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주연의 다시 연결]
“경영자로서 신뢰가 무너질까봐 두렵습니다”[안주연의 다시 연결]
저는 작은 제조업을 영위하고 있는 대표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영의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는 모두가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하며 위안도 받고 정신의학과에서 상담과 처방도 받아 봤지만 큰 효과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주위의 몇몇 친구들처럼 술을 좋아해 음주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도 아니고 취미 생활로 여가 시간을 보내는 것도 아닙니다. 매일 아내와 이런저런 상호간의 넋두리나 늘어놓으며 서로 공감하고 위로해 주는 시간이 잠깐이나마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넋두리도 한두 번이지 2세를 계획 중인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있는 면모만 보여주는 게 맞다는 생각에 자제하고 있습니다.

왜 나이가 한두 살 늘어갈수록 더 굳건해지지 못하고 약해지기만 하는 것일까, 나 혼자만의 문제일까 생각해 봅니다. 걱정 없는 집이 어디 있겠느냐고 말하지만 말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작은 제조업의 경영자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 장남으로서의 큰 책임감을 괜히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는 제 마인드 컨트롤의 문제인 것일까요.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은 삼촌뻘이나 아버지뻘인 5060대입니다. 제가 위축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행여 언행의 문제로 경영자로서의 신뢰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 줄까봐 매번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사업이 지속적으로 순항한다면 걱정을 한결 덜 수 있겠지만 영세 제조업의 상황은 열악합니다.

강철과도 같은 의지로 모든 문제를 극복해 나가야만 하는 현실이 너무 두렵고 무섭습니다.


철우 님(가명) 안녕하세요.

‘다시, 연결’ 코너를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지만 대표와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혼자 짊어 온 철우 님에게는 무척 낯설고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용기를 낸 것에 특별한 감사와 중요한 첫걸음을 떼었다는 응원을 전하며 답장을 시작합니다.

글에서 느껴지는 철우 님은 성실하고 배려가 많고 웬만한 것은 본인이 알아서 처리하고 타인에게 의존하거나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분입니다. 또한 철우 님은 아버지가 사업 실패 후 술을 마시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지켜 봤고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그래서 아들·가장·대표로서의 역할에 대한 목표점이 높고 중압감도 상당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최근 5년은 철우 님이 스트레스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기였는데 어려움과 외로움을 견뎌내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역할상 앞으로도 어느 정도의 부담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압박을 줄이고 대처 기술을 보완·강화해 나갈지가 중요합니다.

그동안 철우 님의 스트레스 대처 방식은 ‘더 빨리, 더 완벽하게 일을 처리하기’, ‘부친과 다른 직원들의 처지를 고려해 달래기’, ‘부정적인 생각은 누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어떤 고난도 참고 이겨내기’,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개인적 고민과 부정적 모습은 드러내지 않기’, ‘혼자 주간지나 자기 계발서 읽기’ 그리고 ‘술’입니다.

이렇게 정리해 보면 어떻게 느껴지나요. 너무 고립돼 혼자 애쓰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철우 님의 대처 양식들은 ‘어려움을 억압하고 온전히 본인이 감당하려고 애쓴다’는 한 줄로 귀결됩니다. 그러니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인간은 환경과 상호 작용하고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도움을 받으며 성장합니다. 특히 배우자·원가족·절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적절한 소통 방식과 한계를 정하고 시간 흐름과 상황 변화에 맞춰 새로운 방식을 알아채고 의논하는 행동이 관계 유지에 필수적입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요한 결정을 두고 구성원 각각과 또 전체와 논의, 갈등하고 맞춰 가는 시간들은 경영의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철우 님으로 하여금 누구에게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일까요. 철우 님은 아버지가 운영하던 기업에서 일하다가 이어 받아 대표가 됐고 아직도 함께 일하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게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해결하는’ 예전 아버지의 태도를 무의식적으로 반복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철우 님이 어렸을 적 아버지가 홀로 괴로움을 안고 이를 가족과 나누지 못하는 사이 어머니도 혼자 힘드셨고 철우 님도 부모님에게 공납금 부담을 주기 싫어 알아서 처리하려고 무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중에 어머니가 따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을 알고 또 슬퍼지고 맙니다.

그 시절 많은 가정이 이런 모습이었겠지만 이는 어려움을 공유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휴식의 터전이 되는 가족의 소통 양식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상처를 줄까 두려워 진실을 나누지 못하고 각자 방에서 끙끙 앓고 서로의 욕구도 넘겨짚어야만 하는 소통 부재의 분위기가 구성원들의 고통과 외로움을 심화시킵니다. 사적인 관계에서의 이런 방식은 공적인 관계에서 무리함을 가져옵니다. 가장과 대표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혼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주변과 소통하며 해결책을 모색할 기회를 잃게 될 것입니다.

철우 님, 아버지의 모습은 경제 성장 시대, 가부장 선호 시대의 어쩔 수 없는 초상입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세계화·신자유주의로 경쟁이 더 심해졌고 지금 시대는 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리더십을 원합니다. 아버지가 존경스럽다고 해도 21세기의 리더인 철우 님의 스트레스 대처 양식은 그와는 달라져야 합니다. 그리고 철우 님에게는 성공도 고통도 함께 소통하고 감내하며 회사를 꾸리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용기를 내 본인의 속내와 상태를 주변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런 변화와 대처 방식의 개발 등은 단기적으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일단 심리 상담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를 통해 솔직한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연습과 비판이나 평가 없이 수용받는 경험을 충분히 해보기를 바랍니다. 실전에서는 먼저 부인과 해볼 수 있습니다. 부인과는 아이가 생겼을 때의 기쁨과 지금 느끼는 중압감과 책임감까지 술 없이 이야기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현실적으로 갖고 있는 직위와 권한은 인정하되 그에 따른 우려를 솔직하게 표현해 보면 좋겠습니다. 명함에도 대표라고 쓰되 거래처 어른들에게 젊은 녀석이 건방지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는 식으로 말입니다. 생산 관리 직원분들과도 일대일로 조금씩 계속해 매주 대화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속내를 이야기하기는 힘들 겁니다.

이 과정을 위해 브레네 브라운의 ‘리더의 용기’라는 책을 권해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생산 관리 직원 사이에 일에 대한 의견차로 인한 갈등이 있을 때는 대표로서 회사의 대의와 현실에 맞게 결정하고 관철해 보기 바랍니다. 아버지와 의견이 맞을 때는 아버지나 이전 대표여서가 아니라 회사 이득에 이 길이 맞을 것 같다고 하며 논리적으로 직원들과 대화하고 직원들의 의견이 맞을 때는 ㅇㅇ 님 의견이 **한 점에서 회사 이득에 더 부합한다고 아버지와도 맞서 싸워 보면 좋겠습니다. 서로의 기분이 아니라 정말 업무상의 이득이나 옳고 그름으로 치열하게 싸워 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업무 갈등이고 소통의 경험이 될 것입니다.

철우 님, 사람들은 늘 좋은 모습만 보이기 위해 혼자만 애쓰는 리더보다 부족함도 솔직히 나타내며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리더를 원합니다. 그래야 그 집단에 속한 조직원도 안전하게 본인의 생각과 감정을 나타내고 갈등도 겪어 가며 진정한 관계를 만들고 성장할 수 있으니까요.

철우 님, 조금은 우울하고 조금은 서툴러도 그런 모습도 스스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그것을 주변의 사람들과도 나눠 보길 부탁드립니다. 철우 님이 마음 깊은 곳에서 원했지만 하기 힘들었던 그런 소통을, 새로 꾸린 가정과 회사에서 시도해 보면 좋겠습니다. 철우 님이 직원들과의 갈등에서 직원들을 존중하며 말씀하셨던 대로 결과야 어찌됐건 자신에게 자율권과 선택권을 주되 그게 잘못된 결과로 이어지더라도 그때 다시 생각하고 개선점을 찾아 가면 좋겠습니다. 타인을 지지하고 수용하는 마음 그대로를 본인에게도 적용해 스스로에게 안전과 자유를 허락해 주길 바랍니다.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한경비즈니스는 ‘안주연의 다시, 연결’을 연재하며 독자에게 상담 편지를 받고자 합니다. 직장인 마음 상담을 주제로 다양한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안주연 마인드맨션의원 대표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 직접 답하겠습니다. 하단 링크로 직접 사연을 작성하거나, poof34@hankyung.com으로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