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복 시작 ‘패션사 혁명’…예술가에게 영감 받은 아이리스·해바라기 재킷, “최고 걸작”

[류서영의 명품이야기-이브 생 로랑③]

이브 생 로랑의 파트너이자 동성 연인 피에르 베르제는 로랑을 이렇게 치켜세웠다. “샤넬이 여성에게 자유를 주었다면 너는 그들에게 권력을 되찾아 줬어. 그들의 힘이 남성들에 의해 억눌려 있다는 사실을 너는 알았고 그들에게 너의 옷을 입힘으로써 어깨에 힘을 얹어 주었지. 이것이 네가 한 일이야.”

그의 칭찬은 이렇게 이어졌다. “르 스모킹(여성용 턱시도), 사하라 스타일, 투피스 정장 바지, 카방코트(카방은 프랑스어로 선원용의 두터운 쇼트 재킷), 트렌치코트가 그 증거야. 그 한 벌 한 벌에 양성성을 향한 걸음이 깃들여 있었어. 그저 옷을 입고 외출하는 것만으로 여성들은 자신들의 여성성을 발전시키는 한편 에로티시즘이라는 걸림돌을 치워 버렸지. 그러므로 너는 샤넬과 함께 패션계의 유일무이한 천재였어. 결국 기성복을 발명해 냈고 말이야. 그야말로 패션사의 혁명이었어. 브라보 무슈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은 1966년 맞춤복이 아닌 기성복 ‘생 로랑 리브 고슈(Saint Laurent Rive Gauche)’를 선보였다. 당시 패션은 일부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부유층은 고급 맞춤복인 오트 쿠튀르에 집중하고 있었다. 후에 이브 생 로랑은 “1960년대를 살아가는 흥미로운 여성들이 쿠튀르의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기성복 라인을 론칭했다”고 말했다.
러시아 등 이국적 문화·전통, 패션에 접목
1965년 마트료시카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사진1)/사진=인스타그램 museeyslparis
1965년 마트료시카에서 영감을 받은 드레스(사진1)/사진=인스타그램 museeyslparis
알제리 출신인 이브 생 로랑은 파리 출신의 디자이너들과 달리 이국적인 문화와 전통을 패션에 접목했다. 예를 들면 그는 1965년 러시아 인형 마트료시카(Matryoshka : 하나의 목각 인형 안에 크기순으로 똑같은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전통 인형)에서 영감을 받은 실크 새틴 리본을 사용한 울 니트 드레스(사진1)를 만들기도 했다.

1967년에는 아프리카 밤바라족에서 영감을 받은, 당시 패션 소재로는 사용되지 않았던 나무 구슬과 조개껍데기·동물 이빨 모양의 비즈 등을 사용해 아프리카 전통의상 느낌의 컬렉션(사진2)을 파격적으로 발표해 주목받았다. 1960년대 말 세계는 중국의 문화혁명과 영국령·프랑스령 식민지의 독립, 베트남 전쟁 등 제3세계에서의 변화와 관심이 젊은이들에게 모아졌다.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은 래피아, 나무진주를 사용한 미니 원피스. 1967년 발표.(사진2)/사진=인스타그램 museeyslparis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받은 래피아, 나무진주를 사용한 미니 원피스. 1967년 발표.(사진2)/사진=인스타그램 museeyslparis
이러한 시대의 흐름을 읽어 낸 이브 생 로랑은 옷을 통해 스페인·모로코·아프리카·몽골·터키·베네치아·일본 등 다양한 나라의 전통 의상과 문화를 재해석해 패션으로 승화했다. 이러한 패션의 흐름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의 에스닉 룩이라는 새로운 룩의 선두 주자적 역할을 했다.

이브 생 로랑은 이국적인 문화뿐만 아니라 화가들의 예술 작품도 패션에 접목했다. 동성 연인인 피에르 베르제와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열정은 패션에서도 고스란히 녹아 들었다. 예술가들과의 교유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라인을 만들기도 하고 예술가의 작품을 오마주한 컬렉션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60년대는 영 패션이 대두되면서 모즈 룩(모던즈의 약칭으로 런던의 카나비 스트리트를 중심으로 나타난 허리를 가늘게 조인 꽃무늬 셔츠, 판탈롱 바지 스타일)과 히피 스타일(1967년 이후 베트남 전쟁의 공포가 사회 분위기에 녹아 있을 때 미국의 반체제 젊은이들 사이에서 히피족이 등장했고 이들이 입은 판탈롱 바지, 프릴이 장식된 블라우스, 꽃무늬 셔츠, 술이 달린 조끼 스타일을 의미)이 나타났다.

안티 패션의 영향으로 미니 스타일이 나타났고, 팝아트의 예술 사조가 도입돼 기하학적 디자인과 추상적인 디자인이 유행했다. 이브 생 로랑이 이러한 시대의 조류에 발맞춰 1965년 발표한 대표적인 작품이 ‘몬드리안 룩’이다. 이브 생 로랑의 어머니가 그에게 준 몬드리안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몬드리안 룩의 원피스(사진3)를 만들었다.
1965년에 발표한 몬드리안 원피스(사진3)/사진=인스타그램 museeyslparis
1965년에 발표한 몬드리안 원피스(사진3)/사진=인스타그램 museeyslparis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 네널란드 추상 회화의 선구자)의 그림에서 검정의 수직선·수평선, 빨강·파랑·노랑의 색을 사용해 회화 느낌을 그대로 살렸고 곡선을 찾아볼 수 없는 일자형의 저지 미니 원피스는 당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미국의 세계적 패션 산업지 우먼스 웨어 데일리(WWD)는 몬드리안 룩을 두고 “패션의 왕 자리에 올랐다”고 격찬했다. 프랑스 보그 패션 잡지는 커버 사진으로 몬드리안 룩의 원피스를 사용했고 패션 잡지 역사상 가장 많이 촬영된 옷으로 기록됐다.
피카소 ‘꿈’에서 힌트 얻어 드레스 발표
이브 생 로랑은 1979년 파블로 피카소의 ‘꿈’이라는 회화에서 힌트를 얻어 오마주를 주제로 한 드레스를 발표했다. 작품 발표 얼마 전 이브 생 로랑은 피카소의 수채화를 구입했다. 이를 계기로 그가 피카소의 작품에 빠지게 됐다는 일설도 있다. 컬렉션의 명분은 ‘피카소를 칭송하는 의미의 드레스 발표’였지만 한편으로는 이브 생 로랑의 예술을 의식한 흐름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고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리스 재킷과 해바라기 재킷.(사진4)/사진=TOPIC/corbis
고흐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아이리스 재킷과 해바라기 재킷.(사진4)/사진=TOPIC/corbis
이 밖에 폴 고갱, 앙리 마티스, 장 콕토, 앤디 워홀, 조르주 브라크 등 예술가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많은 컬렉션을 발표했지만 그중에서 빈센트 반 고흐에게서 영감받은 아이리스(Iris) 재킷과 해바라기 재킷(사진4)은 가히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재킷은 고급스러운 원단과 재료를 사용해 세련된 수공예 작업을 했을 뿐만 아니라 고흐의 빛에 대한 이해가 잘 나타난다.

또한 수공예 작업은 상상을 초월한다. 해바라기 재킷은 자수의 대가인 장 프랑수아 르사주와의 협업을 통해 만들어졌다. 해바라기 문양을 표현하기 위해 35만 개의 스팽글과 10만 개의 자개가 사용돼 화제를 낳았다. 이 스팽글과 자개를 다는 데 600여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몬드리안 룩, 패션 왕 자리에 올랐다” 격찬받아[명품 이야기]
류서영 여주대 패션산업과 교수

참고 도서: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피에르 베르제 지음, 김유진 역, Franz)’, ‘현대 예술사조와 이브 생 로랑의 작품세계 분석연구(도유미, 중앙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