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이건희①
[내가 본 이건희]그는 호모 파베르가 아니라 호모 픽터였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정리)] 이건희 회장은 내 눈에 매우 독특하게 비쳤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사람이라면 비범한 것은 당연하겠지만 활달해 보이지 않았다. 능란하고 세련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섬세하고, 치밀하고, 스스로 하는 듯한 그 점 때문에 독특했다. 창조적 감성. 그것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이런 내 관점이 빗나간 것이라면 몹시 곤혹스러울 것이지만.
- 박경리 작가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중에서

이 회장은 조용히 앉아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동행자들과도 내내 한마디 말을 나누는 것을 보지 못했다. 처음 만났을 때와 같이 깊은 침묵 속에서 울려오는 시계추 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기업인이 아니라 외롭고 깊은 침묵 속에서 끝없이 무엇인가를 창조해 가는 과학자나 예술가의 한 단면을 보았다. “그는 호모 파베르(Homo faber:기술의 인간)가 아니라 호모 픽터(Homo Pictor:그림 그리는 인간)이다”라고….
-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중에서

“과거에서는 수만 명의 노예가 1명의 군주를 먹여 살렸지만 앞으로는 1명의 천재가 수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가 옵니다.” 이 회장은 어눌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평소 말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는 내가 듣기에도 깜짝 놀랄만한 촌철살인의 생명력이 있다. 식자들이 책에서 읽은, 죽은 말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 쉬는 말이다. 나는 삼성이나 이 회장이 모두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회장의 미래를 바라보는 선견력은 놀랍도록 정확하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이 회장이 좀 더 우리 곁에 가까이 오고 우리 사회의 친구가 됐으면 하는 것은 나 혼자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 송자 전 연세대 총장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중에서

고등학생 이건희 군은 근엄하기는커녕 엉뚱하고 싱거운 친구였다. ‘미국의 차관을 많이 들여와야 미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우리 안보가 튼튼해진다’, ‘공장을 지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어떤 웅변도보다 애국하는 길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사실상 나라를 좀먹는 존재다’ 등등 내가 상상도 못했던 분야에 대해 그는 특유의 싱거운 표정으로 샘솟듯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줬던 것이다.
나이를 먹고 나서도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다. 고집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가 입 밖에 낸 말을 주워 담거나 바꾸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시시하게는 어느 콧대 높은 여학생과의 데이트에서 놓고 걸었던 내기에서부터 크게는 사업 구상에 이르기까지 문자 그대로 일수 불퇴였다. 그래서 아버지를 하느님만큼이나 존경하면서도 노여움을 사서 물러났던 사람들 중 여럿이 그의 고집 때문에 재기용되기도 했다.
와세다대에 다니다 방학을 맞아 돌아왔을 때다. 손수 운전으로 드라이브를 즐기던 우리가 양화대교에 닿았을 때다. “이게 우리 기술로 만든 다리다. 대단하재?” “이눔아. 생각 좀 하면서 세상을 봐라. 한강은 장차 통일되면 화물선이 다닐 강이다. 다리 한복판 교각은 좀 길게 잡았어야 할 것 아이가?” 실로 괴이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 홍사덕 전 의원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중에서

이 회장은 스포츠 정신을 기업 경영에 접목하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 마인드를 스포츠에 적용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사람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회장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전 IOC 위원장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중에서
[내가 본 이건희]그는 호모 파베르가 아니라 호모 픽터였다
[한경비즈니스 이건희 회장 추모 특별판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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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0호(2020.10.26 ~ 2020.11.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