빌딩)을 매각해 유동성 확보에 나설 예정이다.
해당 빌딩은 앞서 대림산업의 플랜트사업부가 이전을 확정한 송도 IBS타워다. 2011년 8월 준공된 IBS타워는 임대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으면서 책임 임대차 준공 계약을 한 대우건설이 연간 100억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대신 지불해 왔다.
인력도 감축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대우건설 직원 수는 2017년 말 5357명에서 2018년 말 4910명으로 1년 새 447명이 줄어들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5호(2019.07.29 ~ 2019.08.0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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