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완판 기록 이어 가는 ‘A급 기업’으로 자리매김

[마켓 인사이트]
한솔케미칼 생산공장. 출처: 한솔케미칼
한솔케미칼 생산공장. 출처: 한솔케미칼
한솔그룹의 정밀 화학 기업 한솔케미칼의 성장세가 매섭다. 한국의 과산화수소·라텍스 시장에서 탄탄한 시장 지위를 확보한 데 이어 2차전지와 특수 가스 영역으로도 보폭을 넓히며 최적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완성하고 있다.

꾸준한 외형 성장과 수익성 개선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신용 등급을 높여 가는 ‘모범생’의 면모가 부각된다. 자본 시장에 등장하기만 하면 회사채가 ‘완판(완전 판매)’되며 인기 있는 ‘A급 기업’으로도 자리잡았다.

매년 최대 실적 갈아 치우는 무서운 성장세

올해 6월 한솔케미칼에 신용 등급 상향 조정 낭보가 잇따랐다. 한국기업평가를 시작으로 한국신용평가·나이스신용평가 등이 한솔케미칼의 회사채 신용 등급을 기존 ‘A’에서 ‘A+’로 한 단계 상향 조정했다. 한국의 신용평가사 세 곳이 동시에 한 기업의 신용 등급을 일제히 올리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그만큼 한솔케미칼의 사업·재무 상태 개선 속도가 빠르다는 의미다.

한국 신용 평가사들은 한솔케미칼의 탄탄한 시장 지위와 사업 다각화에 따른 성장 가능성에 높은 점수를 줬다. 고부가 제품의 비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어 앞으로의 이익 창출 능력이 더욱 좋아질 것이란 관측에서다.

한솔케미칼은 1980년 한국퍼록사이드로 설립된 한솔 계열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다. 자체적으로 과산화수소·라텍스 등을 생산하는 정밀 화학 사업과 전자·박막 재료 등을 생산하는 전자 소재 사업을 주력으로 한다.

종속기업을 통해선 중국 내 정밀 화학 사업과 포장·전자 제품용 테이프 생산 사업을 하고 있다. 지난해 초 특수 도료를 생산하는 한솔씨앤피 지분 전량(50.08%)을 매각했고 하나머티리얼즈로부터 특수 가스 사업 부문을 양수하기도 했다.

반도체·디스플레이용 고순도 과산화수소 시장은 한솔케미칼과 OCI를 중심으로 복점 구조가 형성돼 있다. 생산·판매 측면에서의 높은 진입 장벽은 한솔케미칼의 영업수익 지속력을 든든하게 받쳐 준다. 전자 소재 부문도 기술력에 기반해 독보적인 공급 지위를 갖추고 있다. 한솔제지·삼영순화 등을 주요 거래처로 두고 있어 안정적인 판매 기반을 갖췄고 생산 효율성도 높다.
‘신용도 전성기’ 한솔케미칼, 보수적 재무 정책·과감한 M&A의 황금비율
한솔케미칼은 단어 그대로 ‘신용 등급 모범생’이다. 2011년 ‘A-’ 신용 등급으로 회사채 시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이후 꾸준히 시장 참여자들과 소통하면서 자금을 조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 신용 평가사들은 한솔케미칼의 대형 고정 거래처와 수익성 높은 전자 재료용 과산화수소 부문의 지속적인 성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솔케미칼은 3~4년에 한 번꼴로 신용도가 개선됐다. 급격한 조정 없이 시차를 두고 단계적으로 신용도를 높여 가며 시장에서 탄탄한 신뢰도를 쌓아 왔다.

큰 부침 없이 지속적으로 외형이 늘고 수익성이 좋아지자 신용 등급 조정에 앞서 시장 참여자들이 먼저 반응하는 모습이 나타나기도 했다.

한솔케미칼이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채 발행을 결정하면 기관투자가들은 앞다퉈 투자 희망 의사를 밝혔다. 이 덕분에 회사채 발행을 결정할 때마다 ‘완판’되는 상황이 나타났다. 금융 시장이 불안정할 때도 한솔케미칼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이에 따라 실제 신용 등급이 오르기도 전인 올해 3월 한솔케미칼이 700억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실시한 수요 예측에 총 2270억원의 자금이 몰렸다. 당시 한솔케미칼의 신용 등급은 ‘A’였다. 기관투자가들이 크게 매력을 느끼기 어려운 신용도였지만 한솔케미칼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을 염두에 둔 자산운용사들의 호응이 컸다.

주식 시장에서도 한솔케미칼을 바라보는 시선은 긍정적이다. 상당수 증권사들이 한솔케미칼의 실적 지속 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전방 업체의 반도체 라인 증설과 초미세 공정에 따라 한솔케미칼의 과산화수소 부문이 안정적인 모습을 이어 갈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동희 SK증권 연구원은 한솔케미칼에 대해 “전방 산업이 업사이클(호황)에 진입한 데다 구조적으로 성장이 가능한 사업군으로 다각화해 놓은 상태”라며 “소재 업체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좋은 편이어서 투자 매력도가 높다”고 분석했다.
한솔케미칼 울산 과산화수소 정제 공장. 출처: 한솔케미칼
한솔케미칼 울산 과산화수소 정제 공장. 출처: 한솔케미칼
‘AA급’ 도약 가능성에는 의견 분분

한국 신용 평가사들이 특히 주목하는 것은 한솔케미칼의 외형과 이익 창출 능력 확대다. 한솔케미칼은 지난해 주력 사업의 수요가 늘고 원재료비 부담이 줄면서 매출과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이 각각 전년 대비 5.4%, 27.8% 증가했다.

올해 1분기에도 이 같은 추세는 이어졌다. 과산화수소 부문의 호조에는 반도체용 수요 확대가 한몫했다. 전자소재 부문은 박막 재료, 퀀텀닷(QD) 판매 확대가 이어졌다.

현금 창출 능력이 좋다 보니 설비·지분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자체적으로 충당했다. 올해 1분기 기준 한솔케미칼의 순차입금은 746억원으로 2019년과 비교해 988억원 줄었다. 이 덕분에 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2019년 1.2배에서 올해 1분기 0.3배로 낮아졌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2019년 33.9%에서 올해 1분기 29.4%로 개선됐다.

기업 분석 전문가들은 한솔케미칼이 높은 영업 마진율을 이어 갈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반도체 업황 호조에 힘입어 과산화수소 부문의 외형과 이익 창출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자 소재 부문 역시 반도체 미세 공정화에 따른 박막 재료 수요가 증가하면서 외형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1500억원이 웃도는 EBITDA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많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올해와 내년 연평균 자본적 지출이 10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되는 데다 EBITDA를 밑도는 보수적인 재무 정책이 유지될 것”이라며 “투자 부담을 내부 창출 재원으로 대응하면서 우수한 재무 안정성을 나타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솔케미칼의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보수적 재무 정책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과감하게 인수·합병(M&A)을 단행하며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했다.

당초 과산화수소 생산에만 주력했지만 일찌감치 사업 확대의 필요성을 절감해 사업 영역을 넓혔다. 주요 사업의 설비 증설을 추진했고 연구·개발(R&D)을 통해 신제품을 선보였다. 2차전지 소재와 반도체용 특수 가스 등으로 신규 사업을 펼치면서 EBITDA 창출 능력을 끌어올렸다.

선제적으로 재편한 사업 구조는 지난해부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라텍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가 공급을 앞지르면서 판가가 인상됐다. 코로나19의 여파로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TV 판매가 증가하면서 퀀텀닷 실적이 개선돼 전자 소재 부문의 외형 성장세도 이어졌다.

여기에 2차전지 시장 확대로 자회사인 테이팩스의 성장까지 더해져 연결 기준으로 이른바 ‘황금기’를 누리게 됐다. 테이팩스는 필름 제조 업체로, 고품질 산업용 테이프 시장에서 점유율 1위 기업이다. 업력이 오래된 데다 브랜드 인지도도 좋아 양호한 영업 현금 창출 능력을 갖췄다. 연결 대상 종속기업들의 선전 덕분에 한솔케미칼의 지난해와 올 1분기 연결 기준 영업이익률은 각각 27.4%, 33.8%를 기록했다.

단, ‘AA급’ 기업으로 올라설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전방 산업이 계속 호조를 보이고 신규 사업의 성장세가 이어진다면 충분히 추가적인 신용 등급 상향 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적인 차입금 수준이 높은 데다 M&A 관련 비경상적 대규모 자금 소요 발생 가능성이 있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실제 한국신용평가는 한솔케미칼의 추가적인 신용 등급 상향 조정 요건 중 하나로 연결 기준 차입금 의존도 10%를 제시하고 있다. 한솔케미칼의 올해 3월 차입금 의존도는 29.4%다. 지난해 25.5%에서 소폭 증가했다. 2019년에는 33.9%였다.

김성진 나이스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전방 산업의 업황 변동성이 다소 높게 나타나고 있어 글로벌 경기 변화에 따른 영업 실적 변동 가능성은 항상 있다”고 말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