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 DNA’ 결정체 심근섭 학파가 뿌리
기업 CFO·스타 유튜버로 끝없는 변신

[스페셜 리포트] 대한민국 애널리스트를 말한다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주가는 실적의 함수다. 하지만 때로는 치열하게 고민한 ‘집단 지성’이 만들어 낸 숫자가 될 때도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걸고 짧게는 수초, 길게는 수십 년 내다보며 기업의 미래에 베팅한다. 애널리스트는 이 집단 지성의 한 축을 담당한다.

기업의 성장 시그널을 먼저 읽어 내고 때로는 시장에 경고음을 울린다. 이들의 분석과 예측이 늘 맞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애널리스트 옷을 벗은 이후에도 이들을 향한 자본 시장의 러브콜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여의도를 주름잡던 전설 같은 애널리스트들의 과거와 현재를 조명했다.
① 꺼지지 않는 여의도의 불
여의도에 전설로 불리는 애널리스트들이 있다. 셔츠의 땀이 마를 날이 없었고 퇴근은 ‘집에 잠시 다녀오는 것’이었다. 시장과의 추리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매일 연마했고 갈고닦은 노하우는 고스란히 후배에게 전했다. 이들의 분석은 수많은 투자자들의 판단 기초가 됐고 보고서 한 장에 주가가 출렁거리던 시절도 있었다. 기업의 성패와 경제 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던 보고서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의도에서 회자되고 있다.
(왼쪽부터)심근섭 전 코리아뮤추얼자산운용 대표,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이종우 이코노미스트[한국경제DB]
(왼쪽부터)심근섭 전 코리아뮤추얼자산운용 대표,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 이종우 이코노미스트[한국경제DB]
여의도에서 이름을 날렸던 1세대 애널리스트들은 대부분 심근섭 전 코리아뮤추얼자산운용 대표가 키웠다. 심 전 대표는 한국 최초의 애널리스트이자 대우증권의 기틀을 세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심 전 대표는 애널리스트라는 개념도 없던 시절 대우증권 조사부 전무로 지내며 대우증권의 도제식 교육을 시작했다. 1994년 심 전무가 직원들에게 담당 업종을 지정해 주면서 한국에서도 본격적인 애널리스트 시대가 열렸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이 대표적인 심근섭 학파다. “그 선배 이름만 나오면 지금 센터장급들이 벌벌 떨어요. 최고 중의 최고였죠.” 전 소장을 두고 30년 차 애널리스트가 전한 말이다. 심 전 대표의 도제식 교육을 전 소장이 이어 받았다. 전 소장은 대우증권 리서치본부장 재직 당시 수많은 베스트 애널리스트를 배출했다.

‘업무의 30%를 후배 교육에 쏟으라’는 대우증권의 전통은 ‘증권사의 사관학교’라는 수식어로 돌아왔다. 당대를 주름잡은 걸출한 인재들이 대우증권에서 쏟아져 나왔다. 전 소장은 이후 한화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지낸 후 현재 중국경제금융연구소를 운영하는 중국 경제 전문가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전 소장 이외에도 자칭 타칭 ‘심근섭 학파’로 불리는 대우증권 출신 1세대 애널리스트들은 여전히 여의도의 ‘구루’로 통한다. 신성호 전 IBK투자증권 사장은 1981년 대우증권의 전신인 삼보증권에 입사해 대우증권 투자전략부장과 동부증권 리서치센터장을 거쳤다. 2009년에는 NH투자증권의 전신인 우리투자증권 리서치본부장을 지내며 대우증권의 도제식 교육과 팀워크를 심어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의 기틀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4년에는 IBK증권 대표 자리에 올랐다. IBK투자증권 대표를 맡은 뒤에는 2년 연속 순이익 최고치를 내며 능력을 입증했다.

증권사 최장수 리서치센터장 출신인 이종우 이코노미스트 역시 대우 출신이다. 1989년 대우경제연구소 증권조사부에 입사한 후 2018년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을 끝으로 증권가를 떠났다. 부침이 심한 애널리스트업계에서 리서치센터장만 16년을 지냈다.
김영익 서강대 교수(왼쪽),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한국경제 DB]
김영익 서강대 교수(왼쪽),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한국경제 DB]
여의도의 또 다른 축은 대신경제연구소 출신들이다. 대우증권 출신 애널리스트들이 기업과 산업 분석에 탁월했다면 대신경제연구소 출신 애널리스트들은 거시경제 족집게로 통했다. 대신 출신 대표 주자는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다.

김 교수는 1988년 대신증권 입사 이후 리서치센터장·대신경제연구소장을 역임했다. 2000년 닷컴 버블 붕괴, 2008년 미국 서브 프라임 모기지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측한 일화는 아직까지 여의도에서 전설처럼 내려온다. 2006년 대신경제연구소 대표를 지낸 김 교수는 2008년 하나대투증권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10년까지는 하나금융경영연구소 대표를 지냈다.

조윤남 대신경제연구소 대표 역시 대신 출신 전략가로 이름을 날렸다. 조 대표는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을 지내던 2015년 ‘글로벌 달러 자산 투자가 장기간 유망할 것’이라는 하우스 뷰를 제시했다. 다음 해인 2016년 1월 코스피 외인 지분율이 역사적 저점을 기록했고 2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달러 상승률이 10.8%에 달했다.
② 대중에게 다가선 ‘여의도파’애널리스트 명함을 내려놓고 대중에게 전문 지식을 나누는 투자 고수로 나선 이들도 있다. 이들은 유튜브와 투자 강연을 통해 애널리스트 시절 얻은 지식과 투자 노하우를 나누며 스타 전문가로 거듭났다. 특히 2020년부터 이어진 개미들의 주식 투자 열풍 속에서 종목 분석, 글로벌 경제 전망, 자산 배분 전략 등 다양한 투자 정보를 제공하며 개미들의 눈과 귀가 됐다.

건설·시멘트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 출신인 채상욱 전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퇴사 후 유튜버로 활동 중이다. ‘채상욱의 부동산 심부름센터’라는 채널을 운영하며 부동산 투자자들의 교육 선생으로 나섰다.

교보증권·한화투자증권·키움증권을 거친 29년 차 베테랑 이코노미스트인 홍춘욱 EAR리서치 대표 역시 지금은 유튜버로 더 유명하다. 홍 대표는 국민연금공단에 재직하던 시절부터 달러 투자로 성공을 거둔 주인공이다. 국민연금·은행·증권사 등 30년 동안 경제 전문가로 일하다 지금은 유튜버로도 활약하며 개인 투자자들에게 돈의 흐름과 자산 배분 전략법을 전수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업계에서 가장 유명한 전문가로 통했던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원래 조선·기계 부문 스타 애널리스트였다. 전공부터가 조선이다. 서울대에서 조선해양공학과 경영학을 복수 전공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해 5년간 선박과 발전에 관해 연구했다. 하지만 본인의 관심 분야는 조선업보다 부동산이었다. 증권사에서 나온 이후 정확하게 부동산 시장을 예측하며 부동산 스타 전문가로 떠올랐다.

③ 투자 코치에서 선수로…셀 사이드→바이 사이드 대이동
사진=셔터스톡
사진=셔터스톡
애널리스트가 시장이나 업종을 분석해 투자 전략을 알려주는 ‘코치’라면 자산운용사·연기금·보험사 등은 코치가 제공한 정보와 분석을 바탕으로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와 같다. 증권가에서는 투자 코치가 선수로 뛰는 셀 사이드(sell side)에서 바이 사이드(buy side)로의 이동이 잦다.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날리다가 행동주의를 전면에 내세운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KCGI를 설립한 강성부 대표가 대표적이다. KCGI는 2018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여 주목받았다. 대우증권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강 대표는 동양증권을 거쳐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에서 채권분석팀장과 글로벌자산전략팀장으로 일하며 한국에서 ‘기업 신용(크레디트) 분석 애널리스트’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 동양증권 근무 시절인 2005년부터 매년 한국의 100대 기업의 지배 구조를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해 업계에 이름을 각인시켰다.

이정 유온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하나금융투자의 전신인 대한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주요 증권사에서 반도체·디스플레이를 담당하며 기업 분석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이 대표는 2017년 사모펀드 운용사 유온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하고 모든 인력을 애널리스트 출신으로 꾸렸다.

유진투자증권에서 ‘교육의 정석’ 보고서로 깐깐한 강남 엄마들을 사로잡은 김미연 애널리스트도 대신자산운용 리서치운용본부장을 거쳐 유온인베스트먼트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신승현 MG손해보험 대표는 하나증권과 미래에셋증권에서 금융을 담당한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현역 당시 신 대표는 보험의 최강자로 꼽혔다. 2015년 핀테크 스타트업인 데일리금융그룹에 합류해 코인원·뱅크샐러드·디레몬 등에 투자했다. 2022년 MG손해보험 경영부문 대표에 올랐다.

조병문 전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타이거투자자문 부사장으로 근무 중이다. 조 부사장은 1989년 대신증권에 입사해 교보증권·현대증권·우리투자증권 등을 거치며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 업종의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부임 당시 그는 “매수를 위한 매수, 목표 주가를 위한 목표 주가는 내지 않겠다. 보유 투자 의견이 매수 의견 못지않게 존중되고 과감하게 매도 의견도 내는 리서치센터를 만들어 가겠다”고 강조했다. 증권사들이 기관과 기업 눈치 보기에 급급해 매수(buy) 리포트를 무차별적으로 내놓던 시절 조 부사장이 이끄는 유진투자증권은 2011년 20~30% 정도 매도·보유 리포트를 내놓았다.

조용준 안다아시아벤처스 대표는 하나금융투자(현 하나증권) 리서치센터장에서 벤처 투자사 대표로 2막 인생을 시작했다. 조 대표는 1994년 신영증권, 2002년 대우증권을 거쳐 자동차·조선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다가 2013년부터 2020년까지 신영증권과 하나금융투자에서 최장수 리서치센터장을 지냈다. 큰 존재감이 없던 하나금융투자 리서치센터를 톱으로 끌어올린 주역이다. 2021년 7월 하나금융투자를 퇴사하고 3개월 만인 10월 안다아시아벤처스를 설립, 4차 산업혁명 스타트업 성장과 관련한 생태계 구축에 앞장서고 있다.

이승혁 스타트업리서치 대표는 동양증권·우리투자증권(NH투자증권의 전신)·한국투자증권 등에서 18년간 정보통신기술(ICT) 부문을 담당하며 이름을 떨친 스타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애널리스트로 상장회사를 분석하며 얻은 경험과 지식을 살려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하고 투자하는 스타트업리서치를 설립해 액셀러레이터로 변신했다.

④ 애널리스트 한길만 걸었다…센터장 거쳐 임원 승진

뚝심 있게 정통 애널리스트의 길을 걷는 사람들도 있다. 애널리스트로 증권가에 입성해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임원으로 승진한 케이스다. 박원재 미래에셋증권 Sage솔루션1본부 본부장(상무보), 윤희도 한국투자금융지주 전략기획담당 상무, 이창목 NH투자증권 경영전략본부 본부장, 송재학 NH투자증권 대체자산운용본부 본부장이 대표적이다.

박원재 미래에셋증권 본부장은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 이승혁 스타트업리서치 대표와 함께 전자업계 3대장으로 통했다. 2008년부터 한경비즈니스 베스트 애널리스트 명단에서 가전·전기전자·전선, 통신·네트워크 장비 및 단말기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빠지지 않던 강자다.

윤희도 한국투자금융지주 상무는 이직이 잦은 업계에서 드물게 한국투자증권에서만 24년째 근무 중이다. 1999년 동원경제연구소 리서치 어시스턴트(RA)로 입사해 2002년 동원증권, 2005년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의 합병 법인으로 자리를 옮겨 유틸리티·운송 업종을 담당한 스타 애널리스트다. 31세이던 2004년 주요 언론사의 유틸리티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최연소로 선정됐고 2016년 차장에서 임원급인 리서치센터장에 이준재 센터장의 후임으로 발탁돼 업계에서 주목받았다.

이창목 NH투자증권 본부장도 리서치센터장을 거쳐 임원으로 올라섰다. 1993년 세동회계법인(현 안진회계법인), 1995년 교보증권, 2000년 동양증권을 거쳐 증권사 주식 브로커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2002년부터 우리투자증권에서 유틸리티 부문 애널리스트로 활동했다. 2011년 우리투자증권 에쿼티리서치센터장을 역임했고 2014년 우리투자증권과 NH농협증권의 합병으로 탄생한 NH투자증권에서도 리서치센터장과 리서치본부장을 맡았다. 윤희도 한국투자금융지주 상무, 주익찬 전 흥국증권 리서치센터장과 2010년대 유틸리티 부문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삼파전을 펼쳤다.

송재학 NH투자증권 본부장은 1996년 대신경제연구소를 시작으로 오랫동안 운송·조선업 부문을 연구했다. 그의 보고서는 업종에 대한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심층 분석과 정기적인 산업 데이터를 분석하는 보고서로 정평이 높았다. 이창목 본부장과는 1966년생 동갑내기로 2011년 우리투자증권 리서치센터의 공동 수장을 맡은 인연이 있다.

⑤ 시장 전문가에서 기업 전문가로…CFO로 변신
애널리스트의 변신은 끝이 없다. 기업을 탐방하고 시장을 분석했던 경험을 살려 기업에서 투자나 재무 총괄을 맡는 경우도 다반사다. 박진 전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장은 유통·미디어 부문의 베스트 애널리스트에서 2015년 글로벌주식부장을 거쳐 반도체 부품 업체인 비씨엔씨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변신했다. 박 전 소장은 이창목·송재학 본부장과 함께 NH투자증권을 이끌었다.

리서치센터를 떠나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사람도 있다. KB증권에서 금융 부문을 담당했던 심현수 애널리스트는 쿼터백자산운용의 최고운용책임자(CIO)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핀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이 활발한 편이다. 대신증권에서 인터넷·게임을 담당했던 이민아 애널리스트는 2021년 7월 두나무 핀테크사업개발 총괄로 이직했다.

유진투자증권에서 정보기술(IT)을 담당하며 대체 불가능한 토큰(NFT)·블록체인 보고서를 발간했던 노경탁 애널리스트는 2022년 1월 다날핀테크의 금융투자본부 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KB증권에서 거시경제를 담당했던 김두언 애널리스트는 로보어드바이저 두물머리로 적을 옮겨 외부위탁운용관리(OCIO) 총괄을 맡고 있다.

애널리스트들의 업종 전환에도 공통점은 있다. 증권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자신이 맡았던 섹터로 가는 경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제약·바이오업계가 주목받으면서 관련 애널리스트의 자리 이동도 부쩍 늘었다. 한국투자증권에서 제약·바이오를 담당했던 진홍국 애널리스트도 전문성을 살려 2021년 6월 알테오젠의 자회사인 알토스바이오로직스의 CFO로 이동했다.

한화투자증권의 신재훈 애널리스트도 진단 키트 회사인 랩지노믹스의 미래전략실장 겸 CFO로 자리를 옮겼다. NH투자증권의 구완성 애널리스트는 유전체 분석 기업인 지니너스의 CFO로 이직했다. 최찬석 야놀자 최고투자책임자(CIO)도 KTB투자증권에서 미디어·엔터테인먼트를 담당했던 베스트 애널리스트 출신이다.

하나금융투자에서 반도체 부문을 담당했던 김경민 애널리스트는 중소형 기업 리서치 정보를 제공하는 한국IR협의회로 이직했다. 그는 누구보다 빨리 출근해 해외 IT 시장 업데이트를 시작으로 고객에게 시장·종목 정보를 전달했을 뿐만 아니라 RA들의 성장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경비즈니스 베스트 애널리스트에 수차례 선정됐다.


김영은·안옥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