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 포스터’ 사건으로 본 저작권법상 ‘공정 이용’의 범위
[지식재산권 산책]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었고 한국도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선거 이미지 가운데 저작권과 관련해 가장 유명한 이미지는 아마도 ‘희망(Hope) 포스터’일 것이다. AP통신 소속의 사진 기자 매니 가르시아는 2006년 4월 당시 연방 상원의원이었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사진을 찍었다(왼쪽).그래픽 아티스트인 셰퍼드 페어리는 2008년 1월 이 사진을 이용해 ‘희망 포스터’를 만들었고 이 작품은 미국 대선의 아이콘이 되는 등 이른바 대박을 터뜨렸다. 그러자 사진의 저작권자인 AP가 페어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과연 저작권 침해일까.
허락 없이 AP 사진으로 미술 작품 만든 예술가
저작권은 저작물에 대한 독점적인 권리를 의미한다. 저작권자는 저작물을 다른 사람에게 이용하도록 허락할 수 있다(저작권법 제46조 제1항). 즉 저작물을 이용하고자 한다면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야 하고 허락 없이 이용하면 저작권 침해가 되는 것이 원칙이다. 페어리는 저작권자인 AP의 허락 없이 사진을 이용해 희망 포스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저작권 침해라는 결론에 바로 도달하는 것일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창작자에게 저작권이라는 독점적인 권리를 부여하는 것은 창작 활동을 유인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독점적인 권리를 예외 없이 보장하면 저작물의 이용이나 다른 창작자의 창작 활동이 과도하게 제한될 수 있다. 저작권 제도는 궁극적으로 문화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인데 오히려 문화 발전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저작권법은 제23조에서 제35조의 4, 제101조의 3에서 제101조의 5까지 일정한 경우에 저작재산권을 제한하는, 즉 저작권자로부터 이용 허락을 받지 않아도 저작물을 사용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런데 사회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그에 따라 저작물의 이용 형태도 매우 다양해지면서 저작재산권의 제한 사유를 개별적으로 열거한 조항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게 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포괄적인 저작재산권 제한 조항인 저작권법 제35조의 5 ‘저작물의 공정한 이용’이 도입됐다. 저작권법 제35조의 5는 미국 저작권법 제107조 ‘공정 이용(fair use)’과 매우 유사한 조항이다.
저작권법 제35조의 5는 ‘저작물의 통상적인 이용 방법과 충돌하지 않고 저작자의 정당한 이익을 부당하게 해치지 않는 경우에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이를 판단할 때 고려할 요소로 ①이용의 목적과 성격 ②저작물의 종류와 용도 ③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과 그 중요성 ④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현재 시장 또는 가치나 잠재적인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을 들고 있다.
희망 포스터 사건에서 페어리는 ‘공정 이용’이라고 항변했다. 가르시아의 사진은 버락 오바마의 얼굴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면 희망 포스터는 대선 후보로서의 오바마의 긍정적 이미지를 부각하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이용의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점이 핵심이었다. 소송은 합의로 마무리됐지만 만약 소송이 계속 진행됐다면 ‘공정 이용’ 항변이 받아들여져 저작권 침해가 부정됐을까.
현대 미술에서 기존의 작품을 차용해 작품을 창작하는 일은 매우 흔하다. 차용 미술은 기존 작품이 가지고 있던 맥락과 가치 등을 변형하는 데 그 본질이 있기 때문에 관람자가 기존 작품을 인식하도록 의도하는 경우가 많다. 관람자가 기존 작품을 인식하게 하기 위해 기존 작품의 창작적인 표현을 이용하게 되는데 여기서 바로 저작권 침해와 공정 이용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차용의 극단에 서 있는 작품으로는 사진 작가 셰리 레빈의 ‘워커 에번스를 따라서(After Walker Evans)’가 있다. 사진 작가 에번스의 작품을 그대로 복제한 이 작품을 저작권의 관점에서 어떻게 평가할까. 현대 미술과 저작권은 긴장 관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문진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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