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갑니다 ∼ 비즈니스 파트너로 다시 만납시다.”금융사의 영업맨들이 탈출을 선언하고 있다. ‘OO은행’ ‘OO보험’이라는 회사의 울타리를 떠나서 독립을 외친다. 막강한 금융사의 브랜드 없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회사를 박차고 나가 독립을 선언하고는 그간의 금융상품 영업경험을 바탕으로 판매만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새로 만들어 여러 회사의 영업 아웃소싱을 하는 것이다.이런 사례는 보험업종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견되고 있다. 생명보험사 출신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금융전문판매회사 AMU와 PAMCO, KFG 등이 문을 열고 종합금융컨설팅을 목표로 영업을 시작했다. 은행상품도 아웃소싱조직의 힘을 빌려 팔려나가고 있다. 자동차할부상품을 판매하겠다는 회사도 나타났다.이 같은 회사들은 몇 개의 금융사들과 제휴를 맺고 상품을 팔아주며, 여기서 일정비율의 커미션을 받는다. 특정회사의 상품만 판매하는 경우도 있지만 동시에 여러 회사의 상품을 취급하면서 자연스럽게 상품끼리 비교시키고 고객에게 더 나은 상품을 골라준다.아직 파트너인 금융사에 큰소리칠 정도로 성장하지 않았으나 그렇다고 종속관계도 아니다. 이런 전문회사들의 발언권은 영업기여도가 늘어나는 데 따라서 커지게 될 것으로 보인다.보수적이기로 유명한 금융사들 또한 영업을 아웃소싱하는 데 적잖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지점수가 적어 영업력에서 열세를 나타내는 외국계 금융사들이 영업 아웃소싱에 가장 적극적이다. 외국계인 씨티은행은 내부(인하우스)와 외부(아웃소싱)의 혼합형태인 영업전문조직을 한 발 앞서 운영했으며, HSBC 역시 비슷한 조직을 운영하는 한편 여러 곳의 영업 아웃소싱회사에 상품을 제공해 판매토록 해 왔다.약간의 맥락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삼성생명이 제휴영업 전담부서를 만든 건 업계에서도 파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회사는 거대 조직의 슬림화를 위한 퇴사시스템의 관점에서 아웃소싱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국내에 진출한 영국 프루덴셜의 PCA생명 역시 적극적으로 외부 판매조직을 활용하는 것이 주요 영업전략 중 하나다.소비자, ‘붕어빵 금융서비스 싫어’이런 영업맨들의 반란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은 금융겸업화 추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은행 신탁은 투신사의 수익증권 및 뮤추얼펀드, 보험사의 변액보험과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이다.은행 예금과 보험사의 저축성 보험, 연금신탁과 연금보험도 마찬가지. 이에 따라 금융사간 경쟁이 치열해진 것 역시 한몫 거든다. 누가 팔든 많이만 팔아주면 되는 것이다. 증권사는 홈트레이딩 때문에, 보험사는 인터넷 보험 등으로 인해, 은행은 예대마진만으로는 부족해서 등 금융사마다 기존의 수익원이 고갈되고 있어 점점 더 돈 되는 것은 가리지 않고 팔아야 하는 처지다.예전과는 달라진 금융소비자들 역시 이 같은 금융상품 판매전문회사가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 눈이 높아진 고객들은 최대한 저렴한 가격에 질 높은 서비스를 요구한다. 요즘 금융권에서 ‘자산관리’가 화두로 자리잡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틀에 박힌 한 가지 상품만을 대량판매 형식으로 서비스해서는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판매 전문회사들의 취지대로 기존 금융사들의 틈새를 파고든다는 전략이 현실화된다면 소비자에게는 실제로 이득이 될 수 있다.미국의 경우에는 자산관리전문가인 CFP들이 금융서비스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의 재정설계 과정에서 상품세일즈가 일어난다. 미국의 스테이트팜, 영국의 IFA(Independent Financial Advisor) 등 금융상품 전문판매를 통해 대형회사로 성장한 사례를 찾아보기도 어렵지 않다.하지만 역시 안정된 대형금융사의 ‘치마폭’을 벗어나 찬바람 부는 벌판으로 나가는 일은 녹록지 않다. 외국에서 성공했다고 우리나라에서도 성공이 보장된 것은 아니다.한동안 각종 금융상품을 비교해주는 온라인 사이트가 대유행을 한 적이 있다. 각종 금융 상품 안내, 자동차 보험료 비교, 예금금리 비교, 대출금리 비교 등을 하는 금융포털사이트들이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이들의 전략 또한 기존 금융사들이 제공하지 못하는 서비스를 접근성 좋은 온라인으로 해결한다는 것에 근간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런 포털을 이용, “보험료 크게 아꼈다”거나 “무척 싸게 대출 받았다”고 만족해하는 소비자를 찾아보기는 어려웠다.국내 금융권 상품이라는 게 다 고만고만해서 큰 차이를 발견하기 어려웠던데다 사이트에 접속해 상품을 비교해 보는 게 의외로 귀찮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수익모델을 찾던 많은 금융포털들이 온라인을 통한 종합금융컨설팅이나 자산관리로 돌파구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결국 일부를 제외하고는 수익모델을 찾지 못해 사라지거나 어려움에 처해 있다.한동안 엄청난 수익을 올려 가며 호황을 누렸던 주택담보대출 전문영업회사들은 가계대출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고, 정부의 억제정책에 된서리를 맞아 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자 인원을 줄이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다. 일부 은행들은 은행 내 전문판매 조직으로(인하우스), 어떤 은행들은 아웃소싱으로 운영해 왔으나 최근 부작용도 발견돼 점차 인하우스로 개편돼가는 사례가 적지 않다.HSBC 개인영업본부 박준규 본부장은 “은행은 명성을 먹고 사는 업종”이라며 “몇몇 영업전문회사들을 통해 상품을 팔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까지 실적이 미미하고, 우리 은행의 브랜드 가치에 흠집이 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지점수가 적은 은행으로서 수익증권이나 대출상품판매를 이런 영업전문회사에 아웃소싱하고 싶은 의사는 충분하지만 아직 흡족한 파트너를 찾기가 어렵다는 것. 그는 “외국에서 판매전문회사를 성공시킨 회사가 국내 법인을 만든다면 적극적으로 제휴를 맺고 싶다”고 말했다.요즘 많이 생겨나는 국내 판매전문회사들도 한 차례 검증을 거친 좋은 회사가 나타나 준다면 언제든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HSBC는 주택담보대출의 경우는 인하우스 조직을 전문화하는 방향으로 할 계획이다.한결같이 여러 금융상품을 동시에 판매하면서 종합금융컨설팅회사를 지향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것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컨설팅을 제공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영업인들의 질 문제다.실제로 이 같은 전문판매회사들의 대부분은 보험상품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은행, 보험, 증권, 부동산에 두루 이해가 깊은 영업인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금융 컨설팅이 허울 좋은 구호에 그치고 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것이다.기존 관행을 깨는 영업맨들의 작은 반란이 성공으로 귀착될 수 있을지 시간을 갖고 지켜볼 문제다.돋보기 / 독립영업 전형 투자상담사수수료수입, 영업능력 따라 ‘천차만별’금융영업맨 중에 ‘독립’의 고전적인 형태는 역시 ‘대리점’이라고 불리는 비전속 보험에이전트와 증권사의 투자상담사다. 회사를 차려서 독립을 외치는 요즘 영업맨들과는 달리 이들은 오래전부터 철저히 혼자서 살아남는 방법을 익혀 왔다.영업맨들의 격전지인 증권가에서도 투자상담사들은 오로지 고객들의 주식거래수수료로 살아간다. 이들은 증권사와 계약을 맺고 주식거래수수료를 나눠가진다. 과거의 고객 약정금액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영업력을 검증받은 후 계약이 이뤄진다. 수수료비율도 개인능력에 따라 천차만별.보통 상담사들이 수수료 중 30∼50%를 가져가는 반면에 능력이 뛰어난 상담사들은 70%까지 가져간다. 이뿐만 아니라 능력 있는 투자상담사들은 버젓한 개인사무실을 가지는 반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개인 책상 하나만 덜렁 주어진다.영업력이 유일한 무기인 셈이다. 영업력만 뛰어나다면 여기저기 스카우트 제의도 물밀 듯이 들어온다. 개인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있어 세금납부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일반증권사 직원들에 비해 생활이 자유로운 편이죠. 사내 회의에 참석할 필요도 없고 고객약정 금액을 올리기 위해 벌이는 캠페인에도 구애받지 않죠. 오로지 주식영업과 투자에만 신경 쓰면 되죠.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습니다.” 최병화 한국투자상담회 회장(63)은 국내 투자상담사 1세대. 증권회사 직원으로 8년간의 외도를 제외하면 20년 가까이 투자상담사란 한우물을 팠다.“뿌린 만큼 거두는 게 이 직업의 매력입니다. 기본급도 없이 순수하게 주식매매수수료로 살아가기 때문에 능력에 따라 연봉이 결정되는 셈이죠. 그만큼 경쟁도 치열한 편입니다.”그가 수수료 수익으로 1년에 거둬들이는 수입은 1억5,000만원 정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꾸준히 투자해 고객들에게 신뢰를 가져다줬다는 게 그의 비결이다. 고객들도 대부분 알음알음으로 형성돼 있다. 주식 장세가 나빠져도 고객들이 믿고 맡기기 때문에 항의전화도 없다.“물론 장점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장이 안 좋을 때는 일반증권사 직원들보다 훨씬 더 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상담사끼리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영업력이 좀 떨어진다 싶으면 바로 퇴출이라는 도마에 오르는 직업이죠.”손용석 기자soncine@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