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첫 도입 ‘아셉틱’ 수요 늘면서 캐시카우로…성장 잠재력·재무 안정성 동시 부각

[마켓 인사이트]
삼양패키징 아셉틱 음료 생산 라인. /삼양그룹 제공
삼양패키징 아셉틱 음료 생산 라인. /삼양그룹 제공
삼양패키징이 성장의 전환기를 맞았다. 아셉틱(무균 충전 공법)을 새로운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내세워 주식·채권 시장에서 연이어 호평받고 있다.

한국 최초로 도입한 아셉틱 수요가 빠르게 늘면서 성장 잠재력과 재무 안정성이 동시에 부각되고 있는 덕분이다. 이처럼 기업 가치를 재평가 받으면서 신용 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도 예상된다.
상반기 영업이익 전년 동기 대비 32.8% ‘껑충’삼양패키징은 올 하반기 들어 채권 시장과 주식 시장 모두에서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다. 주식 시장에선 올 2분기 실적을 계기로 삼양패키징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실제 삼양패키징은 올 2분기 1089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3.1% 증가한 규모다. 올 2분기 영업이익은 2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9% 뛰었다.

올 상반기 누적 실적으로 봐도 매출(1910억원)은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7.4%, 영업이익(267억원)은 32.8% 증가했다. 올 상반기 누적 순이익은 205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에 비해 26.5% 커졌다. 한국 증권사들이 추정했던 영업이익·순이익 평균치를 10~20% 웃도는 수준이다.

삼양패키징의 주가는 올 상반기 동안에만 30% 정도 올랐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올 8월 초 “추세를 보면 올 하반기 실적도 당초 추정치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며 투자 의견을 밝히고 목표 주가를 올려 잡기도 했다.

채권 시장에선 단기적으로 신용 등급 상향 조정 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 중 한 곳으로 꼽히고 있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는 각종 재무 지표가 이 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삼양패키징의 상각 전 영업이익(EBITDA)은 2019년엔 전년 대비 22%, 2020년엔 14% 증가했다.

지난해 EBITDA는 807억원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EBITDA 마진을 봐도 2018년 15.8%에서 2019년 18.8%, 지난해 22%를 나타내 빠른 속도로 좋아지고 있다. 금융비용 대비 EBITDA는 2018년 8배였는데 2019년 8.8배, 지난해 11.6%로 개선됐다.

3년 전 삼양패키징이 공개 모집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인정 받은 신용 등급은 ‘A-’였다. 그 이후에도 줄곧 ‘A-’ 신용 등급이 유지되고 있다. 신용 등급이 오르지 못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차입금 부담이었다.

삼양패키징의 총차입금은 2017년 말 1966억원, 2018년 말 2178억원, 2019년 말 2188억원으로 계속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말 1948억원으로 감소세로 전환된 뒤 차입금 부담을 줄여 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19~2020년 투자 규모를 축소하면서 잉여 현금이 창출된 영향이 크다.

한국 신용 평가사들이 신용 등급 상향을 위한 주요 요건으로 밝히고 있는 EBITDA 대비 순차입금 지표를 살펴보면 2019년 말 2.6배였는데 지난해 1.7배로 낮아졌다. 차입금 의존도 역시 2019년 38.8%에서 지난해 34.5%로 떨어졌다.

유준위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보수적인 재무 정책을 고려할 때 안정적인 영업 현금 창출을 토대로 투자에 소요되는 자금을 자체적으로 충당해 재무 안정성이 개선세를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한국기업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 등 신용 평가사들은 올 들어 삼양패키징의 신용 등급 전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상태다. 3년 동안 유지돼 온 ‘A-’ 신용 등급이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의미다. 올 9월 초 예정된 삼양패키징의 회사채 발행에 자산 운용사와 각종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변동성 완화에도 차입금 고민은 ‘여전’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삼양패키징이 2007년 한국 최초로 도입한 아셉틱이 자리하고 있다. 삼양패키징은 2014년 삼양사의 용기 사업 부문이 물적 분할돼 설립됐다. 2015년 옛 효성 패키징 사업이던 아셉시스글로벌을 흡수·합병했다.

삼양패키징은 페트(PET) 용기 제조 사업을 주력으로 해 왔다. 페트 용기 부문의 매출 비율이 가장 높았다. 한국의 페트 용기 시장은 삼양패키징을 포함한 5곳이 전체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올 1분기 기준으로 삼양패키징의 페트 용기 시장점유율은 34% 정도다. 한국 최대 규모의 생산 라인과 오랜 사업 경험에 힘입어 롯데칠성음료와 하이트진로 등 다수의 고정 거래처를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삼양패키징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셉틱을 새 성장 동력으로 적극 활용하기로 했다. 신규 설비 투자를 잇달아 단행해 아셉틱 부문의 사업을 빠르게 확장했다. 이를 통해 아셉틱 부문의 매출 비율을 점진적으로 높였다.
성장 전환기 맞은 삼양패키징…음료 업체로 거듭나 신용도 상향될까
아셉틱은 음료를 섭씨 영상 135도까지 끓여 살균한 뒤 급속 냉각해 상온에서 주입하는 방식이다. 음료 업체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세균과 박테리아 증식일 수밖에 없다.

아셉틱을 활용하면 상대적으로 세균과 박테리아 번식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맛과 향을 제대로 보존할 수 있다. 용기의 변형 가능성이 낮아지고 유통 기한도 길어진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아셉틱 시장은 연평균 16% 성장하고 있다. 물론 페트에 비해 아셉틱의 마진도 높다. 아셉틱 방식의 음료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사업에서 광동제약·빙그레 등과 안정적인 거래 관계를 맺었다.

신호용 나이스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중·단기적으로 삼양패키징의 매출은 아셉틱 부문을 중심으로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며 “아셉틱 부문은 페트 용기 부문에 비해 안정적인 원가 구조를 갖고 있어 아셉틱 부문의 매출 비율 확대는 본원적인 영업 수익성의 변동성 완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삼양패키징의 영업 수익성은 국제 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페트 레진 가격 변화에 좌우되고 있다. 2018년 유가가 급등했을 때 원재료 가격이 크게 상승해 영업 수익성이 주저앉았다. 지난해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확산돼 유가가 급격하게 하락하면서 영업 수익성이 예년 수준으로 개선됐다. 아셉틱이 이런 삼양패키징의 영업 수익성을 안정화해 신용도 전망을 긍정적으로 이끌고 있는 셈이다.

성현동 KB증권 연구원은 “옥수수수염차 등 차류를 시작으로 커피·스포츠 음료·탄산 음료 등으로 아셉틱 도입이 확산되고 있다”며 “지난해 8억1000개 규모의 수요가 2025년엔 11억4000개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셉틱 설비는 한국에서 총 8개 라인이 가동 중인데 그중 4개 라인을 삼양패키징이 보유하고 있어 후발 업체와의 격차도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삼양패키징이 단순히 실적 개선이나 외형 성장에 머무르지 않고 신용도까지 높이려면 일단 적정한 투자 계획을 수립하고 차입금을 추가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한국 신용 평가사들은 삼양패키징의 신용 등급 상향 조정을 위한 필수 요건으로 EBITDA 대비 순차입금이 0.5배로 유지되는 것을 꼽고 있다. 하지만 올 3월 말 기준 삼양패키징의 EBITDA 대비 순차입금은 3.2배에 그치고 있다. 또 단기적으로는 유가 변동에 따른 영업 수익성 변화가 나타날 수 있어 안정적으로 영업 수익성을 유지할 필요도 있다.

송미경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경기 회복기에서 나타나는 유가 등 원자재 가격 변동과 이에 따른 제품 판매 가격 변화, 아셉틱 부문의 증설 투자 이후 이익 창출 기반 확대 수준을 관찰해 신용 등급에 반영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은정 한국경제 기자 ke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