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지도자를 ‘우상’으로 여기는 것이 전체주의의 시작…‘대의민주주의의 틀’ 지킬 때
홍영식의 정치판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더불어민주당 복당 신청을 철회하면서 남긴 성명문은 민주당의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는 “(민주당은) 민주도, 혁신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군대 같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극단적·교조적 지지층은 민주당의 외연 확장을 막는 독”이라며 “지금 ‘개딸’에 환호하는 민주당의 모습은 슈퍼챗에 춤추는 유튜버 같다”고 비판했다. 정치 팬덤에 좌지우지되는 민주당을 정면 겨냥한 것이다.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도 “민주당을 맹목적 지지에 갇힌 팬덤 정당이 아닌 대중 정당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팬덤’은 광신자를 뜻하는 퍼내틱(fanatic)의 팬(fan)과 영지·나라를 의미하는 접미사 덤(dom)을 합성한 단어다. 정치 팬덤의 효시는 일반적으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를 꼽는다. 인터넷을 통해 동시성·광역성을 자랑하며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노사모는 순수한 팬카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정치 팬덤이 단순 팬카페 성격에서 벗어나 여론을 좌우할 정도로 정치판 이슈 하나하나에 영향을 끼친 것은 지난 5년 문재인 정부에서 유독 심했다. 문 전 대통령이 자락을 깔아 줬다.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4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극성 지지자들의 댓글 문자 폭탄에 대해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 주는 양념”이라고 했다. 일종의 ‘면허’를 줘 버린 것이다. 댓글 폭력은 양념이 아닌 테러인데도 이렇게 규정했으니 팬덤의 폐해는 예고된 수순이 돼 버렸다.
강성 팬덤들의 폐해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민주당 내 소신파로 불린 이른바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니 ‘초선 5적’이니 하며 좌표로 찍혀 조리돌림 당하면 살길을 찾기 힘들 지경이다. 팬덤들에 찍히면 당 지도부 입성은커녕 의원직 유지도 어려우니 다른 의원들은 불만이 크더라도 한마디 항거도 못 하고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지낼 수밖에 없다.
지난해 5·2 전당대회는 마치 극성 팬덤의 문자 폭탄 옹호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최고위원들은 강성으로 싹쓸이했다. 그러니 민주당은 오로지 ‘원 웨이’밖에 있을 수 없다. 여론의 반대가 많은 데도 불구하고 지난해 초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에 이어 올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 등을 완력을 처리한 배경에도 강성 팬덤이 뒤에서 버티고 있었다.
민주당 내에선 민주 정치의 기본 중 기본인 절차적·숙의 민주주의는 내팽개쳐진 지 오래다. 당은 마치 강성 팬덤의 지침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전위대와 다름 없다. ‘검수완박’법 처리 과정에서 “이건 아니다”며 반대했던 의원들이 많았지만 당 지도부는 당론 찬성이란 결론을 냈다. 반대 의원들도 모조리 찬성표를 던진 것은 팬덤의 문자 폭탄 두려움 때문이었다.
5월 24일 실시된 민주당의 국회의장 경선은 마치 강성 지지층에 대한 충성 경쟁장이 돼 버린 듯했다. 역대 민주당 국회의장들이 경선 때 단골로 내세운 여야 협치라는 말은 예의상으로라도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국회의장 경선이 아니라 민주당 대표 경선 같았다. 차기 국회의장 후보로 뽑힌 김진표 의원은 그간 비교적 합리적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런 김 의원마저 “제 몸에 민주당의 피가 흐르고 있다. 독주하는 윤석열 정부를 강하게 견제하는 일이 민주당의 운명”이라고 했다. 경선 승리 뒤에도 “선당후사(先黨後私)의 자세로 민주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여야 사이에서 엄정 중립을 지키도록 한 국회법 취지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행위다. 그는 검수완박법 강행 처리 때 국회 법사위 안건조정위원장을 맡아 절차적 민주주의조차 훼손한 것을 훈장으로 내세우기까지 했다.
최근에는 ‘개딸’ 등 ‘개’자 팬덤이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개딸’은 드라마 ‘응답하라’에서 아버지 말끝마다 대드는 얄미운 딸을 지칭한다. 이게 정치판에 ‘개혁의 딸’의 준말로 차용됐다.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 선거에 출마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적극 지지하는 2030 여성 지지층을 일컫는다. 개이모·개삼촌·개할머니·양아들(양심의 아들)·개좍 등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정치 팬덤화를 상징하는 용어들이 점점 거칠어지는 것은 팬덤의 속성이 변화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말은 품격을 나타낸다. 이런 거칠기 짝이 없는 전투적 용어 속에서 적과 아군을 갈라 내가 죽느냐, 상대가 죽느냐의 살벌한 증오와 배타의 정치가 담겨 있다. 이런 팬덤이 정치판, 특히 거대 야당인 민주당을 움직이는 일상 기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은 위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우려가 나올까. 팬덤이 판을 치게 된 것은 민주주의 진전의 결과로 볼 수도 있다. 민주주의가 아니면 어떻게 자기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개진할 수 있고 비슷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팬클럽으로 뭉칠 수 있겠나. 하지만 민주주의가 용인하는 수준을 벗어나 배타적·독단적으로 흐르고 이를 제어할 장치가 없을 때는 민주주의에 큰 해악이 된다.
정치인을 주권자의 대리로 여기고 언제든 지지를 바꿀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작동 시스템이다. 어떤 지도자도 모든 사람들의 정치적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전지전능, 무오류일 수 없기에 그렇다. 그런데도 특정 지도자를 우상처럼 여기고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전근대적이다. 독일계 미국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가 권력의 무오류성, 지도자에게 덧띄워진 신화에 대한 집착이 전체주의를 부른 주요 원인이라고 비판한 이유다. 정치 지도자를 ‘부모’라고 하는 것은 전근대적
팬덤 정치는 대의 민주주의도 망가뜨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이렇게 표현했다. “팬덤은 자신들의 의지를 의원들이 아닌 지도자를 통해 직접 표출한다. 그러다 보니 정당 정치는 무너지고 의회는 통법부, 의원들은 친위대가 된다.” 문재인 정권 이후 민주당의 상황이 딱 그렇다. 다양한 의견과 이해가 존재하고 이를 조율하고 통합하는 것이 정치인데 극도로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팬덤에 의해 당이 장악된 듯하다. 당은 팬덤을 등에 업은 강경파들이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개딸’, ‘양아들’의 아빠인 이재명 전 민주당 대선 후보는 이렇게 불리는 것에 대해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새로운 정치 행태”라고 했다. 그는 “지금은 참 많은 우리 개딸·양아들·개이모·개삼촌, 심지어 개할머니까지 함께해 주셔서 정말 큰 힘이 나지만 그 과정에서 소수의 행동·실천이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또 “댓글이라도 우리가 선점해야지”라며 이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민주 사회에선 누구든 정치 지도자를 적극 지지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지도자와 지지자를 ‘부모와 딸’, ‘부모와 아들’로 규정하는 것은 정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응답하라’에선 아빠에게 불만이 있다면 대들기라도 할 수 있다. “재명 아빠, 잼파파 사랑해요”라고 하트를 날리는 상황에선 건설적 비판은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지도자와 지지자가 순종적 가족 관계로 치환돼 맹목적 지지만 존재한다면 ‘민주’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부족적 서사요 정치 타락이다. ‘어버이 수령’을 연상케 한다면 과도한 해석일까.
홍영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및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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