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리포트Ⅱ]
- 한국 채식 인구 지난해 기준 150만 명
- 비건 식품 시장 2025년 241억 달러로 성장
먹고 입고 탈것까지…지금은 ‘비거노믹스 시대’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채식주의자(vegan·비건)를 대상으로 한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2~3년 전만 해도 일부 식음료에 한정됐던 비건 관련 산업은 이제 패션·뷰티·생활용품을 비롯해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 산업까지 영역이 확대됐다. 이제는 비건에 경제(economics)를 합친 ‘비거노믹스’라는 비즈니스 신조어까지 나온 상황이다.

비건 산업의 성장은 수치로도 나타난다. 국제채식인연맹(IVU)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채식 인구는 1억8000만 명에 이르고 2008년 15만 명에 불과했던 한국의 채식 인구도 지난해 기준 150만 명(한국채식연합 조사)으로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비건 관련 산업의 성장은 앞으로 한층 더 탄력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을 겪으면서 사람들이 환경의 중요성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 필수로 환경을 생각해야 한다는 ‘필환경’이 주목 받으면서 자연과 동물 보호와 재활용 등 전반적 생활 습관의 변화를 포괄하는 ‘비거니즘’ 트렌드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먹고 입고 탈것까지…지금은 ‘비거노믹스 시대’
◆ 대체육 시장 급성장…동원·롯데·CJ도 가세

비거노믹스에 가장 열을 올리는 산업은 단연 식품업계다. 글로벌 컨설팅 업체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전 세계 채식 식품 시장 규모는 2018년 기준 약 127억 달러였는데 2025년에는 약 241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식품업계에서도 가장 치열한 품목은 대체육 시장이다. 글로벌 기업들이 저마다의 연구·개발(R&D)을 통해 대체육을 선보이고 있다. 미국 버거킹·KFC·맥도날드 등 주요 패스트푸드점에서 대체육을 기반으로 한 메뉴를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관련 업계와 KOTRA에 따르면 세계 대체육 시장 규모는 2019년 47억 달러 규모로 2023년에는 60억 달러 규모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가별로는 미국이 약 10억 달러(21.0%) 규모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 영국 6억1000만 달러(12.9%), 중국 2억8000만 달러(6.0%), 독일 2억6000만 달러(5.5%), 일본 2억2000만 달러(4.7%) 등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한국은 2000만 달러로 시장 규모가 작다.

대체육 유형별로는 식물성 대체육의 한 유형인 콩류 비율이 57.0%로 가장 크고 곡물류가 19.5%, 식물성 단백질류가 13.5%, 단세포 단백질류(균류·조류)가 9.9%를 차지하고 있다.

미국의 대체육 시장의 주요 업체로는 식물성 원료 기반의 대체육 브랜드인 비욘드미트, 콩류 기반의 냉동 대체육 업체인 모닝스타팜스, 식물성 대체육 기반의 가르댕, 전통적인 프리미엄 대체육 기업인 필드로스트가 있다.

영국의 대체육 시장은 균류 단백질 제품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영국 대체육 시장 규모는 세계 2위로 2016년부터 꾸준히 증가해 2019년에는 전년 대비 6.4% 성장한 6억1000만 달러 규모를 기록했고 2023년에는 7억7000만 달러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의 대체육 시장은 미국과 달리 2019년 기준 균류 단백질 식품이 2억8000만 달러(45.3%) 규모로 전체 시장의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곡물류가 1억5000만 달러(24.2%), 식물성 단백질류가 1억 달러(15.7%), 콩류가 9000만 달러(14.8%)를 기록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대체육 제조업체는 퀀이 있고 대체육 제품 중 현재 유일하게 균류 단백질인 마이코프로틴(mycoprotein)으로 제조한 대체육을 판매한다.
먹고 입고 탈것까지…지금은 ‘비거노믹스 시대’
한국의 대체육 시장은 이제 막 시작 단계다. 한국에서 식물성 대체육을 제조·유통하는 업체는 롯데푸드·롯데지알에스·롯데마트·동원F&B·세븐일레븐·CU·사조대림 등이 있고 아직 제조·유통을 진행하지는 않지만 시판을 목적으로 R&D 단계에 있는 기업은 CJ제일제당·풀무원·SPC삼립 등이다.

롯데그룹은 롯데중앙연구소를 중심으로 식물성 대체육을 개발하며 롯데그룹 계열사들에 제품을 공급·유통하고 있다. 롯데중앙연구소는 2020년 3월 관련 업체들과 식물성 대체육 R&D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바 있다.

롯데푸드는 ‘엔네이처 제로미트 너겟’과 ‘엔네이처 제로미트 가스’를 온라인몰과 대형마트에 유통시키며 1년간 누적 판매량 약 6만 개를 달성했다. 롯데지알에스의 롯데리아는 한국 버거 프랜차이즈 최로로 대체육 버거 ‘미라클 버거’를 출시하며 2020년 5월 ‘미라클 버거’ 누적 판매량 약 90만 개를 기록했다.

동원F&B는 미국 대체육 시장을 주도하는 업체인 비욘드미트와 가장 먼저 독점 공급 계약을 체결해 ‘비욘드버거’를 백화점과 온라인 판매처 중심으로 판매하며 한국에서 약 8만2000개의 패티를 판매했다.

CJ제일제당은 2021년 대체육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충북 진천 식품 통합 생산 기지를 통해 R&D 기술을 개발 중이다.

SPC삼립은 올해 3월 미국 푸드테크 기업 ‘이트저스트(Eat JUST)’ 제품 한국 독점 생산·판매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SPC프레시푸드팩토리, 이트저스트의 ‘저스트 에그’, ‘저스트 마요’, ‘저스트 드레싱’ 등을 제조해 독점 유통할 계획이다. 이 밖에 프라이드·패티·오믈렛 등 제품 라인업 확장 목표로 비건 제품을 강화할 방침이다.
먹고 입고 탈것까지…지금은 ‘비거노믹스 시대’
◆ 글로벌 시장 선점하는 비건 라면

한국에서 생산되는 비건 식품 중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품목은 라면이다. 농심에 따르면 ‘야채라면’의 수출용 제품인 ‘순라면’의 해외 매출은 2016년 40억원에서 2017년 55억원, 2018년 70억원, 지난해 약 85억원을 달성하며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육류나 생선을 사용하지 않고 양파·마늘·생강 등 채소로 개운한 맛을 낸 제품이다. 영국비건협회 ‘비건소사이어티’에 비건 제품으로 등록됐고 현재 중동·파키스탄·미국·유럽 등에서 팔리고 있다.

삼양식품과 오뚜기는 세계 최대 채식주의 국가인 인도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인도는 모든 식품에 베지테리안 인증 마크를 부착해야 할 정도로 채식에 엄격한 나라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8월부터 ‘맛있는 라면’의 비건 제품을 인도·뉴질랜드·미국·영국·캐나다·독일·스위스·호주·네팔 등 13개 국가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젓갈을 사용하지 않은 ‘김치라면’ 비건 제품도 함께 수출 중이다.

삼양식품은 비건 라면 생산을 위해 힌국 공장에 전용 생산 라인을 구축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해외 시장에서 비건 라면으로 거둔 매출은 5억원 수준이다. 향후 삼양라면·불닭볶음면·김치라면·스리라차볶음면 등으로도 비건 라인을 확대할 방침이다.

오뚜기는 2018년 3월부터 ‘진라면’의 비건 제품인 ‘베지진라면’을 인도에 수출 중이다. 매년 매출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고 현지화를 통해 판매를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해 11월에는 10가지 채소를 사용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라면 ‘채황’을 선보이기도 했다. 채황은 지난해 12월 비건 소사이어티에 비건 제품으로 등록됐다.

중소 라면 제조 기업들도 비건 라면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새롬식품은 현미채식라면과 채식비빔면 등을, 삼육은 우리밀 채식 감자라면과 우리밀채식 감자짜장면 등을 출시해 판매하고 있다.

◆ 우리가 몰랐던 비건 맥주 시장

주류·음료 시장에서도 비건의 바람은 거세게 불고 있다. 특히 맥주 시장이 치열하다. 흔히 맥주는 곡물 ‘맥아’를 발효해 만들기 때문에 당연히 비건 제품일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물론 맥주를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는 맥아·물·홉·효모 등으로 동물성 재료는 전혀 혼합되지 않는다. 하지만 양조 과정 중 침전물을 제거할 때 물고기의 부레풀이 사용된다.

비건에게는 맥주를 만드는 과정에 들어가는 동물성 재료를 가볍게 넘어갈 수 없어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이는 맥주뿐만 아니라 와인을 비롯한 다른 음료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글로벌 유명 맥주 기업은 비건을 위한 맥주를 만들기 위해 256년 동안 이어 온 레시피를 바꾸기도 했다. 바로 기네스맥주다. 기네스맥주는 2015년부터 생산하는 맥주의 양조 과정에서 부레풀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 밖에 비건을 위해 부레풀을 사용하지 않는 맥주로는 한국 카스(CASS)가 있고 미국 버드와이저, 일본 아사히맥주, 중국 칭따오맥주, 태국 싱하맥주, 필리핀 산미구엘맥주 등이 있다.

비건을 위한 와인도 출시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하이트진로가 내놓은 ‘제라르 베르트랑 나뚜라에’다. 제라르 베르트랑 나뚜라에는 남프랑스 와인의 명가 ‘제라르 베르트랑’이 최근 시대 흐름에 맞춰 자연 친화적 콘셉트로 내놓은 와인이다. 포도 재배부터 와인의 병입까지 모든 과정에서 동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았다.

음료 시장 역시 비건 열풍이 거세다. 한국야쿠르트는 최근 마시는 식물성 단백질 ‘하루식단 그레인’을 출시하며 비건 푸드 시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루식단 그레인은 한국비건인증원으로부터 비건 인증을 받았다. 동물 유래 원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동물성 원재료와의 교차 오염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를 거쳤다. 식물성 원료만 사용해 유당불내증이 있거나 채식주의자들도 안심하고 섭취할 수 있다.

베지밀을 판매하는 정식품은 식음료 제품 3종에 대해 한국비건인증원의 비건 인증을 획득했다. ‘건강담은 야채가득 V19’, ‘건강담은 야채과일 V19’와 국내산 농산물로 만든 생식 제품 ‘리얼 자연담은 한끼생식’ 등이다.
먹고 입고 탈것까지…지금은 ‘비거노믹스 시대’
◆ 바르고 입는 채식 비건 패션·뷰티

패션·뷰티업계도 친환경, 윤리적 소비 등 ‘지속 가능한 소비’를 추구하는 고객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가죽·모피·울 등 동물성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패션’ 재활용품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패션’ 등을 선보이며 기업들도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는 추세다.

겨울철에 많이 소비되는 롱패딩 1개에는 오리 20마리의 털이 들어가는데 오리털을 대신해 초극세사로 만든 신슐레이트·프리마로프트·웰론 등의 대체재로 패딩을 만든다.

이러한 대체재들은 얇은 두께로 가벼우면서도 갑절의 보온성을 갖는 신소재들이다. 동물 학대와 관련된 행위 없이 생산한 제품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고안된 RDS(Responsible Down Standard) 마크는 살아 있는 동물의 털을 뽑지 않고 윤리적인 방법으로 털을 채취해 만든 제품에 발행된다. 한국에서는 ‘프라우덴’이 최초로 RDS 인증을 받았다.

합성섬유 외에도 우유 살균 과정에서 나오는 단백질이나 오렌지 껍질, 파인애플 이파리나 껍질(피나텍스)을 활용한 친환경 소재로 옷을 만드는 기업도 생겨났다. 이러한 인조 모피를 에코 퍼(Eco Fur) 또는 비건 퍼(Vegan Fur)라고 부른다. 인조 모피 제품의 판매량은 2016년부터 30~40%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구찌나 프라다 같은 명품 브랜드는 모피 사용 중단을 선언했다. ‘네이티브 슈즈’는 녹조를 이용해 신발을 제작하는데 1족에 사용되는 녹조는 80리터의 물을 정화할 수 있는 양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환경 친화를 넘어 환경을 구하는 소비 트렌드가 자리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 패션업계에서도 이런 비건 패션에 대한 관심을 보이고 친환경 아우터를 선보이고 있다. 특히 간편하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는 플리스 제품이 MZ세대 사이에서 뉴트로 패션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매년 다양한 브랜드에서 플리스 점퍼가 출시된다. 올해는 환경을 생각한 친환경 플리스가 대세다.

뷰티업계 역시 비건의 바람이 거세다. 비건 뷰티는 ‘노(NO) 동물 실험, NO 동물성 원료’를 내세운다. 비건 뷰티는 나아가 생태계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성분 개선 등의 클린 뷰티까지 겸하고 있다. 비건 뷰티에 사용되는 에센스는 모두 식물성 정제수를 사용하며 메밀·사과·장미·대나무 등의 재료를 이용한다.

비건 뷰티와 흔하게 혼동하는 개념 중에는 크루얼티 프리(Cruelty Free)와 오가닉 뷰티(Organic Beauty)가 있다. 크루얼티 프리는 동물 실험을 하지 않은 제품이기는 하지만 우유·라놀린·꿀·달팽이 추출물이 들어가기도 해 정확히는 비건 제품이라고 할 수 없다. 오가닉 뷰티는 화학방부제, 인공 향료, 인공 색소 등을 사용하지 않는 제품으로, 친환경이라는 큰 틀에서는 비슷하지만 비건 뷰티와는 엄연히 다른 개념이다.

비건 뷰티 산업은 연평균 6.3%씩 성장하고 있다. 비건 뷰티를 내세우는 화장품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비건 제품을 식별하기 위해 비건 제품에는 비건 인증 마크를 부착한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비건소사이어티’, 프랑스의 ‘EVE’, 미국의 ‘PETA’ 등이 있다.

비건 뷰티를 브랜드의 가치로 내세우는 ‘러쉬’는 화장품의 성분만 착한 게 아니다. 폴리프로필렌이란 성분을 사용한 제품 용기는 재활용이 가능하고 용기에서 나올 수 있는 환경 호르몬과 유해 물질에서 자유롭다. 그뿐만 아니라 용기를 모아 오면 다른 제품으로 교환해 주기도 하며 수거한 용기는 재사용된다.

박스의 완충재는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고 포장지는 플라스틱 병을 재활용한 것으로 업사이클링이 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색감으로 만든다. 한국에서는 ‘아모레퍼시픽’이 비건 브랜드로 ‘이너프 프로젝트’를 론칭, 신제품 7종 모두를 비건 뷰티 제품으로 선보였다.

◆ 비건 자동차가 달린다

비건은 이제 음식과 패션을 넘어 이제 자동차 분야까지 번지고 있다. 비건 자동차는 실내를 마감할 때 천연 가죽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인조 가죽’을 사용하거나 제조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효율성과 탄소 배출량 등을 고려해 친환경적으로 만들어진 자동차를 의미한다.

대표 사례로는 차 내장재로 케나프를 쓴 BMW i3가 있다. 아열대성 식물인 케나프는 재배할 때 이산화탄소와 이산화질소 흡수력이 매우 높고 기존 플라스틱 소재보다 가벼워 친환경성을 극대화한다. 이 밖에 벤츠·벤틀리·테슬라 등 글로벌 자동차 기업들이 앞다퉈 비건 자동차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2009년부터 친환경 소재 연구를 시작했다. 아이오닉 하이브리드 모델 도어 트림에도 사탕수수·나무·화산석 등 천연 재료를 사용했다.

넥쏘에는 더 많은 친환경 소재를 활용했다. 미생물에서 추출한 바이오 플라스틱을 대시보드에 적용하고 식물성 인조 가죽으로 시트를 제작했다. 제네시스는 신형 모델의 시트 원료 역시 재활용이 가능한 고기능성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의 친환경 행보는 사내 스타트업에서 이어지고 있다. 사내 벤처 지원 프로그램인 ‘H스타트업’으로 출발한 ‘마이셀’은 버섯 균사체로 가죽을 만들고 있다.

cwy@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306호(2020.12.07 ~ 2020.12.13)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