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은행의 위기 리스크 집중 점검 : 최동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스페셜리포트]
SVB 사태의 나비 효과 “원칙이 무너졌다…모럴 해저드 반복될 것”
“2008년 금융 위기 이후의 원칙이 무너졌습니다.”

미국 뉴욕연방준비은행(Federal Reserve Bank of New York)에서 이코노미스트를 지낸 최동범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로 불거진 미 정부의 이례적인 조치들이 “문제가 많은 개입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최동범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2012년 프린스턴대에서 브루너 마이어 교수의 지도하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연구 분야는 금융 안정 및 중앙은행 정책이다.

최 교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선 SVB 구제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었지만 앞으로 시장 규율은 어떻게 되는지, 중간에 룰을 바꿔도 되는지에 대한 질문은 차치하고 ‘이게 다 트럼프 때문’이라고 쉽게 문제를 해결해 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3월 10~12일 SVB와 시그니처은행 파산 절차를 진행하면서 모든 예금을 전액 보장한다고 밝혔다. 이에 최 교수는 “이번 SVB 구제로 다른 은행에서 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정부의 전액 보장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생긴 원칙들이 무너짐으로써 은행의 위기와 모럴 해저드가 반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2010년 ‘도드-프랭크법’을 제정해 금융 규제를 강화했다. 총 3500쪽에 걸쳐 400개 법안을 담고 있는 금융 개혁안에는 금융회사에 대한 규제·감독 강화, 금융감독기구 개편, 중요 금융회사 정리 절차 개선, 금융지주회사 등에 대한 감독 강화, 지급 결제 시스템에 대한 감독 강화 등이 담겨 있었다. 이 중에는 이른바 금융회사의 사전 유언장이라고 불릴 만큼 엄격한 ‘정리의향서’ 제출도 있었다.

그런데 2018년 미국은 법을 개정해 ‘글로벌 시스템 중요 은행(G-SIB)’으로 분류되는 대형 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중소·지방 은행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중소·지방 은행들을 대형 은행들과 같은 방식으로 규제해서는 안 된다며 법안에 서명했다. “G-SIB들을 위한 도드-프랭크법의 틀이 중소 은행에는 맞지 않다”는 중소 은행 임원들의 주장에 트럼프 전 대통령이 손을 들어준 것이다.

최 교수는 “애초에 정부 개입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지 않아야 했다”면서 “트럼프 행정부에서 사실상 SVB와 같은 중소 은행들은 망해도 (시장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며 규제를 대폭 완화해 준 것인데 이제 와서는 또 너무 쉽게 고민 없이 구제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가 꼽은 가장 큰 문제는 원칙의 붕괴다. 은행의 문제 발생→경제 위기→정부의 구제 금융→은행의 모럴 해저드가 반복되는 일을 막기 위해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다양한 원칙을 세웠는데 이러한 원칙들이 무너졌다는 지적이다. 최 교수는 “2008년 금융 위기의 교훈과 원칙은 싸그리 무시되고 똑같은 일이 다시금 반복되면서 모럴 해저드가 더 심해질 것”이라며 “무력감과 패배감을 느끼는 시기”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마지막 리스크는 인플레이션이다. 최 교수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원래대로라면 50bp(1bp=0.01%포인트)를 인상했겠지만 (SVB 사태로) 25bp를 인상했다”며 “어쩔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은행권 위기에 눈치를 본다는 것은 인플레이션을 잡겠다는 Fed의 목표에 상충되는 것이자 의지에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은행권 위기가 1순위가 되면서 폴 볼커 때부터 우리는 인플레이션을 잡는 게 가장 중요하고 다른 것은 둘째라고 말해 왔던 것에 반하는 상황이 됐다”며 “앞으로 인플레이션 잡기가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3월 22일(현지 시간) 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는 결정을 발표한 뒤 “(은행권 위기 때문에) 이번에 금리 인상 중단을 고려했었다”면서도 “여전히 고공 행진 중인 인플레이션 때문에 올해 금리 인하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