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응급의학 전문가 6인 진단
‘주최자 없는 민간 행사’도 국민의 안전은 정부 책임

10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 구급차가 모여있다. 사진=연합뉴스
10월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인명사고 현장에 구급차가 모여있다. 사진=연합뉴스
안전‧응급의학 전문가 6인은 이번 ‘이태원 참사’를 두고 “사전 안전 점검도 없었고 현장 통제도 미흡했다”고 진단했다. 폴리스 라인과 서너 명의 안내 요원만 있었어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가장 단순한 일방 통행이라도 하게 만들었어야 했다는 것이다.

법적으로 보면 누구나 무결하지만 ‘주최자가 없는 민간 행사’라는 이유로 정부가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사건 수습과 교통 통제 등 현장 내 역할 분담도 늦게 이뤄지고 무질서가 겹쳐 현실적으로 ‘골든타임 4분’을 지키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파 관리에 대한 위기의식이 한국 전반적으로 부족했다고 지적하며 ‘과밀’ 상황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한편 실효성 있는 안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 교수
“경찰의 완벽한 실패”

염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 교수는 행사 주체가 불분명기 때문에 경찰의 역할이 더욱 중요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참사는) 시스템 부재의 원인이 컸다. 관리 주체도 없었고 주체가 없으니 처벌할 수도 없고 모든 것들이 부실하다는 것을 행정안전부 장관도 인정했다”면서도 “경찰이 컨트롤 타워가 됐어야 했다”며 “경찰은 국민의 안전과 보호가 임무”라고 말했다.

이어 “참사 당일 여러 신고가 있었고 그전부터 위험 신호가 있었지만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마약 단속 등 범죄 쪽에 인력을 집중했다”며 “경찰의 완벽한 실패”라고 평가했다.

염 교수는 “시민들에겐 경찰을 보는 것만 해도 효과가 있다. ‘질서를 지켜야 한다’, ‘내가 보호받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좁은 골목길에 10만 명의 인파가 몰릴 것을 알았으면서도 자치단체 공무원이 투입되지 않았다는 점이 굉장히 의아스럽다고 덧붙였다.

염 교수는 “즐겁게 행복을 누리러 간 이 현장에서 이런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지 누가 알았겠나. 내 안전에 대한 믿음으로 나간 것”이라며 “헌법상에도 안전을 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사전 점검은 필수…밀집 상태에 경각심”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전 안전 점검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위험 요인은 없나, 안전‧구급 요원은 어디에 배치하나, 교통 통제를 해야 하나, 일방 통행만 해도 되나, 역은 통과시켜야 하나 등 행사 주체가 있든 없든 사전 점검은 필수”라고 말했다.

공 교수는 “출퇴근 지하철 혼잡에 대한 노출이 잦다”며 만원 지하철 등 밀집 상태에 대한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에서 일정 시간 이상 안전 교육을 실시하도록 규정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동영상 강의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상황에선 활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은 안전 교육이 초등학교 3학년까지 정규 과정이지만 미국은 고등학교까지 필수 교육으로 채택돼 있다. 심폐소생술, 건물 대피 훈련 등 실습 위주다. 훈련도 불시에 한다. 정규 교과 과정이라 성적도 걸려 있어 열심히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안전 통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 필요”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외국은 한국보다 관에서 안전 관리에 훨씬 더 적극 대응한다”며 “미국은 행사 주체 유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지역에서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우리가 공적인 영역에서 해야 하는 안전 조치를 하겠다’는 관점”이라고 설명했다.

또 “안전 요원이 벌칙을 부과하는 등 한국보다 통제가 강하다. 이 같은 통제를 시민이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며 “지자체나 경찰의 예방 조치 등 기술적인 부분만 고려할 게 아니라 이런 통제를 사회에서 수용하고 따라주는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주최자 없는 행사도 관리해야 한다’는 지침 개선에도 현실 가능성을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최자가 없으면 지자체에서 관리하라’는 말은 하기 쉽다. 그런데 신고 접수가 돼 있지 않거나 규모가 작은 행사 등 관내 많은 행사가 있다. 지자체가 이런 행사들을 매일 발굴하고 시시각각 들여다보기 힘들다. ‘주최자가 없는데 위험할 것 같으니 우리가 안전 관리 하겠어’ 하는 식으로 계속 모니터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실제 할 수 있는 부분과 할 수 없는 부분을 명확하게 따져봐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예방 조치=사고 100% 방지’일 수 없다며 현장 대응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경찰이 시간 단위별로 현장 상황을 보며 위험 요인이 있는지 즉각적 조치가 필요한지 등을 따졌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자체도 마찬가지다. 사전 점검하지 않았더라도 공무원을 현장에 배치할 수 있고 CCTV를 통해 주요 장소를 모니터링할 수도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
“지역별 맞춤 압사 매뉴얼 만들어야”

압사 관련 세부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송규 한국안전전문가협회장은 “그간 압사에 대한 개념도 규정도 없었고 안전에 대한 매뉴얼도 범위가 넓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주최자가 없어도 매년 특정 시기, 특정 지역에서 반복되는 행사가 많다. 단순히 인원수를 기준으로 하는 획일적인 매뉴얼 대신 행사 장소의 특성과 참여자 연령대 등 여러 요인을 고려해 지역별 맞춤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번 참사는 조금만 주의했으면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사태”라고 일침했다. “두 사람만 있었어도 됐다. 일방통행을 한다든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시간에는 일부 통로를 폐쇄한다든지, 양 출입구에 관리인이 있어 출입자를 통제하는 것 등이다.”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소방당국‧중앙응급의료센터의 공조가 중요”

사상자들이 근처 순천향대 병원으로 한꺼번에 몰린 점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최초 환자를 이송한 후 그다음 환자부터는 다른 병원으로 이송되도록 중앙응급의료센터가 관리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응급 환자 이송에 중앙 컨트롤 타워 역할을 맡고 있는 중앙응급의료센터(국립중앙의료원 내 중앙응급의료상황실)의 체계적인 지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제대로 가동했을 테지만 그것이 빨리 되느냐 늦게 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이미 환자가 떼거리로 이송됐는데 뒤늦게 ‘분산 배치’ 기능이 가동하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초 구조 작업 현장에서 위험 요소, 사상자 규모 등을 중앙응급의료센터에 공유해야 한다. 중앙응급의료센터는 병원에 상황을 공유하고 대비해야 한다”며 “소방 당국이 중앙응급의료센터에 위급 상황을 얼마나 빨리 알렸는지도 확인할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
“환자와 의료진이 빠르게 만나는 것이 생명 살리는 길”

이형민 한림대성심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현장 통제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재난 현장에서 1차로 달성해야 할 목표는 현장에 대한 통제와 관리다. 되도록 빨리 구조대나 구급대, 의료진이 환자와 접촉하고 가능한 한 빨리 이송해야 한다. 이때 시간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어 “100명이 택시를 탈 때까지 15~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초기 출동한 경찰·소방사 등이 거리의 시민들을 빠르게 정리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일반인도 통제에 따라 자리를 피해 줘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의료진을 비롯해 현장에 출동한 모든 이들에게도 충격적인 참사였다”며 “이들에 대한 격려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픽=박명규 기자
그래픽=박명규 기자
[스페셜 리포트] 울리지 않은 비상벨
-이태원 사태, 비상벨은 왜 울리지 않았나
-“사전 안전 점검도 없었고 현장 통제도 미흡했던 인재”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