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현지 시간) ITC 영업비밀 침해 최종 판결 ‘운명의 날’
-ITC 판결 기점으로 총수 담판 가능성…합의 급물살 전망도

구광모 LG 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 각 사 제공
구광모 LG 회장(왼쪽)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 각 사 제공
LG에너지솔루션(전 LG화학 배터리사업 부문)과 SK이노베이션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USITC)의 최종 판결을 앞두고 양 사의 합의 가능성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ITC의 최종 판결은 2월 10일(현지 시간) 나올 예정이다.

3년째 이어지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에 대해 최근 정세균 국무총리는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의금 규모에 대한 양 사 입장 차이가 커서 미 ITC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 극적 합의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업계에 따르면 ITC 예비 판결에서 승소해 다소 유리한 입장에 놓인 LG에너지솔루션은 2조 원 이상을, SK이노베이션은 수천억 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미국 영업비밀 보호법 판례에 따라 영업비밀 침해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얻었다고 가정되는 수주 피해, 그동안의 연구·개발(R&D) 비용 등을 근거로 합의금을 산정해야 한다고 본다. 이에 대해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다고 맞서고 있으므로 그동안 양 사의 협상은 공회전을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ITC 최종 판결, 평행선 달리는 LG·SK 협상의 가이드라인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이 무한경쟁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경쟁사들과 격차를 벌리기 위해 속도를 내야 하는 만큼 장기적인 리스크를 수반하는 소송전보다 빠른 합의가 양 사 모두에게 이로운 것은 분명하다. ITC 최종 판결 이후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있으나 양 사 모두 합의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에는 공감하고 있다. ITC 판결 내용을 토대로 양 사가 합의금을 산정한다면 배임 문제에 휘말릴 우려도 상당수 덜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에 유리한 예비 판결이 나와 있지만 글로벌 생산 거점과 연구개발 등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야 하는 시기에 SK이노베이션과의 소송전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할애하는 것은 LG에너지솔루션에도 부담이 되는 상황이다.

2020년 글로벌 배터리 시장 점유율에서 공격적인 증설을 단행한 중국 CATL에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내준 LG에너지솔루션은 설비 투자를 위한 대규모 자금을 신속하게 마련하기 위해 기업공개(IPO) 일정도 앞당기고 있다. 당초 2022년 IPO가 전망됐던 LG에너지솔루션은 필요한 자금을 적기에 조달하기 위해 패스트트랙(신속 심사) 제도를 통해 이르면 8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할 것으로 알려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3년까지 배터리 생산 능력을 현재의 2배가 넘는 260GWh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제1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SK이노베이션이 미국 조지아주에 짓고 있는 전기차 배터리 제1공장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만약 SK이노베이션에 불리한 결과가 나온다면 사실상 미국 내 전기차 배터리 사업이 불가능해진다. 미국은 전기차 배터리 시장 선점을 위해 중요한 전략 시장이다. 유럽, 중국과 더불어 세계 3대 전기차 시장으로 친환경 정책 기조의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으로 전기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에서 SK이노베이션이 불리한 판정을 받는다면 3조 원을 들여 짓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 배터리 제1·2공장 등 그동안 해왔던 미국 투자가 무용지물이 된다.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제1공장은 2022년 1분기, 제2공장은 2023년 1분기부터 각각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SK이노베이션이 2022년 초부터 미국 조지아주 공장을 가동하려면 최대한 이른 시일 내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영업비밀 침해 여부에 대해 양 사가 협상의 기준점으로 삼을 수 있는 공신력 있는 기관의 법적 판단이 나온다면 합의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ITC 판결 이후 60일 이내 양 사가 합의할 경우 판결에 따른 명령을 뒤집을 수 있다. 업계에서는 ITC 최종 판결을 기점으로 양 사가 합의에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것으로 보고 있다.
LG, 中 CATL에 1위 추월 허용…SK, 美 3조 투자 물거품 될라
K배터리 글로벌 리더 지위 ‘비상’

‘제2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는 양 사 성장을 견인하는 중요한 미래 사업의 핵심인 만큼 업계는 불확실성 해소를 위해 결국 그룹 총수들이 직접 나서는 것만이 사태를 푸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앞서 2019년 9월 산업통상자원부의 중재로 양 사 최고경영자(CEO)인 신학철 LG화학 부회장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이 각사 대표 자격으로 회동했으나 입장 차이만 확인했을 뿐 합의에 진전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한상공회의소 차기 회장으로 추대된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대한상의 회장에 취임하기 전 구광모 LG 회장을 만나 배터리 문제에 대해 대승적인 합의를 끌어낼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019년 4월부터 시작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소송전은 배터리 영업비밀과 특허를 둘러싼 첨예한 대립과 합의금 규모에 대한 입장 차이로 햇수로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양 사가 그동안 소송 관련 비용으로 투입한 비용은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패권 경쟁 속에서 한국 기업 간 소송으로 양 사의 사업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배터리산업의 글로벌 리더인 한국 기업들의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경쟁업체들은 이미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K 배터리’를 맹추격하며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2019년 세계 배터리 시장 점유율 1위였던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근소한 차이지만 중국 CATL의 추월을 허용하며 1위 자리를 내줬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CATL(24.0%)이 1위, LG에너지솔루션(23.5%)이 2위를 기록했다. 삼성SDI(5.8%)는 5위, SK이노베이션(5.4%)은 6위에 올랐다.

한국 배터리 3사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인 중국 CATL은 지난해 12월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력 확대를 위해 390억 위안(약 6조 6400억 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한 데 이어 2월 2일 생산 공장 증설에 290억 위안(약 5조 300억 원)을 추가 투자한다고 밝혔다. CATL은 11조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를 통해 배터리 생산능력이 2025년 약 500GWh, 2030년에는 600GWh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