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재생에너지 생산량 < 기업 전체 전력 소비량
높은 재생에너지 목표와 전력 그리드 확보 필요

부유식 해상풍력 조감도.사진=한경DB
부유식 해상풍력 조감도.사진=한경DB
글로벌 재생에너지 동향과 국내 재생에너지 정책이 충돌하고 있다. 사용전력의 100%를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글로벌 캠페인 RE100을 비롯해 탄소국경제도(CBAM) 등은 재생에너지 확대와 빠른 에너지 전환을 주장하고 있으나, 국내 재생에너지 정책은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재생에너지 활용 여부가 무역장벽으로 작용될 것이라는 전망은 곧 실현될 것으로 보인다. CBAM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CBAM은 환경규제뿐 아니라 저탄소 제품을 생산하지 않는 기업에 추가적인 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화석연료를 사용해 생산한 제품에는 일종의 ‘벌금’이 붙는 셈이다. 수출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직접적인 장벽으로 작용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RE100은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과 CDP의 협업으로 2014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자발적 참여 캠페인이지만, 글로벌 기업들이 RE100 가입 후 협력사나 공급사에 ‘재생에너지로 생산해 납품할 것’을 추가적인 조건으로 내걸면서 국내 대응도 요구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를 비롯한 삼성 계열사가 가입을 완료하면서, 10월 기준 총 22개의 국내 기업이 RE100에 가입한 상태다.

하지만 실제로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국내 재생에너지 공급 현황은 열악한 편이다. 국토 면적이 좁아 재생에너지 공급이 한정적일 뿐 아니라, 부족한 공급량을 대체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이나 인프라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공급 부족은 즉 조달 문제로 이어지고, 조달 불균형은 가격 상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화석연료와의 공정한 가격 경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장 확대도 어렵다. 클라이밋 그룹에 따르면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생산량으로는 RE100에 가입한 국내 기업 한 곳의 전체 전력 소비량조차 충족할 수 없는 상황이다.

클라이밋 그룹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은 전력의 약 2%만 재생에너지로 활용하고 있다.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 평균치가 10%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수치다. 지난 9월 진행된 G20 기후주간 회의에서 발표한 각 국가들의 에너지 전환 상황과 목표치를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은 D 등급을 받았다. 이는 아르헨티나, 사우디아라비아, 러시아와 비슷한 등급이다.

기업이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을 통하지 않고 직접 구매해 사용하는 직접 PPA가 9월 도입되면서 구매 선택 폭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참여 유인에 대한 회의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재생에너지 투자까지 축소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에너지 정책 방향은 ‘친원전’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8월 공개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따르면 원전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상 확대하며 기저 전원을 원전으로 못 박았다. 신재생에너지는 2030년까지 21.5%로 설정했으며, 이는 기존 9차 전기본 목표인 30.2%에서 크게 후퇴한 수준이다. 특히 최근 지난 정부 사업에서 등장한 태양광 관련 비리 등이 연일 보도되며 태양광 산업의 위축도 우려된다.

지난 10일 진행된 국정감사에서는 이러한 정책 기조가 실제 투자 축소로 이어진다는 분석도 등장했다. 6개 발전공기업(남동발전, 남부발전, 동서발전, 서부발전, 중부발전, 한국수력원자력)의 ‘2022~2026년 재정건전화 계획’에는 기존의 신재생에너지 예산을 총 7조5555억에서 2조5226억원으로 감축했다는 내용이 공개됐다.

한 에너지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와 같은 대기업의 RE100 가입은 세계와의 약속이다. 이행 방안을 국내에서 찾지 못하면 결국 재생에너지 산업은 해외로 유출될 것”이라며 “재생에너지까지 수입에 의존한다면 국내 에너지 안보나 수출 산업까지 위태로워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 11일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진행된 ‘2022 글로벌 ESG 포럼 with SDG’에 스페셜 연사로 참여한 매디 픽업 클라이밋그룹 매니저는 한국 정부가 재생에너지 비중 목표를 낮춘 것에 유감을 표하며 “한국 정부의 규제가 기업의 잠재력을 막는 장벽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한국형 정책 메시지를 수립한 후 한국만의 재생에너지 정책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기업의 목소리는 확실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인과 정부의 목소리다. 모든 국가의 핵심과제는 재생에너지 과제를 높게 설정하고 전력 그리드를 확보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조수빈 기자 subin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