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줄' . 70년대 '쌀통' . 80년대 'LM가이드'사업 전개...매출 600억원대로 껑충
대구 성서공단에 위치한 삼익LMS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변신의 마술사’로 통한다. 60년대 ‘다듬질용 줄’, 70년대 ‘삼익쌀통’, 80년대 첨단기술 집약제품인 호닝파이프 및 직선운동(LM)가이드로의 변신을 시도하는 등 10년 단위마다 회사의 주력업종을 바꿔왔기 때문이다.특히 삼익은 변경하는 업종마다 수년 안에 업계 1위에 올라서면서 외형을 급성장시켰다. 실제 1960년 줄 시장에 뛰어든 삼익공업(현재 삼익LMS)은 72년 국내 수요량의 80% 이상을 공급하는 명실상부한 선두주자로 올라선 데 이어 73년 시작한 쌀통사업은 76년부터 시장을 휩쓸었다.이에 따라 76년 회사의 전체매출은 73년보다 네 배 이상 껑충 뛰었다. 80년대 시작한 호닝파이프 및 LM가이드사업은 그동안 달려온 삼익에 날개를 달아 외형이 무섭게 커져 87년 100억원을 넘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600억원을 크게 웃돌았다.(그래프 참조)부채율은 70%에 불과할 정도로 재무구조도 튼튼하다. 이처럼 신속한 업종변경과 함께 이를 회사몸집을 키우는 발판으로 삼을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먼저 삼익측은 CEO의 미래를 보는 혜안과 신속한 결단력을 꼽는다. 지난 72년 삼익이 줄 시장을 사실상 천하통일하자 진우석 회장(당시 사장)은 단일품목만으로는 멀지 않은 장래에 기업이 성장하는 데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는 판단을 내리고 바로 신규사업 모색에 들어갔다.그래서 찾은 게 쌀통사업. 김경호 기획팀장은 “당시 경영진은 쌀통이 필수품으로 대중성과 실용성을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제작기술이 용이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이듬해 본격 생산체제를 구축, 시장을 선점했다.지금 삼익의 주력제품인 LM가이드사업도 진회장의 발빠른 결정에 따라 이뤄졌다. 진회장은 지난 83년 생산설비 자동화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우연히 일본 잡지를 통해 LM가이드사업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이를 제작하는 일본 THK사로 날아갔다. 한편으로 그해 상호를 삼익줄공업에서 삼익공업으로 바꿔 기술집약기업으로의 재탄생을 선언했다.안정적이고 짜임새 있는 조직운용이 주효물론 진회장은 신규사업에 뛰어들었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곧바로 접어 손실을 최소화하는 신속함도 보였다. 지난 77년 첫선을 보인 보온 겸용 밥솥사업은 당시 정부가 신설한 특별소비세법에 따라 매겨진 고율의 세금으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77년 1만9,804대가 팔렸던 밥솥이 78년 상반기에 2,547대로 급격히 떨어지고 대당 3,000원씩 손해를 보자 그해 6월 사업을 중단했다. 하지만 당시 밥솥사업을 계속 이끌었던 경쟁업체들은 80년대 초반 대부분 부도를 내고 주저앉았다.85년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납품받아 판매에 들어간 가스레인지사업도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전성 문제로 차질을 빚자 그해 바로 사업을 포기하고 말았다.둘째, 끊임없는 기술개발 노력. 70년대 초 삼익이 최대 경쟁업체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은 기술개발에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경쟁업체는 수입해 온 고가의 장비로 줄을 생산했지만 삼익은 일본 등 선진업체들을 두루 방문한 뒤 생산설비를 자체 제작해 가격경쟁력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이에 경쟁에서 뒤처진 경쟁업체들은 하나둘씩 무너졌고, 삼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그후에도 삼익은 줄의 샤프닝 처리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 줄시장을 계속 석권해 왔다. 당시 샤프닝 처리기술은 고압중기 및 특수물질을 사용해 줄 공구 등의 날을 예리하고 오래가도록 만드는 것 외에 재생처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신기술이었다.쌀통은 생산라인자동화를 조기에 실현, 70년대 말 인도네시아 코스모스사에 플랜트를 수출하기도 했다. 특히 87년부터 과학기술처, 산업자원부 등의 지원을 받아 특수 베어링, 정밀직선 베어링 설계 및 제작, 자동화기기용 고속직선이송 기술 등을 개발한 데 이어 지난 97년부터는 LM가이드 소재 국산화에 들어가 지난해 말 개발을 완료했다.마지막으로 안정적인 짜임새 있는 조직운영. 삼익은 40년 동안 주력업종을 두 번씩이나 바꾸면서도 노사분규 등 직원들의 거센 반발이 없었다. 이는 기존 직원들을 재교육시켜 새 업종에 투입하는가 하면 이를 거부하는 직원들에 대해서는 신업종에 대한 필요성을 스스로 인식할 때까지 시간을 갖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이다.따라서 자진해서 회사를 그만둔 직원들을 제외하곤 지금까지 모두 수용하고 있다는 게 삼익측의 설명이다. 이뿐만 아니라 일찍부터 종업원지주제를 실시하고 복지를 대기업에 버금갈 정도로 제공해 직원들의 불만을 없앴다. 기업의 투명성을 위해 89년 기업을 공개하기도 했다.이와 함께 조직을 신업종에 맞게 신속하게 운영한 것도 성공의 키포인트다. 삼익은 업종에 맞게 판매망을 신속하게 재정비하는가 하면 70년대 후반 제약업체들이 실시해온 포인트시스템을 도입했다.이 시스템은 판매목표와 실적을 계수화한 뒤 영업장별, 거래처별, 담당자별 실적을 평가해 이를 토대로 동기부여를 하고 직면한 영업환경에 따라 특정분야에 중점을 두는 기업을 말한다. 이 시스템의 도입으로 삼익은 경기가 부진할 때는 대금회수에, 판매신장이 필요할 때는 특정판매에 중점을 두는 정책을 펼 수 있었다.이에 환경변화에 신축적인 대응이 가능했을 뿐만 아니라 영업신장과 관리효율화에 큰 도움이 됐다는 게 삼익 관계자의 설명이다.INTERVIEW / 진영환 사장“변화하지 않으면 더 큰 위험 맞게 되죠”“변신을 꾀하는 데는 어려움과 위험이 뒤따릅니다. 하지만 시대에 맞춰 변하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한 어려움과 위험을 맞게 될 겁니다.”지금 LM가이드사업을 주도하고 있는 진영환 삼익LMS 사장(55)의 일성이다. 진사장은 진우석 회장의 차남으로 삼익쌀통의 인기가 치솟던 76년 사원으로 입사했다. 진사장은 78년 미국 보그사의 샤프닝기술을 이전받기 위해 부친과 미국에 갔다가 우연한 기회에 샤프닝 원료가 규사라는 것을 알아내 당시 25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기술이전비를 아끼는 데 수훈을 세웠다. 그해 삼익은 일본 등지에서 실시 중인 샌드 브라시 방법을 통해 샤프닝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진사장은 무엇보다도 요즘 한창 주가를 날리는 LM가이드를 회사의 주력제품으로 굳히는 데 큰 역할을 했다. 80년대 중반 일본에서 수입 판매하던 이 제품을 국내에서 처음으로 직접 생산하고 기술개발에 주력, 매출을 크게 신장시켰기 때문이다.진사장은 오래전부터 인간중심의 경영을 펼쳐왔다. “나쁜 작업환경에서는 결코 좋은 제품이 나올 수 없다”며 작업장을 대폭 개선한 것도 진사장의 이 같은 경영방침에서 비롯됐다. 이에 따라 산재율은 지난 99년 금속제조업 평균(2.4%)보다 훨씬 낮은 0.03%에 그쳤다.향후 새롭게 선보일 새 업종에 대해 진사장은 “아직은 지속적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 LM가이드사업과 자동차부품사업을 튼튼하게 하는 것”이라면서도 “항상 미래사업에 대한 준비는 잊지 않고 있다”고 말해 벌써 그의 머리에 또 다른 신사업이 이미 그려져 있음을 내비쳤다.©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