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감도 필드트레이닝으로 '강한 직원' 양성...전문가제도도 독특

한국IBM은 컴퓨터만 잘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사람’을 잘 키우는 기업으로 더 유명하다.국내 대기업으로 같은 정보기술(IT)기업인 삼성SDS나 쌍용정보통신보다 외국계 기업인 한국IBM이 이른바 국내 IT업계의 원조 ‘사관학교’로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한국IBM이 설립된 건 지난 1967년. 국내에 진출한 최초의 외국계 컴퓨팅 전문기업으로 무려 35년 동안 국내 IT업계의 ‘터줏대감’ 노릇을 하고 있다. 시장개척과 함께 한국IBM은 우수 IT인력을 계속해서 배출해낸 역할도 도맡았던 것이다.한국IBM에서 기본을 다지고 밖으로 나가 역량을 뽐내는 인력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것은 지금도 여전히 계속된다.국내 대기업이나 외국계 기업의 중역자리가 비었다 하면 헤드헌터들의 단골 타깃은 다름 아닌 한국IBM의 시니어들이다. 세계적으로 IT기업의 맏형으로 지칭되는 IBM은 국내에서도 최고경영자(CEO)를 여럿 배출했다.고원용 한진정보통신 사장, 변보경 코오롱정보통신 사장, 최해원 에스큐테크놀로지(구 데이콤ST) 사장 모두 한국IBM 출신들이다. IT분야에서 탄탄한 전문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은 모두 CEO로 전격 영입됐다. 부임 이후 각 회사의 전면적인 탈바꿈을 진두지휘하고 있다.한진정보통신이 이례적으로 지난해 10월 외부에서 CEO로 영입한 고원용 사장(58)은 한국IBM에서 28년여 동안 근무한 베테랑. 고사장은 현재 한국IBM에서 좋다고 여겼던 프로그램과 프로세스를 한진에 접목시키고 있다.변보경 사장(50) 역시 코오롱그룹이 최초로 외부에서 스카우트한 인물. 한국IBM에서 기획조정실장과 PC 사업본부장 및 시스템사업본부장을 거쳐 LGIBM 사장을 지냈다.SAP코리아 사장을 역임했던 최해원 사장(52)은 한국IBM 금융산업사업본부 상무 출신. 네오빌 사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에스큐테크놀로지 대표이사가 됐다.현재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한국IBM 출신 CEO는 또 있다. 최준근 한국HP 사장, 김의녕 SAP코리아 사장, 강성욱 전 컴팩코리아 사장(38), 김재민 전 한국유니시스 사장, 이수현 어바이어코리아 사장(52), 고현진 한국MS 사장, 김종덕 한국스트라투스 지사장 등이 있다. 한국IBM은 국내 소프트웨어 산업의 산실로도 유명하다. 한국IBM 출신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은 창업전선에 뛰어들었다.소프트그램의 김현수 사장, 인프론테크놀러지의 김유진 사장. 아델리눅스의 이영규 사장 등이 있다. 이들은 ‘e블루’라는 모임을 만들어 업계 정보교환과 세미나 등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회원수만 200명이 넘는다.한국IBM 출신이라면 얼굴도 안 보고 뽑아간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오는데는 채용 때부터 10년 앞을 내다보는 한국IBM의 탄탄한 인력개발시스템의 힘이 크다.현재 한국IBM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모두 2,500여명. 최근 PWC를 인수하면서 영입한 직원과 몇몇 외부에서 충원한 경력입사자를 빼면 대부분 공채사원들이다. 이들은 모두 100대1이 넘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입사한 ‘사관생도’들이다.입사경쟁률이 치열하긴 하지만 국내 대기업이나 여느 외국기업처럼 까다로운 시험을 치르지는 않는다. 서류전형과 필기시험은 의외로 평이하다는 게 시험을 거친 지원자들의 공통된 얘기다.전문분야 문제해결력 키우는 데 역점문제는 바로 ‘면접’이다. 임원급 핵심간부들이 면접관으로 여럿 나오지만 채용의 결정권은 언제나 지원한 해당부서의 매니저(팀장)가 갖게 된다. 바로 이 점이 다른 기업들과 다른 한국IBM만의 채용방식이다.면접 때 채용담당자의 평가 초점은 한 마디로 ‘지원자의 문제해결력’에 있다. 이것은 학력이나 어학능력보다 훨씬 더 비중 있게 작용한다. 입사 면접에서부터 프로페셔널의 자질을 들여다보는 셈이다.한국IBM이 자랑하는 최정예요원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입사 후에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야전교범도 없이 이뤄지는 필드트레이닝(실전훈련)을 받아야 한다. 교범이 없다는 것은 본인 스스로 훈련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인턴십 같은 ‘봐주는’ 기간은 턱없이 짧다.‘생도들’의 고강도 훈련은 한 해 동안 추진할 프로젝트와 실적을 자신이 직접 작성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업무수행 중 부닥치는 모든 난관도 자신의 판단과 문제해결력으로 돌파해야 한다. 이렇다할 회사측의 간섭이나 중간평가 따위는 없다. 모든 것이 생도 본인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확하게 1년이 지난 후 연초에 작성한 훈련계획안을 들고 매니저와 평가한다. 이런 트레이닝은 신입사원 때부터 회사를 떠나는 순간까지 해마다 계속된다.출판업계에서 브리테니커를 ‘영업사관학교’라고 부른다면 한국IBM은 IT업계의 ‘세일즈 사관학교’로 통한다. 영업에 필요한 모든 기술, 예를 들면 고객을 설득하는 프리젠테이션 노하우를 비롯해 각 아이템을 고객 맞춤형으로 디자인하는 능력을 가르치기 때문이다.한국IBM이 사관학교임을 입증하는 것은 바로 전문가제도다. 광범위한 제품 및 신기술의 급속한 도입으로 영업사원이 모든 정보를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도입했다. 고객이 필요로 하는 분야별로 전문가그룹을 구성해 각 전문가별로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도록 하고 있다. 특히 직원 각자의 기술력을 축적하도록 한다.외롭고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하지만 정작 IBM 직원들의 회사에 대한 로열티는 어느 기업보다도 크다. 고강도 훈련에 걸맞은 파격적인 재량권을 주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모빌오피스 근무제를 도입해 출퇴근 시간도 직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도록 했다.INTERVIEW / 김영규 인사담당 상무“IBM식 훈련 그리워 컴백한 직원 많아”한국IBM의 김영규 인사담당 상무(49)는 한국IBM을 첫 직장으로 지금까지 25년째 근속하는 IBM맨이다.김상무가 처음 입사해 담당한 고객은 항공사들. 그런데 항공사에 납품한 제품에 심상치 않은 에러가 발생해 당황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매니저에게 달려가 문제를 보고했지만 돌아온 것은 ‘되든 안되든 본인이 판단해 해결하라’는 지시뿐이었다.“그때는 정말 어쩔 줄 몰랐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매니저가 저를 프로페셔널로 키우기 위한 트레이닝 과정이었던 것 같습니다.”김상무는 이것이 지난 35년간 지속돼 온 한국IBM의 직원교육의 전통이라고 설명한다. 현장에서 난관에 부딪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반복하면서 노하우를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그는 한국IBM이 국내 IT업계의 사관학교로 불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섭섭하다. “기껏 공들여 키워 놓았는데 기술을 다른 곳으로 가서 써 먹는다면 인사담당자로서는 마냥 좋아할 만한 일은 아니겠죠.”현재 한국IBM을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다가 다시 컴백한 직원들도 적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마치 모교처럼 애정을 가지고 기회가 되면 다시 채용하는 회사 분위기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이들을 면담하면서 하나같이 한국IBM에서 훈련받던 것이 그리웠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정말 혹독하기만 한 군대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 테죠.”합리적인 근무조건에서 맘껏 능력을 키울 수 있는 회사라는 점을 김상무는 강조했다.“한국IBM의 인사관리체계는 3대 경영이념 중 첫번째인 ‘개인존중’에 그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잠재력을 계발하고,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죠.”직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기술과 목표 기술수준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교육계획을 세워 자신의 기술수준을 높여가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또 자신의 기술수준은 관리자에 의해 점검돼 회사 전체의 기술 수준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돼 있으며, 특정 기술 보유자 및 부서별 기술수준 등 여러 가지 보고서를 통해 실제 고객의 프로젝트에 최적의전문가를 투입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